무용수 신정민과의 디지털 시대 '몸'에 대한 대화
무용수 신정민(이하 신정민)을 알게 된 이력을 굳이 말하진 않겠다. 계기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가진 '몸'에 대한 인식이며 그것이 내가 전개하고 있는 『딛는 몸 - 철학의 장소』와 겹치는 올과 결이 있다는 점이다. 그는 자신의 작업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나는 그의 이야기 저변에 깔려 있는 '몸'의 철학에 귀를 기울였다. 결론은 아직 나지 않았지만 '현존하는 몸'에 대한 깊은 시선이 충실히 집중하고 있는 사실만으로 어쩌면 충분하지 않을까.
* 다음은 순차적으로 이뤄진 내용이 아니며 저작을 위해 재구성된 대화입니다.
신정민은 몇 차례 부상을 겪었다. 사실 몸을 쓰는 무용수들에게 부상은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다. 부상을 겪은 몸이 딛고 일어서는 힘은 무엇인가? 우리는 기술과 기량의 제한을 받는 스포츠 선수의 몸이 아닌 무용수의 몸에 대해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 스포츠 못지않은 근력과 테크닉을 필요로 하는 점은 같지만 무용수의 몸은 스포츠 선수의 몸과는 다르다. 테크닉이 요구하는 일정한 수준의 기준, 모양, 형식이 있지만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무용수의 움직임은 테크닉을 넘어선 다른 지점에서 완성된다. 나는 신정민과의 대화에서 '고유성'이라는 지점을 재발견했다.
신 : 무용 공연을 보고 난 뒤, '멋있다.', '잘한다'로 끝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나의 무대, 나의 움직임은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인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게 되더군요. 보이는 것이지만 보이는 것으로 끝나긴 싫었습니다.
박 : 그것이 제가 현대무용에 집중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어느 날, 테크닉이 주가 되는 공연을 보고 귀가하는 길에 문득 '내가 오늘 이 공연에서 무엇을 느껴야 했나.'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더군요. 사적인 취향이지만, 때때로 고전 발레가 저에게 답을 주지 못합니다. 더 이상 이 시대가 공감하기 어려운 이야기와 주인공, 몸의 구조와 테크닉을 강조한 장면들은 '멋있다.' '예쁘다.' '잘한다' 이상의 감흥을 주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것이 작품의 모두는 아닙니다. 그러나 저에게 테크닉을 강조한 공연들은 마치 장인을 보는 것 같고 창작자, 예술가를 감상한 느낌을 주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신 : 테크닉도 물론 아주 중요합니다. 그리고 테크닉이 기반이 되어야 다른 표현도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저는 때로 무용수도 하나의 상품이라면, 한 무대에서 서사를 그리는 재료로 쓰일 때 과연 어떤 색을 내야 할지에 대한 생각을 합니다. 결국 내가 어떤 색을 가지고 있어야 할지 고유성을 발굴해 내야 한다는 겁니다.
박 : 테크닉은 마치 수집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비단 무용만이 아니라 모든 장르의 테크닉이 그렇습니다. 아직 학생 예술가들은 테크닉을 수집해서 잘 엮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수집된 것을 엮는다고 해서 작품이 되는 건 아니거든요.
신 : 그래서 나의 고유한 테크닉의 개발이 필요합니다. 저는 저만의 고유한 테크닉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메소드나 다른 테크닉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겠지만 그보다 자기 자신의 이야기, 내 몸에서 비롯된 고유한 테크닉이 제가 이번에 하고자 하는 이야기입니다.
AI, 인공지능은 보편적인 데이터 수집을 기반으로 한다. 여기서 인간만의 고유성은 어떻게 찾을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지금, 인간의 고유성을 몸의 고유성에서, 또 오로지 자기 자신의 몸의 고유성으로 대응하려는 신정민의 태도는 내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테크닉이라는 단어가 주는 기계적인 어감 때문에 '고유한 테크닉'은 나에게 그다지 가까운 단어는 아니었지만 점차 대화를 나눌수록 테크닉이라는 단어로 우리가 논의해야 할 지점이 많다는 것이 드러났다.
