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부산, 엄마집

한 낮 아지랭이

by metel

엄마 품으로 온 첫날 밤, 어김없이 난 오줌을 쌌다. 오줌을 싸고도 그냥 잤나보다. 잠결에 엄마가 내 옷을 갈아입히며 삼촌과 하는 대화가 들린다. 나를 데리고 올라온 장구삼촌이 내가 얼마나 자주 오줌을 쌌는지 얘기한다. 그때 내 나이가 9살이었고,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그렇다. 난 그때까지도 자주 오줌을 쌓고, 시골집 앞마당엔 항상 내가 깔고 잔 하얀색 이불이 널려 있었다. 가끔은 이모가 그 이불을 널며 나와 눈이 마주치기도 했지만, 아무도 나를 야단친적은 없다. 자다 일어나 벌을 선 적도 가끔 있었는데, 장구 삼촌만이 내게 그렇게 했다. 키를 뒤집어 쓰고 옆집에 가서 소금을 얻어 온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어김없이 오줌을 쌌다. 엄마가 사랑을 못 받고 커서 애가 아직까지도 오줌을 싸나보다라며 삼촌에게 얘기한다.

그래, 난 엄마품에서 크지 못해서 아직까지 이런거야. 나 스스로 나를 불쌍히 여기고 감싸고 동정한다. 그날 이후, 난 밤에 오줌을 싸지 않았다.


깜깜한 지하 단칸방. 그곳은 맨션의 지하였다. 지하계단을 통해 들어오면 우리같은 집이 네집이 있었다. 계단을 기준으로 오른쪽에는 핫도그 아줌마가 살았다. 엄마가 일하는 목욕탕 맞은편에서 핫도그 장사를 하신다. 우리 또래의 아이들이 있었고, 그 집은 그래도 방이 두칸이나 되었다. 내 눈에는 아주 많이 부자로 보였던 집이다. 계단 왼쪽으로는 우리가 지금도 최양이모라고 부르고 있는 최양이 살고 있었고, 그 옆집이 우리집이다. 최양이모는 우리가 이모집에 처음으로 간 날 맛있는 우유를 타서 주었는데, 그게 프리마에 설탕을 탄 것인지 분유를 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겐 너무나 신기하고 맛있는 음식이었다. 우리집을 지나 꺽어져 붙어있는 집에는 언니와 같은 반에 있는 언니가 사는 집이었다. 작은 쪽창문 하나 없는 깜깜한 그곳. 네집이 접하고 있는 중앙은 그냥 비어 있었던것 같다. 마당도 아니었고, 그저 이 집 저 집을 왔다 갔다 하는 공간이었을 뿐. 그곳마저 깜깜하여 항상 불이 켜져 있었다. 나와 언니가 누우면 방의 반을 차지하는 곳. 엄마는 그런 곳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엄마에 대한 원망도 그리움도 없었다. 낯설음에 대한 두려움도 없었다. 태어날때부터 이리 저리 옮겨다니며 살았을테니, 아마도 나는 그런 환경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을것이다. 아무것도 가져본 것이 없으니, 부족함에 대한 불만도 없었다.


그렇지만, 자식을 버려두고 혼자 7년을 지냈으면 멀쩡한 집 한칸은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엄마는 혼자 그 긴 세월동안 뭘 하며 지냈을까. 어떻게 살았을까. 시골에 우리를 보러 오는 것도 일년에 한번 될까 말까 했는데. 하룻밤도 자지 않고 점심에 잠시 우리 얼굴 보고 올라가는것이 전부였는데.

이런 생각들은, 나이가 들어서야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어릴땐 그저 여기든 저기든 갖다 두면 그자리에 그대로 아무생각 없이 있는 아이였다. 내 어린시절의 기억들이 단편으로만 존재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나는 현실에 대해 스스로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아이였고, 다만 상처를 주면 상처 받았고 서로움을 주면 서러워 했을 뿐이다.




나는 전학을 했다. 꽤 쌀쌀한 날씨였음에도 불구하고 치마를 입은 여자아이들이 많았고, 다들 하얀색 양말을 신고 있었다. 시골에서는 양말을 신으면 뽄쟁이라고 놀렸다. 그런데 이곳은 모두 양말을 신고 있었다.

처음엔 시골에서의 학교 생활처럼 선생님이 뭘 시키면 손을 번쩍 들어 말했다. 하지만, 내가 말을 할때마다 웃어대는 아이들때문에 난 점점 소심해졌고, 더 이상 손을 드는 일을 하지 않았고, 다른 아이들에게 말걸기를 꺼리게 되었다. 이런 성격의 변화는 순식간에 일어났다. 급기야는 같은 반 아이들에게 나도 모르게 언니라고 부르게 되는 일이 생기게 된다. 내가 가진 좁은 세상에서 좀 더 넓어진 세상을 나온 나는 전혀 적응하지 못했고, 내가 나를 누구보다 먼저 낮춰버림으로써 주위 사람들로부터 보호 받고자 했다. 나는 나를 누구보다 많이 동정했고, 불쌍한 아이처럼 행동했다. 친구들은 낯선 아이에게 친절을 베풀려고 했고, 나는 그 친절이 너무나 고맙고 감개무량한 나머지 부담스러워 그들 앞에서 솔선수범하여 나를 낯춘것이다. 비굴함. 나는 비굴했다.

반면, 언니는 적응을 참 잘했다. 친구도 금방 사겼다. 엄마는 언니를 예뻐했다. 그 당시 부산아이들이 머리에 많이들 하는 고무줄이 있었다. 예쁜 색깔의 망사같은것이었는데, 엄마는 매일 아침 그걸로 언니 머리를 묶어 주었다. 나는 그게 부러웠다.

나는 학교에서 집으로 오는 길을 알지 못했다. 언니가 마칠때를 기다려 언니와 함께 매일 집으로 돌아오곤 했는데, 어느날은 언니가 아무리 불러도 나오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얼마나 소리높여 언니를 불렀을까. 담임 선생님이 나오셨다. 그리곤 5학년 남자애들을 붙여주었고, 그들은 나를 엄마가 일하는 목욕탕으로 데려다 주었다. 언니는 먼저 집에 와있었고, 친구와 함께였다. 언니는 더이상 나를 보살피지 않았다.

난 버릇처럼 언니 품을 파고 들었다. 언니가 느닷없이 내게 고함지른다. '엄마 팔베게 해라!'

나를 감싸고 있던 유일한 보호막이 무너진다. 세상과의 유일한 통로가 사라진다. 서러움. 두려움. 버려짐. 가슴 아프게 울어보지도 못할 9살. 철저하게 외톨이가 되어 내 세상안으로 기어들어간다. 언니에게도 낯설고 힘든 엄마집이었을까. 그것이 언니를 변하게 만들고 있었다. 왜냐면 그 집엔, 우리만 사는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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