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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name Nov 02. 2022

입 속의 검은 잎, 기형도

그의 장례식은 거센 비바람으로 온통 번들거렸다
죽은 그를 실은 차는 참을 수 없이 느릿느릿 나아갔다
사람들은 장례식 행렬에 악착같이 매달렸고
백색의 차량 가득 검은 잎들은 나부꼈다








택시 운전사는 어두운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이따금 고함을 친다, 그때마다 새들이 날아간다

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

나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그를 생각한다


그 일이 터졌을 때 나는 먼 지방에 있었다

먼지의 방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문을 열면 벌판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그해 여름 땅바닥은 책과 검은 잎들을 질질 끌고 다녔다

접힌 옷가지를 펼칠 때마다 흰 연기가 튀어나왔다

침묵은 하인에게 어울린다고 그는 썼다

나는 그의 얼굴을 한 번 본 적이 있다

신문에서였는데 고개를 조금 숙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일이 터졌다, 얼마 후 그가 죽었다


그의 장례식은 거센 비바람으로 온통 번들거렸다

죽은 그를 실은 차는 참을 수 없이 느릿느릿 나아갔다

사람들은 장례식 행렬에 악착같이 매달렸고

백색의 차량 가득 검은 잎들은 나부꼈다

나의 혀는 천천히 굳어갔다, 그의 어린 아들은

잎들의 포위를 견디다 못해 울음을 터뜨렸다

그해 여름 많은 사람들이 무더기로 없어졌고

놀란 자의 침묵 앞에 불쑥불쑥 나타났다

망자의 혀가 거리에 흘러넘쳤다

택시 운전사는 이따금 뒤를 돌아본다

나는 저 운전사를 믿지 못한다, 공포에 질려

나는 더듬거린다, 그는 죽은 사람이다

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장례식들이 숨죽여야 했던가

그렇다면 그는 누구인가, 내가 가는 곳은 어디인가

나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디서

그 일이 터질지 아무도 모른다, 어디든지

가까운 지방으로 나는 가야 하는 것이다

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

내 입 속에 악착같이 매달린 검은 잎이 나는 두렵다




처음 끔찍한 영상과 속보를 접했을 땐, 자고 일어나면 모든 것이 괜찮을 줄 알았다.

자고 일어났을 땐, 나의 상상과는 다른 현실과 안부를 묻는 카톡에 멍했다. 불안함으로 새벽을 지새웠을 사람들을 생각하니 우울함까진 아니지만 알 수 없는 슬픔이 찾아왔다.


나이를 먹을수록, 책임이란 단어가 갖는 무게가 얼마나 큰지 새삼 깨닫고 있는데...

그 누구도 책임을 지려하지 않는 모습과 여론의 눈치에 뒤늦게 사과를 하는 모습에 화가 났다.

이 순간에도 누군가를 비난하는 이들의 모습엔 할 말을 잃었다.


그럼에도 그 시각 다양한 공간에 있던 수많은 이들이

어쩌면 평생 마주칠 일도 없을 누군가의 아픔에

자신의 일처럼 슬퍼하고, 추모하는 모습은

아직 세상에 빛이 있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한다.


갑작스레 찾아온 이 슬픔을 우리 사회가 함께 아파하고 서로 위로할 수 있기를

스러진 이들의 명복과 남겨진 이들의 평안을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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