신 : 몇 년 전, 부상 때문에 집에 꼼짝없이 누워 있어야 했던 적이 있습니다. 오랜만에 학창 시절에 하던 모바일 게임에 다시 접속했습니다. 게임은, 엄청난 업데이트를 통해 발전되어 있었습니다. 제 몸은 부단히 수련하고 훈련해도 업데이트하기 쉽지 않고 오히려 부상당해 이렇게 누워있는데, 디지털은 너무 빨리, 너무 많이 업데이트가 됩니다. 내 몸은 과연 무엇일까요?
동시에 저는 디지털이 주는 판타지가 너무 쉽다는 생각을 합니다. 게임, 영상 등등, 디지털 테크닉이 사람에게 판타지를 너무 쉽게 전달해요. 그런데 몸은 그렇지 않거든요. 하지만 저는 몸의 판타지성, 몸으로 전달하고 느끼게 하는 인간 몸, 고유의 판타지성을 믿고 그 가치를 이룩해 내고 싶습니다.
박 : '디지털의 대척점에 있는 아날로그적인 몸'이라고 이해해도 무방할까요?
신 : 디지털 테크니션은 '이전의 삶 속의 불편을 제거하거나 편리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세계를 간접체험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기도 하는 오버 테크닉이죠.
기술과 비근하게 몸도 '아날로그 테크니션'의 역할을 합니다.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 주거나, 혹은 관객을 새로운 세게로 이끌어 간접체험하게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한다고 봅니다. 다만 디지털 테크니션과 아날로그 테크니션의 차이점은 영원히 완전하지 않을 것임에도 수고스럽게 반복적으로 한다는 것, 그리고 의미에 대한 탐구라고 생각합니다. 이 지점에서 결국 디지털과 아날로그/몸은 완전히 반대에 놓입니다.
박 : AI는 늘 인간의 불편함을 해소홰 주는 기술을 통칭하는 말이기도 하지요. 그것이 보편화가 되면 그 기술은 더 이상 AI라고 불리지 않는 아이러니를 갖기도 합니다. 불편함의 제거, 업데이트가 가능한 상태에 이르면 테크닉의 지위를 잃는 겁니다.
그러나 인간의 몸은 불편함의 제거, 업데이트가 쉽지 않고 그를 위해서 또 다른 테크닉이 개발되지만 역시 한계가 있습니다. 뼈아픈 진실입니다.
신 : 네. 아무리 노력해도 부상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제 몸과 다르게 완벽하다고 느껴질 정도의 업데이트된 게임의 대비는 디지털의 판타지를 보여주죠. 그러나 동시에 저에게는 위기감으로 다가왔습니다. 진행되고 있는 프로덕션에서 부상으로 인한 저의 빈자리를 기술로 메울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이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사람이 꼭 필요한 이유를 찾아내야 한다는 의무감을 찾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나름의 답을 찾아낸 것이 바로 몸성입니다. 사람의 몸이 갖고 있는 근본적인 몸성은 아직 기술이 대체할 수 없고 그 부분을 확장해 나가는 가능성을 탐구해야 헸다는 결론을 내린 겁니다.
"인간의 성능을 넘어서는 기술, 인간 능력 대체 현상에 패배, 좌절, 무기력으로 무너진 바닥 - 인간"(*딛는 몸 - 철학의 장소 1화 중)을 또 한 명 만났다. 부상으로 인해 바닥에 누운 몸의 상태로 만난 디지털 영역은 '몸'이 모든 사고의 장소인 무용수에게 '사람의 몸'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반-몸성과 몸성을 한 때는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이라고 불렀다. 몸의 성질에 대한 평가 때문이다. 몸은 유한하고 생로병사와 희로애락에 따라 가변적이고 항구적이다. 부상과 노화에 취약한 몸이 가진 생존에 대한 욕구는 순전하지 못한 목적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되려 몸 없는 지식체가 등장하자 우리는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결핍을 느낀다. 일례로 COVID 팬데믹을 겪으며 기술에 전가시킨 많은 아날로그 테크닉의 결과로 우리가 맞이한 사회는 과연 인간에게 호의적인가? 그렇지 않다. 인간을 불편 해소를 위해 개발된 디지털 테크닉이 결과적으로 친화적이지 않을 때, 반- 몸성의 세계로 이끄는 판타지는 과연 안전한 판타지인가? 나는 신정민의 작업의 테마인 '안전'에 대해서 이런 이유로 동상이몽을 가졌다. 디지털 테크니션이 주는 쉬운 판타지는 과연 인간을 위한 것인가? 몸이 없는 정신 세게의 판타지는 쉽고 위험하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디지털 테크니션들이 '생생하게' 보다 현실적으로 재현하기 위해 애쓰는 것은 아닌가? 단지 테크닉의 기준 척도가 '현실'일 필요가 요구되는 것도 결국은 체감과 체험의 문제를 넘어서 몸성에서 유발되는 인간 고유의 것을 함유하기 위해서는 아닐까? 다시 말해, 몸으로 존재해야만 하는 인간의 안전을 위해서라는 뜻이다.
