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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gom Sep 21. 2015

오토바이에 동승하는 올바른 자세

오토바이야말로 이성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오토바이에 동승하는 남녀를 두 번 본 적이 있다.




첫 번째는  지난주 밤 11시경 올림픽대로였다. 악명 높은 올림픽대로 치고는 상당히 시원하게 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별 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제 강만 건너면 되려나, 하면서 한남대교가 나오기만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그를 목격했다.


나는 순간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았다는 느낌이었다. 아니, 그 느낌은 틀리지 않았다. 올림픽대로는 분명히 자동차 전용도로였다. 이륜차 따위가 덩치 큰 카니발 2를 상대로 비등비등하게 경쟁을 걸어오고 있었다. 헬멧 하나에 의지하여 공기 저항을 온몸으로 맞서고 있었다. 투과도가 높지 않은 헬멧 사이로 이 쪽을 흘끔흘끔 쳐다보면서 훗, 내가 이기잖아, 비웃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나는 아버지께 저 새끼 당장 신고해버려야 한다고 열을 올렸다. 오토바이는 빠르게 움직이는 폭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오토바이끼리만 레이싱을 하면 모를까, 자동차가 버젓이 다니는 곳에 오토바이가 부릉부릉 다니면 자동차는 반드시 오토바이를 피해야만 한다. 혹시 톡 건드렸다간 오토바이는 곧 중심을 잡지 못하고 구르고 맙니다, 이 사고로 오토바이 운전자 A씨가 그 자리에서 사망하고 자동차 운전자 B씨는 불구속 기소되었습니다, 가 분명해 보인다. 혹시 사고가 날지 몰라 블랙박스를 창문 밖으로 던져버릴까 생각도 했었는데, 이러면 블랙박스를 누구에게서 보상받아야 하는지 불분명해진다. 역시 답은 저 새끼가 사고를 치기 전에 빨리 교통경찰에게 인수하는 길 뿐이었다. 나는 112를 누를 준비를 했다.


그런데 세상에,


뒤에 누가 있었다.


말이 나오질 않았다. 자동차 계기판이 고장 난 게 아니라면 지금의 속력은 시속  80km가량. 오토바이로 시속 300km까지 찍을 수 있다는 유투브 영상을 본 적이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야 이미 이 생에 미련이 없는 사람들이나 하는 얘기다. 그런데 지금 저 남녀는, 서로 꽤나 사랑한다는 듯이 강렬한 스킨십을 계속하고 있었고,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오늘이 가기 전 올림픽대로에서 사상자 2명이 발생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사랑에 이성이 마비되었는지 불법까지 용인하면서 생명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었다. 같이 살거나, 같이 죽는다. 서로의 운명이 엇갈리는 것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저 도박의 강렬함에 나는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112고 자시고, 나는 두 사람의 사랑에 치를 떨고 말았던 것이다. 그래도 덕분에 내 목숨을 담보로 하는 사랑이라면 나는 평생 사랑 따위 하지 않겠어, 하며 본인을 다잡을 수 있었다. 차는 어느새 한남대교로 진입하고 있었고 그들을 그들 갈 길을 갔다. 내가 갈 길과는 한참이나 멀어 보였다.




두 번째는 오늘, 서소문 고가차로에서 서소문로로 내려오는 길목이었다. 집으로 가기 위해서는 충정로역 3번 출구 쪽에서 4번 출구 쪽으로 넘어가야 한다. 지하철 지하보도를 이용할 수 있었지만 계단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는 일만큼 쓸데없는 일은 없다. 지금의 위치에너지를 잘 아껴두었다가 나중에 쓰면 될 일이지, 왜 굳이 지하보도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면서 위치에너지의 증감을 반복하는가. 역시 물리를 배운 보람이 있다니까, 하면서 횡단보도의 불이 바뀌기를 기다렸다. 교통량이 충분히 많았고 나는 도로의 자동차를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을 때울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때 그들을 목격했다.


남자는 모험적인 성격은 아닌 듯했다. 자동차들 사이로 빠져나갈 틈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냥 인도 위를 달려도 충분함에도 불구하고(물론 인도 주행은 불법이다.) 굳이 자동차들의 행렬에 끼어 합법을 고수하기로 했다. 불법까지 감행해야할 만큼 급한 일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의 사례와는 완전 딴판이었으며, 나는 그 모습에 참으로 친근함을 느꼈다. 사소한 위법마저 행하지 않을 이성이 있다면 본인의 목숨뿐만 아니라 동승한 여자의 목숨까지 제대로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이게 진짜 사랑이다. 나는 기분이 풋풋해졌다.


그런데 세상에,


뒤에 누가 있었는데,


손을 등 뒤로 하고 짐통을 잡고 있었다.


