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세련됨을 열망했다. 뭔가 반듯하고, 각이 세워진, 쿨하고, 모던한. 사전적으로 ‘세련’은 “서투르거나 어색한 데가 없이 훌륭하고 미끈하게 가다듬음”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주변에는 온통 세련되고, 똑똑한 것들로 넘쳐난다. 바야흐로 스마트한 세상 아니더냐? 그렇지만 나는 요즘, 수수하고, 익숙하면서 정감 있고, 그러면서도 그 존재감이 느껴지는 사물과 사람들이 좋다. ‘촌스럽다’는 말도 사전을 찾아보았다. “세련된 맛이 없이 엉성하고 어색한 데가 있다.”라고 되어있다.
지난 토요일, TV를 시청하며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가 본 모 프로그램에서 '촌스러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젊은 여자 디자이너가 남들과는 달리 당당한 촌스러움에 대해 이야기하며 실제로 자신은 촌티 패션으로 얼마 전 패션쇼까지 열었다고 했다. 20대인 그녀가 입는 옷을 보니 정말이지 요즘에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아주 산간벽지의 시골 사람들이나 입을 법한 옷을 입고 있었다.
그래도 그녀가 예뻐 보였다. 그리 멋지지는 않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뭔가 의미 있는 옷을 입고 있는 듯했다. 그녀는 말했다. 요즘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옷은 대부분 명품 카피일 뿐이라고. 그런 옷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거다. 우리네 시골 아낙들, 엄마들이 예전부터 입어왔던 그런 옷이 더 역사가 있고, 세월의 흔적이 있는 거 아니냐는…그 말이 아주 설득력 있게 들렸다.
프로그램 후반부에는 설치작가인 '최정화' 작가가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에서 선보였던 ‘낡은 플라스틱 바구니’를 소재로 한 전시회가 소개됐다. 그는 '가장 편안한 것이 가장 좋은 디자인'이라고 말했다. 동감한다. 오래된 물건을 보면 감동이 있고, 그 흔적 안에 '내'가 있고 '우리'가 보인다. 나 역시, 세련됨을 지향했던 내가 이제는 촌스러움에 주목한다.
촌스러움은 일상이다. 눈이 부시게 친숙하고, 치밀하게 엉성한 하루하루의 흔적이다. 그런 속에 생명력이 꿈틀거린다. 최정화 작가는 미술이나 건축이 절대 흉내 내서 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당당한 촌스러움이 아름답다!
계절은 여름의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제 곧 그 화창했던 여름도 가을의 서늘함에 밀려 뒤통수를 보이며 사라지겠지. 매미소리가 마지막 여름을 알리는 듯 소리 높여 운다. 나는 지나가는 여름을 쓰다듬으며 다가올 가을을 그려본다. 지금도 그리 세련되지는 못했지만, 앞으로 나는 좀 세련되지는 못해도 촌스럽지만 존재감 있게 살고 싶다.
나만의 진실과 세월의 흔적을 남기고 유유히 사라질 수 있도록, 삶의 매 순간을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리라. 촌스러운 것들은 촌스러운 것들을 알아본다. 촌스러워도 진실된 그 무엇이 많이 그리운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