박 : 몸의 고유성이란 인간의 고유성을 의미하나요?
신 : 현재에도 미래에도 기술이 해낼 수 없는 몸의 유한함을 표현한다고 보는 게 적당할 것 같습니다. 일단은 그 정도로 해두려 합니다. 기술이 해낼 수 없는, 재현할 수 없는 몸이 가진 판타지성을 의미합니다. AR이라 XR를 통해 환상적인 경험을 얻거나 감각을 느끼는 것은 아주 편합니다. 계속 이야기하듯이 디지털은 판타지의 감각의 세계로 들어가기 쉬운 방법입니다. 그렇다면 몸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감각을 주거나 판타지 세계로 넘기기 위해 어떤 방법을 가지고 있을까, 를 연구하려는 시도입니다.
박 : 그것도 결국은 경험에서 비롯된다고 봅니다. 제가 현재 집중해서 연구하고 있는 '경험 없는 몸Körper ohne Erfarung'에 대한 고민입니다. 유사한 경험이 있을 때 사람은 그것을 자기의 경험을 토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아무런 경험이 없으면 이해의 폭이 대폭 줄어듭니다. 비단 경험의 내용만이 아니라 방식도 해당됩니다. (물리적 글자로)읽기, (직접 몸으로)체감하기, (직접 장소로 찾아가서)보기 등의 경험이 없는 몸이 과연 얼마나 체득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입니다.
신 : 우리가 어려운 시대에 어려운 일을 하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어린이극은 판타지를 경험시키기가 생각보다 용이합니다. 어린이들은 경험이 많지 않은데도 금방 판타지 세계로 들어갑니다. 오히려 상상력이 열려 있지 않은 성인들이 어렵습니다.
박 : 아이들은 디지털 테크닉의 경험도 마찬가지로 적기 때문일 겁니다.
신 : 그럴 수도 있겠네요. 또 한 가지, 저는 몸의 테크닉에 대한 것도 다시 정의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력을 거스르기 위해 시작된 발레로 예시를 들자면, 인간이 할 수 없는 것을 상상을 통해 하나의 동작으로 만들고 근접했을 때 관객들은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 성공하는 모습과 무대의 미장센, 음악 등의 복합적인 요소를 통해 판타지로 진입합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해내기 위해 셀 수 없는 연습 과정을 거쳐 동작의 수행을 가능하게 만든 것이 몸의 테크닉이라고 생각합니다.
박 : 이쯤에서 다시 돌아가 고유한 테크닉에 대해 이야기해 볼 수 있겠군요. 정의하신 몸의 테크닉이 디지털 테크닉과는 의미가 다르다는 점은 충분히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무용수로서, 아날로그 테크니션의 역할과 몸의 고유성까지 감안하여 이르고자 하는 고유한 테크닉은 무엇인가요?
대답을 듣기에 앞서, 잠시 푸념하자면 저는 요즘 제각기 나름의 메소드와 테크닉을 위시한 수많은 워크숍에 지쳤습니다. 의도나 목적은 고사하고 계기와 동기가 불분명하거나 고유성이 많지 않으면서 독자적이라고 홍보하면서 책임은 지지 않는 산발적인 비전문가의 워크숍이 너무 많았습니다.