오토바이를 두 명이서 타면 뒤에 탑승한 사람은 좋든 싫든 앞 사람의 허리를 감싸안기 마련이다. 여기에 호불호의, 특히 호의 사적 감정을 내비칠 수도 있지만 이와 같은 행동의 주된 이유는 이게 그나마 안전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뒷 탑승자는 딱히 잡을 곳이 없다. 사망을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부상은 거의 확실하다고 봐도 좋다. 처음엔 남자가 개새끼네, 하고 생각했다. 너를 일단 뒤에 태우기는 하는데, 너가 내 허리 잡는 거는 마음에 안 드니까, 그냥 뒤에 짐통이나 잡아라, 라고 말했다면 이건 너를 다치게 하고 싶긴 한데, 내가 널 때리면 폭행죄로 잡혀갈테니, 그냥 코너에서 한 번 꺾어서 너를 차도에 내팽개치는 걸로 만족할게, 하고 말한 것과 다를 게 없다. 차도에서 정주행하길래 사소한 도로교통법까지 준수하는 준법 청년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형법을 교묘하게 위반하는 최소 징역 5년감이었다. 눈 앞에서 재소자가 한 명 늘어나는 건가... 하고 고민하던 차에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여자는 남자와 생각보다 친한 것처럼 보였다. 상해치사가 분명해보이는 범죄자를 상대로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살갑게 말을 걸고 있었다. 이 무슨 일인지...? 스톡홀름 증후군 전개인가? 심지어 자세히 보니 두 명은 같은 대학의 같은 과잠을 입고 있었다. 적어도 과 선후배나 과 동기 사이라는 건데, 오토바이까지 같이 탈 사이라면 설마...


둘이 연인이었어?


아니, 약간 낮춰서 썸 정도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최소 썸이라 하자. 그렇다면 둘이 스킨십을 하지 않는 게 사실 더 어색하다. 어느 정도 감정이 있다면 자연스러운 스킨십을 통해 관계를 더욱 진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안전이라는 명분도 존재하니 이만한 찬스도 없다. 이를 대놓고 놓친다면 서로에게 마음이 별로 없다는 뜻이 된다.


아,


모든 수수께끼는 풀렸다.


남자는 둘이 같이 오토바이를 타는 상황에서 당연히 자연스러운 스킨십을 상상했을 것이다. 남자는 별로 친하지 않은 이성과도 로맨틱한 상황을 연출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 순간을 청춘이라는 이름으로 구가하기를 항상 고대하고 있다. 남자가 말하는 청춘의 요체란 연애와 사랑뿐이다.


반면 여자의 경우, 남자와 어떻게 오토바이는 같이 타게 되긴 했는데 남자에게 연애 감정까지는 갖고 있지 않을 경우, 스킨십을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진다. 그냥 안전을 목적으로 그 정도 스킨십은 괜찮지 않아? 하기에는 스킨십의 강도가 꽤 강력하다. 남자는 살짝 손이 스치는 것만으로도 쉽게 착각을 한다. 모 라이트노벨에서도 지적했듯이 이 세상 남자의 80%는 얘가 날 좋아하나? 하는 생각 따위나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물론 나는 20%. 오해할 일이 없으니 상처받을 일도 없다. 다시 논의로 돌아와서, 여자가 남자의 속성을 아주 잘 알고 있는 합리적인 존재라면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스킨십을 하지 않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 여자는 남자에게 오해할 소지를 남기지 않는 것이다. 굳이 너의 허리를 잡지 않음으로써 아직은 너에게 그만한 감정은 없다고 선을 긋는 것이다. 남자로서는 가슴 아플 수도 있지만, 괜히 오해했다가 더 큰 상처를 받는 것에 비해선 차라리 달콤할 정도이다. 남자는 여자의 마음을 이해하고, 조용히 그녀의 선택을 존중하기로 한다. 둘 사이에는 말 없이 오간 소통이 있었고, 이를 통해 서로의 진심을 확인한 후에는 별 어려움 없이 서로를 대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여자의 행동은 이상하다고 볼 게 아니라 배려심 넘친다고 박수 쳐줘야 마땅하다. 굳이 자신의 안전을 내놓으면서까지 남자가 차후에 할 수도 있는 가슴앓이를 제거해주었다. 그녀는 생명의 은인으로 칭송되어도 부족함이 없다. 나는 그녀의 처세술에 감탄하고, 또 감사했다.


여담이지만 그녀의 행동은 페이스북 서울대학교 대나무숲 페이지에서 유래된 '솔로를 위한 2대 생활 수칙'에도 충실하다. 잠시 소개한다.

여자의 행동은 1.의 대전제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는 2.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당신에게 관심이 있는 이성이 있을 것만 같은 오토바이 동승의 상황에서, 정신 차리라고, 나는 너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다고 1.로 되돌려보내는 루트를 마련해주고 있는 것이다. 방황하는 학생을 올바른 답으로 이끄는 소크라테스가 꼭 이런 모습이었을까.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책 밖에 있는 현자를 만났다.


약 3분의 시간이 지나 나는 횡단보도를 건너 집으로 향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참으로 많은 것을 보고, 또 배웠다. 누군가를 만나야한다면 그 여자 분을 한 번 꼭 만나보고 싶다. 이타심 가득한 그 행동에, 오히려 반하지 않을 남자 누가 있을까 싶다. 다음 만남을 기대해볼까. 내일도 내일 모레도, 하교는 충정로역 서소문로로 확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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