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엄마의 남자

한 낮 아지랭이

by metel

엄마에겐 남자가 있었다. 자그마치 엄마보다 10살이나 어린 남자였다. 어느날 우리에게 예쁜 옷을 사 입혔고, 우리는 그를 만났다. 그게 집밖이었는지 집 안 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밖에서 외식을 한것 같기도 한데, 그것이 드라마에서 본 기억인지, 실제 내 기억인지 난 잘 모르겠다. 아무튼, 우린 그를 만났다. 그리고 그는 가끔 우리집에 와서 자고 갔다. 언니의 기억이 궁금하다. 하지만 우린 그런것에 대해 한번도 같이 대화를 나눠본적이 없다. 우린 자매였으니까. 피를 나눈 자매란 그런것이다. 굳이 그것에 대해 말을 꺼내고 얘기할 필요가 없는 사이.


나는 학교 적응에 실패했다. 학교만 가려고 하면 머리가 아프고 배가 아팠다. 어느날은 학교에 가보니 우리반에 아무도 없었다. 알고보니 부산의 국민학교는 오전반/오후반 제도가 있었는데, 난 그걸 몰랐다. 담임 선생님은 그런 나를 유독 예뻐하셨다.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자그마한 아이. 선생님은 내게 물감도 주셨고 스케치북도 주셨고, 서랍을 정리하다가 뭔가가 나오면 그때마다 내게 주셨다. 아이들은 시샘했다. 그렇지만 국민학교 3학년 아이들은 순수했다.

4학년 선생님은 매일 나를 데리고 노셨다. 무릎에 앉히고 노셨고, 쉬는 시간마다 나를 불러 데리고 노셨다. 그 분은 2학기때 학교를 떠나시고, 교감 선생님이 담임을 맡으셨다. 5학년 담임 선생님은 조금 이상했다. 이상한 소문도 무성했다. 조금씩 성장하는 여자 아이들을 숙직실로 불러 들인다는 이야기들이 나돌았다. 키가 크고 예쁘장한 애들이었다. 5학년때 나는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귀엽고 사랑스런 외모는 없어지고 미운 모습들이 얼굴 곳곳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나온 삶의 흔적들이 반영되고 있었다.

6학년 담임선생님은 여자분이셨다. 아름다운 처녀샘. 시간이 지나 되돌아 보았을때 유독 생각나는 선생님이 있다. 찾고 싶은 선생님. 두 눈 마주보고 싶은 선생님. 6학년 담임선생님이다. 이 분은 자신의 감정을 숨길줄을 몰랐다. 나를 있는 그대로 구박할 줄 알았고, 짓밟을 줄 아는 분이셨다. 그 억울함은 내가 아무리 성장했고 나이가 차고 신앙이 깊어져도 지워지지 않는다. 일부러 찾진 않겠지. 그렇지만 언젠가 만날일이 있다면 그 얼굴 마주보며 미소짓고 싶다. '보고있니? 난 당신보다 훨씬 멋진 어른으로 성장했어. 당신은 하지 못한 일을 난 해낸거야. '


내가 5학년이 되었을때 엄마는 OB집을 시작했다. 술집이다. 우린 학교와는 1시간을 버스를 타고 다녀야 하는 곳으로 이사를 했고, 술집 한켠에 붙어있는 방에서 생활했다. 1평도 안되는 1층방에서 나는 잤고, 부엌위로 있는 조금 더 넓은 다락방에서 언니가 잤다. 그리고 엄마의 남자는 이제 한집에서 같이 산다.


'어떻게 딸을 둘이나 가진 엄마가 술집 할 생각을 했을까. 다른 집 엄마들은 식당일도 하고 포장마차도 하며 억척같이 자식들 잘도 키우든데, 우리엄마는 왜 술집을 할 생각을 했을까. 아이들이 한시간씩이나 버스를 타고 다녀야 할만큼 먼 곳으로 굳이 이사를 가야 했을까. 자식을 키우는 엄마가. 왜 그랬을까. '


이런 생각은 언니의 생각이다. 언니는 그런 생각을 했나보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현실에 대한 어떤 불만도 불평도 하지 않았다. 다만, 한순간도 행복하지 않았을 뿐이다.