신 : 그 부분에 대해서는 따로 이야기하고 싶네요. 짧게 이야기하자면 '고유성'의 함의가 무용수의 본질이라고 한다면 광의적인 의미로 전문가와 비전문가를 뛰어넘는 정의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다만 관련 분야 지식은 있어야만 하고 굉장히 많은 고민과 고민에 대한 해결지점까지 갖춰야 할 것 같습니다.
몸의 고유성은 인간의 고유성을 함유한다. 몸은 오로지 현재성을 강조하고 과거와 미래의 연속 속에 지극히 현존하는 것으로만 감각 가능하다. 이 지점은 아마 신정민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움직임의 시간성을 어렴풋이 포함하기도 할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정신적인 것과 육적인 것의 시간의 구분, 카이로스와 크로노스의 시간관념을 베르그송식으로 재해석한 개념이다."실재적 시간의 회복"을 꾀한 『사유와 운동』속의 시간 관점을 따른다. 나는 베르그송의 시간관념, 운동성과 변화의 지속성에 근거한 시간을 몸의 움직임과 움직임이 드러내는 카이로스를 주목한다.
즉, 시간과 운동성이 관여하지 않는 정보체, 테크닉에 대항하는 움직임 속의 정보체, 테크닉에 인간의 고유성을 둘 수 있으며 이는 곧 몸의 고유성을 의미한다. 따라서 신정민이 제한을 둔 '몸의 유한성'에 대한 고유성의 관점은 같은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가변성과는 별개의 개념이며 변화 가능 세계의 과학적 움직임 관념에 인간의 물리성 - 몸성이 기여하는 바를 인지한 상태의 현존이다. 이게 관해선 후에 구체적으로 후술 하도록 한다.
*『사유와 운동』La Pensée et le Mouvant, 앙리 베르그송
신 : 저는 틱 스펙트럼에 들어갈만한 반복 행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찌 보면 쓸데없는 움직임이죠. 저는 이 행동의 반복이 개인을 불안과 위협으로부터 안전한 순간으로 이끌어 준다고 느꼈습니다. 불안한 심리를 컨트롤하기 위해 숨을 참는 아주 작은 행동부터 본인만 아는 패턴화 된 행동의 반복이 억제된 감정을 일시적으로 해소하고 안전한 감각으로 이끌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것이죠.
저는 이것을 트레이닝 또는「자기 보호 놀이방법」으로 확장시켰습니다. 이 안전 놀이는 가까운 거리에서 보면 알아차리기 힘든 순간의 포착이지만 조금 더 확장된 행위로 바라볼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작은 고갯짓은 에어팟의 소리를 들으며 리듬을 타는 행동으로 보일 수 있겠지요. 고갯짓이 리듬으로 그리고 춤으로 확장되어 가면서 저를 안전하다는 감각으로 이끌거나 '안전한 내가 하는 행동'으로 확장됩니다.
또는 눈의 깜박임과 찡그리는 표정으로 드러나는 감정의 표현, 근육의 순간적인 수축과 다리 떠는 습관의 행위가 춤추는 움직임으로 확장되는 방식입니다.
요약하자면 쓸데없는 동작으로 보이는 행위를 반복, 확장하는 것이 저의 고유한 테크닉입니다. 틱이나 습관으로 출발하는 행위가 어떤 이들은 불편하게 느낄 수도 있지만 그것이 제 고유한 테크닉을 통해 확장되며 다층적 관점으로 제시될 수 있지 않을까요?
박 : 몸을 이용해서 만드는 안전한 감각을 추구한다는 말로 들리네요.
신 : 맞습니다. 저는 그 안전에 대한 감각을 추구하기 때문에 더욱더 춤추고 싶습니다. 반복적인 행위가 계속 확장되어서 극단적으로 몰아갈 때, 누군가 '왜 저렇게까지 하지?'라고 의문을 품을 때까지 불안감을 털어내는 움직임을 계속하는 것이야말로 제가 안전함을 느끼는 순간입니다. 저는 '왜 저렇게까지 하지?'라는 생각이 들도록 하고 싶어요.
