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낮, 아지랭이
나에겐 언니가 있다. 한 명 있다.
생각만 해도 목이 메이고 눈물이 흘러 가슴이 아파오는 언니가 한 명 나에게 있다.
엄마 같은 언니가 있다. 전생에 무슨 죄가 있어, 그렇게 희생을 하며 커야 했는지 모를 언니가 한 명. 나에게 있다. 진짜 나를 낳아준 엄마가 있지만, 엄마처럼 나를 키워준 언니가 한 명 있다. 나보다 세 살이 많은 언니가 있다. 다음생에는 꼭 반대로 태어나, 한없이 베풀고 싶은 언니가 한 명 있다.
외할머니댁에는 내 베개가 없었다.
난 항상 언니의 팔을 베고 잤다. 내가 세 살이면 언니는 다섯이었을까.. 여섯이었을까..
빠른 75년생인 내 나이가 애매하다. 아무튼 나보다 2년 6개월 빨리 태어난 언니는, 나를 품안에 품고 팔베개를 한 채 나를 재웠다. 핏줄 본능. 그때 언니가 나를 품은 것을 그것 말고 어떤 감정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이 집 저 집 떠돌다가 시골 외할머니댁으로 간 나와 언니는 그렇게 함께 컸다. 외할머니댁을 떠나는 순간까지 난 베개가 없었고, 언니는 당연한 듯 나를 품고, 우리는 그렇게 항상 같이 잤다.
우리에겐 큰 언니가 있었다. 엄마 표현에 의하면 가장 하얀 피부를 가졌고, 가장 예뻤고, 아주 많이 순했다고 한다. 지금은 없다. 큰 언니가 나를 등에 업고 뛴 기억 하나와 시골집 마당에서 발작을 일으켜 입에서 하얀 거품을 내뱉었던 기억 하나. 그리고 상여. 그리고 시골집 멀리 건너편으로 보이는 산 어딘가에 있을 큰 언니의 무덤. 그것이 내가 아는 전부다. 비가 엄청나게 내려 산이 무너져 버린 어느 날, 그 어딘가에 언니의 무덤이 있었다는 이야기. 할머니가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하던 그 지난 어느 날.
큰 언니가 죽던 새벽, 엄마 꿈에 큰 언니가 와서 안기더란다. 엄마는 그렇게 큰언니의 죽음을 누구보다 먼저 알았다고 한다.
얼마 전 언니와 시골집에서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큰 언니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언니가 내게 기억하느냐고 물었다. 막내 외삼촌이 발작을 일으키고 있던 우리 큰 언니의 발을 질질 끌고 다닌일에 대하여. 나는 모른다. 언니는 생생하게 기억한다고 한다. 그리고 언니가 말한다. 막내 외삼촌도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였다고.
그럴까?
가만 보자.. 우리 큰언니가 열 살에 죽었으니까.. 그때 내 나이가 다섯 살? 그럼.. 막내 삼촌이.. 몇 살이었을까.. 아마도 고등학생이지 않았을까. 울컥한다. 외할머니댁에서의 이야기는... 어떤 이야기든 울컥울컥한다.
구박하는 사람 하나 없었는데, 그저 그때 그 시절 이야기는 서럽고 서럽고 또 서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