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낮, 아지랭이
태어난 곳은 부산이다. 대연동 산72번지. 엄마가 집에서 산통을 겪고 있을 때 아빠는 옆에서 강냉이를 먹고 있었다고 한다. 또 딸 낳으면 쫓아낼 거라고 했단다. 우리 집에는 이미 두 명의 딸이 있었고, 나는 세 번째다.
내가 태어나고 아빠가 집을 나갔다. 엄마는 분풀이로 그 자리에서 방금 아이를 낳은 몸으로 강냉이를 오독오독 씹어서 다 먹어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이가 안 좋다고 지금도 그 얘기를 한다.
엄마는 목욕탕에서 때밀이를 했고, 아빠는 보일러실을 지켰다고 한다.
애 셋을 어떻게 키웠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낳고 일주일 만에 또 목욕탕에 때밀이를 하러 갔고, 자주 자리를 비우는 아빠 때문에 보일러실까지 지켰다고 한다.
내가 엄마에게 들은 아빠는 담배를 못했고, 술도 못했고, 여자를 좋아했다. 여자가 집에 찾아와서 아빠를 데려가는 날도 있었는데 엄마는 신경 쓰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틈틈이 엄마를 때렸고, 자주 도박을 하셨다고 한다. 엄마가 집을 사기 위해 모아둔 200만 원을 들고나가 도박으로 날렸다는 일화가 있다. 몇 안 되는 아빠에 관한 이야기 중 하이라이트다. 여자와 도박!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급사를 하셨는데, 약을 잘못 먹어서 그렇다고 했다. 어딘가 안 좋아서 약을 받아다 드셨는데, 조금씩 먹으라 한 것을 양을 많게 드셨나 보다. 어느 날 아파 죽겠다고 뒹굴더니 그 길로 돌아가셨다 한다.
엄마는 울지 않았다고 한다. 그저 실신을 몇 번 했다고 한다.
내가 1월에 태어났고, 아빠 제사가 11월에 있으니 아마도 나는 돌이 되지 않은 젖 먹이었을 테다. 엄마 뱃속에는 5개월 된 아이가 있었다 한다. 이론적으로 말이 되는 소린진 모르겠지만 그렇다 했다. 위로 줄줄이 딸만 셋인 집안에 5개월 된 뱃속의 아이. 그 아이는 아들이냐 딸이냐 물어봤더니 아들이었다 한다. 그 애를 낳았더라면 그래도 아들 없는 설움은 없지 않으냐 했더니 옆에서 듣고 있던 언니가 앙칼지게 끼어들어 대답한다. 아마도 걔가 태어났더라면 비행청소년이 되었을 거라고.... 하지만 나는 그 아이가 그립다.
뭐.. 암튼.. 우린 딱히 비행스럽지 않았고, 남들 보기에는 너무나도 착하고 모범스럽게 자라긴 했다.
왜 비행을 꿈꾸지 않았느냐? 잘 모르겠다. 어떻게든 착하게 굴어서 그나마 내게 주어진 현실 속에서라도 살아남아야 했나? 비행도 사치다. 그랬다.
내가 어릴 때 아주 아주 예뻤다고 한다. 병원을 데리고 가면 간호사들이 일을 하지 않고 나를 서로 안으려고 몰려들었다고 한다. 중학생 땐가.. 고등학생 땐가.. 집안의 결혼식에 엄마를 따라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어떤 할머니가 내 손을 붙잡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이고.. 야가 와이렇게 됐노~'
그래서.. 어릴 때 내가 예뻤다는 말을 나는 믿는다.
나는 목욕탕에서 컸다. 그때 목욕탕에 아이를 낳지 못하는 의사 부부가 자주 왔었는데, 나를 많이 예뻐했단다. 그 당시 아빠는 매일 밤 나를 보며 갖다 버리라고 행패를 부렸는데, 그 사실을 아는지 몰랐는지.. 어느 날 그 의사 부부는 나를 안고 자기들 집으로 데려갔다 한다. 이것은 완벽한 엄마 입장에서의 표현이다. 내 생각에는 엄마가 줬을 거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집이 난리가 났단다. 아빠가 막내딸 찾아오라고 난리 난리 행패를 부린 것이다.
다음날 엄마는 어딘지도 모를 그 의사 부부의 집을 동네만 알고는 찾아갔다. 이집 저 집 돌다 보니 어느 집에 기저귀가 하얗게 빨려서 널려있었는데, 그 집을 들어갔더니 내가 있었단다. 그렇게 나를 찾아서 다시 집으로 왔다. 얼마 후 그 의사네 부부는 임신을 했고, 아들을 낳았단다. 엄마는 내가 널 안 데려왔으면 구박댕이가 되었을 거라고 말하는데, 난.. 그래도 그 집에서 컸더라면.. 하는 상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는 이 집 저 집 맡겨진 것 같다. 결혼식장에서 만난 할머니도 나를 키워 주신 분 중 한분이신데, 내가 그분을 '엄마'라고 불렀단다. 진짜 엄마가 오면 '언니'라고 불렀단다. 큰집에도 좀 맡겨졌던 것 같다. 그리고 애를 잃어버려 난리가 났었단다. 이 집 저 집 꽤 많이 돌아다니다, 결국은 경남 어느 시골로 가게 되는데, 그곳은 내 외할머니댁이다. 내 나이 3살이었다. 3살이면 이제 겨우 걸어 다니는 어린 여자 아이일 텐데, 돌봐줄 사람 하나 없는 시골 외할머니댁으로 가게 된 것이다.
그곳에는 외할머니가 있었고, 외삼촌들과 이모가 있었고, 언니 두 명이 먼저 가서 그곳에서 지내고 있었고, 사촌 여자 아이도 그곳에 있었다. '순이'. 그 아이에게는 그곳이 친할머니 댁이었다.
불쌍한 아이들 넷이 그렇게 각자의 할머니 품안에서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