박 : 그렇다면 '안전'은 내면의 감각이지만 결국 몸의 작용으로 이뤄지는 거군요. 이 점은 제가 증명하고 싶은 '역신체화'의 과정으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 쓸모없이 느껴지는 작은, 때로는 정신신경학적의 범주에는 증상으로 들어갈 수도 있는 인간의 불완전함을 극단적으로 노출시켜 해방감을 선사하는 방식. 흥미롭네요.
얼마 전에 '무용한 곳에 자아가 있다'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길에서 주운 생각 8 「나의 가치는 무용함에 있다.」 참조) 즉, 오히려 목적에서 벗어난 자아의 상태일 때 인간 고유의 가치를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의 가치관과 비슷한 결을 가지고 있어서 전적으로 동의하고 또한 기대되네요.
신 : 저는 그것을 인간이 가진 불완전하고 유한한 몸의 수행성이라는 문장으로 정리했습니다.
박 : 좋은 문장입니다. 완전함을 추구하는 AI의 가치관과 다른 '불완전성'에 기대어 인간 고유의 가치를 찾는 것이 훨씬 더 인문학적인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몸이 철학의 장소'여야 할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나는 미셸 푸코의 『자기 자신에 대한 진실 말하기』책을 떠올렸다. '자기 테크닉'에 관한 것이다. 푸코는 인간과 동물을 비교하며 추위를 막을 털과 사냥을 위한 발톱, 힘, 빠른 팔다리가 주어지지 않은 인간의 한계를 위한 '자기 돌봄'을 주장했다. '인간의 한계를 위한 테크닉', 여기에서도 테크닉은 디지털 테크닉의 개념이 아닌 '돌보기/배려하기'의 의미로서 테크닉을 말한다. 신정민에게는 '안전한 곳으로 이끄는 사소한 반복패턴의 행동'으로 수행되는 '자기 돌보기/배려하기'이다. 이 같은 자기 테크닉은 AI를 기반으로는 절대 이룩할 수 없다. 자기 테크닉은 스스로 돌보아야만 하는 불완전하고 유한한 인간들에게만 가능한 것이다. 거기에서 철학이 태어나고 사유와 담론이 태어난다.
푸코는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의 '알라.'는 권유가 돌보고 배려하라는 뜻이라고 말한다. 또한 '너 자신'은 영혼, 내면의 나를 뜻한다고 말한다. 그는 아스케시스Askesis를 주목했다. 훈련, 단련을 의미하는 단어로 무소니우스가 주장한 ⓐ신체와 관련된 단련과 훈련 ⓑ영혼과 관련된 단련과 훈련 ⓒ영혼과 신체가 동시에 관련된 단련과 훈련의 테크네Teckne를 예로 든다. (*『자기 자신에 대한 진실 말하기』, 미셸 푸코)
우리가 말하는 '몸성'은 바로 아스케시스를 기초로 한 개념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밝힌다. 즉, 외모에 관련된 것이나 '몸'의 미감, 신체와 관련된 단련만이 아니라 영혼과 신체와 관련된 테크닉을 전제로 한다.
이런 차원에서 신정민은 '바깥을 향한 몸성'이 익숙한 이들로부터 지나치게 '내면을 향한 몸성'을 탐구한다는 우려를 받기도 한다. 그는 자신이 가진 불안을 비롯한 내면의 것을 어떻게 에너지로 사용하고 몸의 판타지성을 구현해 낼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으로, 느끼게 하는 것으로 전환시키려 한다. 이는 정신이 육체에 미치는 영향, 신체화로 생각할 수 있는데 그는 이 지점에서 오히려 작은 신체화 증상의 반복 행위를 통해 내면의 불안을 해소하고 안전한 감각으로 이르는 '역신체화'를 최종적으로 실행시킬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신 : 안전에 대한 고민은 22년도쯤부터 지속적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군대에 있기도 했고, 전쟁이나 분쟁에 대한 불안, 묻지마 범죄, 지하철 칼부림, 부상 등의 연속적인 사건으로 점차 '안전 갈망'이 심화되었습니다. 또한 무용수로서의 가치, 예술작업에 대한 가치를 인정받기 쉽지 않은 환경 또한 위험한 환경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가장 충격을 받은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지하철에서 묻지마 칼부림 사고가 있었던 시기였습니다. 모두가 조금 겁에 질려 있었지요. 지하철에서 몇 명이 핸드폰을 보고 소리를 지르자 같은 객차에 있는 사람들이 큰일이 난 줄 알고 공포에 물들었던 사건입니다. 알고 보니 소리를 지른 것은 아이돌 SNS 라이브 방송에 대한 환호였지요. 이 사건은 저에게 '안전'에 대한 생각을 더욱더 심화시켰습니다. 위험하다고 느끼는 순간은 과연 어떤 순간인가, 특별한 순간이 아니라 일상이라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하루를 생각해 보십시오. 일어나는 순간부터 일정을 보내기 위해 밖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을 거쳐 하루를 보내는 동안 느낄 수 있는 수많은 위험이 있습니다. 일어나지 않았지만, 안전하다고 느끼지 않는 순간들입니다. 이때, 어떻게 개인을 안전한 순간으로 이끌 수 있을 것인가. 여기에서부터 출발되었습니다.
