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소설
정유정 작가를 처음 접한 건 20살 여름 <7년의 밤>을 통해서였다. 충격적이었다. 결국엔 행복으로 끝나는 다른 소설과 달리, 정유정 작가의 소설엔 끝을 알 수 없는 어둠만이 가득했다. 하지만 특유의 문체와 압도적인 서사는 빨리 결말을 보고 싶은 몰입감을 주었고, 그렇게 정유정 작가의 팬이 됐다. <28>, <종의 기원>, <진이, 지니>까지. 매번 우리에게 익숙한 소재를,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모습으로 보여주는 정유정 작가의 소설이 출간됐다는 소식을 들으면 곧장 책을 사서 읽었다.
'인간의 악'. 정유정 작가의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다. 삶의 희망을 그린 <진이, 지니>가 있긴 하지만, 부성애를 다룬 <7년의 밤>, 생존을 다룬 <28>, 인간의 본성을 다룬 <종의 기원> 모두 인간 내면에는 절대악이 있음을 보여준다. <완전한 행복> 역시 자신의 행복을 갈망하는 유나와 그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자기애의 늪에 빠진 인간이 얼마나 악해질 수 있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자기애와 행복의 늪
총 3부로 이루어진 <완전한 행복>의 주인공은 '유나'다. 하지만 소설에서 유나의 시점은 나타나지 않는다. 유나의 딸 '지유', 유나의 남편 '은호', 유나의 언니 '재인'. 이 세 사람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소설에서 유나는 간접적으로 자신을 표현할 뿐이다.
소설에서 유나는 평범하지만 묘한 매력을 자아내는 인물이다. 가끔 무심하지만 자기 확신에 가득 찬 사람을 만났을 때 느껴지는 그런 매력이 아닐까 싶다. 그 사람 자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는 나도 모르게 그 사람에게 빠져들게 할 때가 있으니까. 그런 유나 곁에는 언제나 남자가 있다. 잠시 유학을 갔던 러시아에서도, 첫 결혼 상대였던 준영도, 재혼 상대인 은호까지.
유나가 바라는 것은 단 하나, 행복이다. 다만, 유나에게 행복은 뺄셈이다. 자신의 삶에서 행복한 순간을 더하는 것이 아닌, 불행한 순간을 빼는 것. 그런 유나가 상대에게 바라는 것 역시 하나다. 행복을 위해 '자신에게' 맞춰 노력하는 것. 유나에게 다른 사람의 감정은 중요하지 않다. 유나의 모든 행동은 행복을 위한 것이니까. 유나는 상대가 누가 됐든 자신에게 맞추기만 하면 행복해질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유나에게 행복은 찾아오지 않는다. 대학생 때 만난 연인도, 러시아에서 만난 연인도, 자신에게 회사를 주지 않으려 한 아버지도, 첫 번째 남편인 준영도 모두 유나를 떠난다. 당연한 결말이라 생각한다. 유나의 행복 안에 다른 누구의 자아도 존재하지 않으니까.
행복은 뺄셈이야.
완전해질 때까지,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는 거
- 완전한 행복 中
누군가 자신을 떠나려 할 때, 즉 유나에게 불행을 주려 할 때 유나는 덤덤하다. 하지만 행동은 잔혹하다. 유나에게 뺄셈은 단순히 빼는 것이 아니다. 영원한 뺄셈이다. 세상에서 사라지게 하는 것. 혹은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없게 하는 것. 치밀하게 준비한 유나의 계획에 상대는 속수무책이다. 특별한 계획도 아니다. 그저 서로 함께하는 마지막을 기념하며 차를 마시거나 식사를 하는 것. 하지만 유나와 마지막으로 시간을 보낸 후 그 사람들은 모두 불의의 사고로 사망한다. 사인은 졸음운전.
