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
-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보고
나는 가끔 밤 기차를 탄다. 고향 집이 있는 부산을 찾아 주로 주말 밤을 이용해 내려갔다가 일요일에 다시 되돌아오곤 한다. 마치 짧은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오는 것처럼, 아니, 내가 과연 내 생의 어느 즈음에 와있는지를 돌아볼 만큼 잔잔한 가운데 진한 여운과 감동을 주는 영화가 ‘리스본행 야간열차’다.
영화는 교사인 ‘그레고리우스’(제레미 아이언스)가 우연히 위험에 처한 낯선 여인을 구하면서부터 시작된다. 그녀는 비에 젖은 붉은 코트와 오래된 책 한 권, 15분 후 출발하는 리스본행 열차 티켓을 남긴 채 홀연히 사라진다. ‘그레고리우스’는 난생처음 느껴보는 강렬한 끌림으로 의문의 여인과 책의 저자인 ‘아마데우 프라두’ (잭 휴스턴)를 찾아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몸을 싣게 된다.
'리스본행 야간열차’가 배경으로 삼은 것은 포르투갈에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정권을 쥐고 있던 살라자르의 독재정권 시절이다. 그레고리우스는 주인공에 대해 탐문하면서 포르투갈 독재 치하 레지스탕스와 저항의 역사를 알게 되고, 그 주인공 ‘아마데우’라는 인물에 점점 매혹당한다.
아마데우는 포르투갈 상류층 인텔리로 지성, 가문, 외모, 인품까지 갖춘 인물이다. 영화 속 주요 인물들은 지성을 갖고 살라자르와 맞서 싸우는 한편 삼각관계에 빠지고, 그레고리우스는 그들의 시간을 돌아보면서 자신이 잊고 있던 삶에 대한 열정과 의지를 되찾는다.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은 그 책의 저자인 아마데우, 스테파냐, 조지와 주앙을 알게 되고 찾아가 그들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의사인 아마데우는 34살에 죽고, 스테파냐는 아마데우를 본인이 죽였다는 괴로움에, 조지는 본인의 질투심 때문에, 주앙은 그날 조지에게 총을 줬다는 죄책감에 한평생을 살고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퍼즐처럼 짜 맞춰지는 그때의 상황과 사건들...
레지스탕스 활동 중 아마데우는 비상한 기억력의 여인 ‘스테파니’와 사랑에 빠지고 친구(조지)의 연인인 그녀와 사랑의 도피를 하게 된다. 세상의 끝 finisterras까지 함께 오지만 그곳이 그들의 마지막 여행지가 된다. 상류층 아마데우는 판사 아버지로부터 애정과 지지는 못 받는 관계로 묘사되지만, 아마데우의 장례식에서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자랑스러웠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아들이 죽은 지 일주일 후 수면제를 모아 자살한다.
아마데우는 독재 하의 악명 높은 고문경찰의 목숨을 살려준 대가로 친구와 민족의 배신자라는 오명에 시달리게 되지만 스테파냐와 도피를 하면서 국경 검문소에서 고문 경찰의 도움을 받게 된다. 빨간 코트의 주인공은 결국 그레고리우스가 묵었던 호텔 로비로 찾아오고... 그녀는 책을 읽다가 정치 살인범이 자기 할아버지였음을 알고 자살하려 했다고 한다.
책 한 권으로 시작된 여행은 지루한 한 남자가 흥미진진한 아마데우의 삶을 엿보면서 평범하게 무료하게 지내던 시간의 일탈의 기회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레고리우스는 자신의 안경을 새로 맞춰준 안과의사 마리아나와 새로운 인연을 맺게 되고 그녀가 “여기 머물지 않으실래요?”라는 대사로 영화는 끝난다.
“우리가 장소를 떠날 때 우리 스스로 뭔가를 뒤에 남기고 간다. 우리가 가버린다고 해도 우리는 거기에 머문다. 거기에 다시 가야만 우리가 다시 찾을 수 있는 우리 안의 물건들이 거기 있다. 어느 장소에 간다는 것은 우리 스스로에게 여행을 간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삶을 살아간다. 얼마나 짧은 지는 상관없다.”
마치 액자소설을 읽는 것처럼 영화는 나-그레고리우스-와, 아마데우 -책의 저자-를 연결시켜준다. 우리는 독자로서, 관객으로서 그들과 함께 한다. 아마데우는 열망, 안정, 기쁨의 삶을 논했다. 이성적이고 다소 지루한 그레고리우스도 아마데우의 생이 활력과 강렬함, 충만함으로 가득했다고 여기고 그에게 이끌렸다.
결국 그레고리우스는 활력과 사랑의 기운에 감싸는 주인공으로 면모 한다. “드라마틱한 삶의 순간은 가끔씩 믿을 수 없을 만큼 이목을 끌지 않는다.”라는 말을 남긴 채...
그건 아마도 그레고리우스가 무작정 떠났고, 계획 없이 다가오는 운명의 리듬에 몸을 맡긴 대가로 찾아온, 그야말로 기적같이 드라마틱한 내 삶의 여정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