박 : 위험과 안전의 감각을 오갔던 피상적이지만 피상적이지 않은 신호를 포착하셨군요. 이 작업은 1인의 작업인가요? 다수의 인원으로 확장 가능할까요?
신 : 일단은 1인으로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출발이 지극히 개인적인 저의 '몸'의 이야기 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안전에 대한 감각의 탐구는 충분히 다수의 인원으로도 확장시킬 수 있다고 봅니다. 실제로 이 작업을 위해 워크숍을 준비 중에 있는데요, 그분들과 더 전개, 연구한 이후에 다양한 방법으로 확장시킬 계획입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개인 무용수, 퍼포머로 활동하면서 쓰임새가 있으며, 활동하고 있고, 이러한 표현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나타내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제가 사회 구성원으로서 이런 것을 하고 싶고, '몸'을 이러한 방식으로 대하고 있다는 조용한 시위입니다.
박 : '조용한 시위'라는 말이 인상적입니다.
신 : 네. 고민을 대놓고 하진 않지만 나름대로는 꽤 필사적인 행위입니다.
박 : 고유한 테크닉인 '작은 틱 스펙트럼의 행위'가 의미하듯이요. 그것은 불안해소와 안전감각을 향한 최소한의 행동이니까요. 개인적으로는 내면에 가지고 계신 '조용한 시위'격의 것들이 저절로 새어 나왔으면 합니다. 새어 나오는 호흡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신 :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그저 저는 제 이야기를 그대로 보여주는 게 효과적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감각을 다루는 이야기는 관객이 참여할 때 더 효과적이지만 또 위험하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일단은 제 개인의 이야기에서 충분히 다뤄보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 개인적인 이야기를 공론시키고 싶은 욕구가 있으니 점차 연구를 통해 확장시켜 나갈 겁니다.
신정민과의 대화는 점점 더 나에게 『딛는 몸 - 철학의 장소』에 대한 확신을 주었다. 알렉산더 클루게와 하버마스의 '공론장Öffentlichkeit"의 개념에 점진적으로 사고하고 있는 시점에 적절했다. 우리가 공통적으로 느끼고 있는 불안, 안전을 갈구하게 되는 사고 Happening은 너무 많다. 그중 테크닉에 대한 논의, 판타지에 대한 논의와 함께 그가 선택한 작고 구체적인 행동방식은 『딛는 몸』이 제시할 수 있는 한 방향을 보여준 것 같아 기쁘다. 그는 몸으로 그리고 나는 철학의 장소로 연구하며 인간의 고유성과 몸의 고유성이 겹치는 곳을 계속 탐색할 것이다. 이로서 "딛는 몸"이 공론화 되어 가는 과정의 관찰자가 되어 보다 세밀한 '철학의 장소'를 만들어 나갈 준비를 마친다.
*무대에 올리기 전에 먼저 생각을 공유해 준 무용수 신정민에게 감사인사를 올립니다.
* 본지에 적힌 글과 특정 개념, 단어의 저작권은 무용수 신정민과 작가 박은혜에게 있습니다.
ⓒ EHP 박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