내가 자라면서 제일 많이 들은 말은 '엄마가 너네를 고아원에 보내지 않은걸 감사하게 생각해야해' 였다. 엄마 주위 사람들은 우리를 엄마의 혹으로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를 세뇌시켰다. '너네 엄만 불쌍한 여자야. 너네 버리고 새출발하라고 그렇게 말해도 너네 엄마가 그렇게 안하더라. 너네가 잘해야해. 착하게 커야 해'


우린 술집을 벗어나 같은 동네의 일반 가정집으로 이사를 했다. 그곳에서 엄마는 새벽 퇴근길에 강도를 만났고, 연탄재로 온 얼굴이 부벼진 상태로 집에 돌아왔다. 가진 돈을 다 털렸고, 그래서 주인에게 월세를 못 낸단 얘기를 하고 있었다. 되새김할수록 끔찍한 기억이다. 여자혼자 새벽길에 퇴근을 하는데 남자를 만났다. 남자는 길가에 있는 연탄재를 엄마 얼굴에 부벼댔단다. 엄마의 안경은 깨졌고, 얼굴은 멍투성이 되어서 귀가를 했다. 그 와중에 나는 오직 시골집 갈 생각만 했다. 방학때마다 시골집을 갔었고, 우릴 쫓아냈던 외숙모는 우리가 갈때마다 참 반갑게 맞아 주셨다. 순이와 나는 절절했다. 서로가 너무나 그리워 편지를 주고 받았다. 그리고 만나면 우린 밤새 못다한 얘기를 서로 나눴고, 종이인형을 할머니 몰래 사서 갖고 노는 시간은 천국이었다. 어떨땐 언닌 남고 나만 시골집을 가기도 했다.


우린 다시 살던 동네 옆으로 이사를 갔다. 초등학교 6학년때다. 이번엔 방이 두칸이나 되었고, 햇볕도 잘 들었고, 뒷방의 문을 열면 잡초가 무성한 공터도 있었다. 엄마의 남자도 따라왔고, 그는 뒷방에서 아주 눌러앉았다. 그는 우리와 같이 라면을 먹기도 했고, 라면을 급하게 먹는다며 나에게 고함을 지르기도 했다. 어떤날은 누워있는 나의 이마를 발로 밟고 지나가기도 했다. 쳐다본다는 이유였다. 그는 우리에게 자기가 밖에 나가서 뭘 하고 왔는지 자랑스럽게 말해주기도 했다. 어떤 돈 많은 사모님을 만족시키기 위해 얼마나 힘을 써야만 했는지 그는 우리에게 아주 자세히 말해주었고, 국민학교 6학년인 나는 그 얘기를 모두 알아들었다. 그는 그 돈으로 우리에게 500원짜리 짜장면을 사주었다. 그가 집에 있는 날은 거의 매일이었고, 나는 점점 집에가는 시간이 싫어졌다. 친구들은 내게 집에 있는 남자가 누구냐고 종종 물었고, 그때마다 나는 삼촌이라고 대답했다.

엄마는 출퇴근을 했다. OB집을 계속 했던것인지 아니면 술집을 나갔던 것인지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쨌든 엄마는 아침에 들어와서 낮에 내내 자고 저녁에 집을 나갔다. 엄마는 항상 자고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아팠다. 아니면 술에 쩔어 있었다. 어떤 날은 엄마가 대낮에 택시를 타고 와서 동네 입구부터 고래 고래 술주정을 하며 집으로 들어온 적이 있다. 엄만 방에 대자로 엎드려서 통곡하며 울었다. 나는 그 처절한 소리가 싫었다. 엄마의 통곡소리와 함께 내 삶은 더더욱 비참해졌고 나락으로 떨어졌다. 자식 앞에서 우는 엄마. 그건 부모라는 이름으로 절대 해선 안되는 일이다.


우리집 문을 열면 맞은편집이 마주보인다. 조그만 골목을 사이에 두고 맞은편집 현관 안으로 그 집 안이 다 보인다. 그 집도 단칸방. 그집과 우리집 문을 모두 다 열어두면 우린 서로의 집을 들여다 보게 된다. 그 집의 아이는 현관문을 열어두고 자주 우리집을 쳐다보곤 했다. 그리곤 어느날 내게 말을 걸었다. '우리 친구할래?'

내 친구 경아. 다니는 학교가 다른 동네친구가 그렇게 나에게 생겼다. 내 모습을 속속들이 알고 있고 처지가 비슷한 동네친구 경아. 우린 중학교도 다르게 갔고 고등학교도 다르게 갔지만 참 친하게 지냈다. 똑 같이 가난했지만 그 친구의 엄마는 우리 엄마와는 다른 방식으로 참 열심히 사셨다. 난 그게 부러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6 부산, 엄마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