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낮, 아지랭이
언니는 참 예쁘고 똑똑했다. 시골 초등학교에서 부반장을 했다.
우리는 모두 공부를 잘했다. 세명이 모두 방학식날에 우등상을 받고 집까지 한걸음에 달려가 삼촌에게 우등상을 내밀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쭈쭈바를 하나씩 먹었다.
나는 학교를 들어가기 전에 구구단을 외웠으며, 한글을 깨쳤고, 언니의 국어책을 달달 외우고 다녔던 것 같다. 깨알 같은 글자가 빼곡히 담긴 작은아씨들을 읽어야 하기도 했다.장구 삼촌은 우리를 아낌없이 사랑했고, 아낌없이 매질을 했다. 사랑의 매. 나는 그렇게 기억하고, 순이는 그렇게 기억하지 않는다.
장구 삼촌은 시골 마을에서도 똑똑하기로 유명했다고 한다. 고등학교 때까지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은 사람. 그런데 대학시험만 치러가면 시험지에 글자가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끊임없는 낙방을 하고,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고 있었다. 시골집 중간방에서.
삼촌이 공부를 할 때쯤에는 아마도 내가 예닐곱 살이 되었거나 또는 국민학교를 들어갔을 때 즈음이었을 테다. 우린 마음껏 떠들고 놀지 못했고, 삼촌은 삼촌이 가둬놓은 틀 안에서 우리가 벗어날 때마다 벌을 세우고 매를 들었다. 그때마다 여시처럼 웃으며 애교 떠는 나를 삼촌은 예뻐했다. 무서운 표정으로 야단치다가도 나를 보면 웃고 말았고, 들고 있던 매를 놓고 말았다.
순이는 달랐다. 한번 울기 시작하면 할머니가 밭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올 때까지 그치지 않고 울었다. 순이의 고집은 아무도 꺽지 못했고, 삼촌으로 하여금 한번 들 매를 두 번 세 번 들게 했다. 순이의 기억 속에 장구 삼촌은 공포였고 내 기억 속의 장구 삼촌은 유일한 내편이었다.
순이. 순이는 외가댁 제일 큰 외삼촌의 딸이다. 외갓집에서 태어났고, 그곳에서 계속 자랐다.
순이에겐 엄마가 있었다. 내 기억 속에 얼핏 순이의 엄마가 존재한다. 지금 순이의 모습과 오버랩되는 것이 내 상상 속의 모습인지, 실제로 본모습인지 난 잘 모르겠다. 순이 엄마는 중간방에서 지냈다. 내 기억 속에서 우리는 항상 중간방에서 지냈으니, 순이 엄마는 내가 아주 어릴 때 돌아가셨나 보다. 폐병이었다.
순이 엄마가 순이를 임신한 상태에서 우리 엄마를 찾아왔단다. 그때 이미 폐병이었다고 한다. 엄마는 아이를 없앨 것을 권유했지만, 순이 엄마는 아이를 낳겠다고 고집을 부렸단다.
큰 외삼촌은 군대를 간 상태였고, 순이 엄마는 임신한 몸으로 외가댁을 찾아가 거기서 순이를 낳았다. 그리고 시름시름 아팠고, 우리 할머니는 시집도 안온 큰며느리 병수발을 들었을 테다. 그 사이 큰 외삼촌은 또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렸고, 외가댁에 나타나지 않았다. 순이 엄마가 지내던 중간방은 항상 무서웠다. 몸이 아픈 사람이 지낸다는 이유만으로 뭔가 으스스했다. 훗날 순이의 얘기로는, 순이조차도 그 방을 무섭다며 들어가지 않았다고 한다. 아무튼, 순이 엄마는 비운의 여인이 되었고, 외가댁엔 아주 큰 꽃상여가 앞마당에 세워졌다. 순이는 외가댁에 버려진 채였다.
부모가 키울 능력이 안되어 맡겨진 아이 셋. 부모의 풋사랑 흔적으로 남은 아이 하나. 그중 제일 큰 아이는 곧 작은 꽃상여가 되어 또 나간다. 이제 셋이 남았다.
우리는 감자와 고구마를 간식으로 먹었고, 뒷산 입구에 있는 가지밭에서 어린 생가지를 따서 먹기도 했다. 할머니 일하는 밭에서 놀다 보면 새콤달콤한 꽈리를 할머니가 따 주시기도 하고, 밭으로 가는 길에 있는 뽈똥 나무에서 시큼한 뽈똥을 따서 먹기도 했다. 일하는 밭에 따라가는 날에는 그 옆 산기슭에 흙을 파서 집을 짓고 놀았다. 뭔가를 짓고 만드는 일은 내 기억 속에서도 아주 행복한 기억이다. 호박잎과 꽃을 따서 소꿉놀이를 하기도 했는데, 그 또한 내 기억 속에서 아주 행복한 부분이다. 아무 생각 없었을 내 어린 시절에 어쩌면 나는 나도 모르게 나만의 세상을 만들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