자신의 행복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유나에게도 결혼은 특별하다. 결혼을 하고 아이와 함께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 유나에겐 가장 완전한 행복이 아니었나 싶다. 자신의 선택권이 없는 부모-'자식' 관계가 아닌 자신의 선택으로 만든 '부모'-자식 관계라는 것 역시 어린 시절 학대의 경험이 있는 유나에겐 특별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자신을 떠나려는 준영과 은호에게 유나는 기회를 준다. 물론 유나에게만 기회일 뿐, 당사자에겐 죽음보다 잔인하다. 준영은 자신의 딸 지유를 성폭행한 파렴치한으로 낙인찍힌 채, 유나와 이혼을 한다. 준영이 자신에게 마음이 떠난 것을 확인한 유나가 모든 정황을 만든 후, 소송을 진행한 것이다.
은호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이혼'으로 생채기가 난 유나에게 은호는 완전한 행복을 줄 수 있는 대상이었다. 지유의 성을 은호의 성으로 바꾸기만 하면 겉으로 보기에 이혼은 없던 사실이 된다. 하나의 걸림돌이 있다면, 자신과 재혼하기 전 은호에게 있던 아들 노아다. 자신의 피가 섞이지 않은 노아를 유나는 사랑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유를 향한 은호의 관심을 뺏는 불행의 요소일 뿐이다. 은호의 손으로 노아를 죽게 함으로써 유나는 자신을 떠나려는 은호에게 경고이자 기회의 신호를 준다. 이때 역시 준영의 경우처럼 치밀한 준비와 가스라이팅을 통해 사회적 시선은 물론 은호 본인도 자신이 노아를 죽였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쪼는 자와 쪼이는 자가 결판나는 순간은
최초의 싸움에서 이겼을 때가 아니다.
최초로 복종을 끌어냈을 때다.
더하여 모든 관계는
서열이 정해지는 순간부터 고착화된다.
- 완전한 행복 中
행복이란 무엇인가.
행복을 향한 유나의 집착은 파멸로 끝이 난다. 피할 수 없는 불행의 문턱 앞에서 유나는 죽음을 선택한다. 문제는 유나뿐만이 아니라 그 주변 인물들까지 모두 파멸을 피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유나가 죽인 이들은 삶을 잃었다. 아버지가 죽는 것을 목격한 지유와 자신의 몸에 깔려 아들이 죽은 은호처럼 산 사람들은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잊고 싶어도 잊히지 않는 기억이 그들을 괴롭혔다. 망각은 행복을 위해 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이다. 좋지 않은 기억, 버티기 힘든 기억 등 나를 힘들게 한 기억을 잊거나 선택적으로 기억함으로써 우린 앞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아무 조치 없이 잊기만 한다면 그 기억은 우리의 마음에 남아 끊임없이 우릴 괴롭힌다.
덕택에 상처와 공포는 온전히
그녀의 몫으로 남았다.
그녀는 망각으로 해결하려 했다.
그런 일은 없었노라, 스스로 주문을 걸었다.
그런데도 불쑥불쑥,
아무 때나 기억이 튀어나왔다.
- 완전한 행복 中
<작가의 말>을 통해 정유정 작가는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를 밝힌다. 행복에 대한 지나친 강박증에 대한 우려가 바로 그것이다. 유나처럼 우린 매일 행복을 갈망한다. 하지만 나에게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는다. 그저 행복하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할 뿐이다. 모든 것이 불안정한 현재, 행복이란 추상적 가치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것이 너무 힘들기 때문일 수도 있다. 오늘 하루를 잘 넘기는 것조차 쉽지 않은 날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의 단절은 이기심으로 이어졌다. 다른 이들에 대한 호기심은 사라졌고, 나와 다름은 그저 틀림이 됐다.
헌법 제10조에서 규정하고 있듯, 모든 사람은 행복할 권리가 있다. 저마다의 행복이 다를 것이고, 행복으로 가는 길 역시 여러 갈래일 것이다. 그렇기에 행복에 대한 고민을 멈추면 안 된다. 이 고민을 멈춘다면 기계적으로 행복을 외치는, 유나처럼 자신의 행복만을 위해 사는 괴물이 될 것이다. 나에게 행복이 무엇인지, 어떻게 그 행복에 도달할 수 있을지, 그 과정에서 사회와 난 어떤 관계 속에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권리에는 책임이 따른다. 나에게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것은 다른 이의 행복에 대한 책임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균형을 찾을 수만 있다면 모두가 행복한 사회가 더 이상 꿈은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 헌법 제10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