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gom Oct 11. 2015

수요가 가격결정력을 추구하면 안 되는 걸까

<경제학원론>에서의 수요와 책밖에서의 수요

모두가 6천 원 커피는 좀 비싼 거 아니냐, 생각하면서도 카페에서 커피를 마십니다. 저는 다행히도 커피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이 아니어서 돈 쓸 일이 많진 않습니다만, 식후에는 커피로 마무리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비단 커피의 문제는 아닙니다. 빙수나 아이스크림의 경우도 원가보다 훨씬 부풀린 가격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냥 사먹게 됩니다.


피와 빙수, 아이스크림이 그만큼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라고 말씀하시면 굳이 반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맛있긴 하니까요. 하지만 우리가 정말로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해당 상품의 가격과 우리가 이를 소비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편익을 항상 비교해보아야만 합니다. 비용이 편익보다 크다면 사먹지 않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저 사먹게 됩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에 대한 가장 간단한 설명으로는 인간은 절대 합리적이지 않아! 하고 외치면 됩니다. 심지어 경제학부에서 이 내용을 악을 쓰고 외쳐도 몇몇 사람들이 닥쳐! 여긴 공부하는 곳이라고! 하는 반응 정도만 보일 것이지, 저 한 마디가 본인이 배우는 학문을 죄다 깽판치는 만악의 근원임을 알면서도 쉽사리 반박하지는 못할 겁니다. 모든 개인은 자신이 합리적이지 않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이 세상에서 합리적인 건 <경제학원론>뿐입니다.


그러나 반론도 제기할 수 있습니다. 어쩔 수 없기에 그저 받아들인다는 겁니다. 가격이 너무 비싼데, 하면서 소비하는 사람들이 줄어들 경우 이상적인 상황에서는 가격이 떨어져야 합니다. 하지만 절대 그러지 않으리라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가격이 떨어지는 경우는 가끔씩 이벤트나 할 때 정도지, 평소에는 원가가 올랐어용ㅜ 하면서 오를 망정 절대 내려가지는 않습니다. 경제가 성장하면서 물가가 올라 화폐의 구매력이 떨어졌다는 거시적 설명을 덧붙일 수도 있습니다만, 여기서 저는 소비자의 패배감을 언급하고 싶습니다.


"공급은 가격을 바꿀 수 있지만 수요는 가격을 바꿀 수 없다."


출처는 없습니다. 방금 제가 지어낸 말인데요.


모든 시장이 완전경쟁시장일리가 없으므로 <경제학원론>을 그대로 적용하는 건 역시 무리일 것입니다. 하지만 상품을 구매하는데 있어 수요자가 항상 수동적인 위치에 서게 되는 것은 진득함 패배감을 선사합니다. 공급자보다는 수요자가 수가 많기 때문에 모두가 합심하여 불매 운동이라도 벌이지 않는 한 가격이 떨어지지 않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또, 개인적인 취향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불매를 강요할 수도 없고, 강요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하지만 모두가 비싸다고 느끼는 상황에서? 이 때는 뭔가 다르지 않을까요?


아니요, 다르지 않습니다. 불합리하다 싶을 만큼 높은 가격이 형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걸 소비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에게 가격을 낮출 힘은 없기 때문입니다. 기업에서 이렇게 공급하겠다는데 소비자가 토를 단다? 어이쿠, 누구랑 싸우는지 잘 모르시는 모양이군요? 수많은 개인이 각자의 마음 속에서 불평을 삭힘으로써 나라 경제가 굴러간답니다. 이렇게 소비자의 공동행동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깨달은 기업에서는 높은 가격을 받아도 소비가 별로 줄어들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일찍이 간파한 모양입니다. 적어보니 생각보다 무서운 일이군요.


합리적인 인간이라도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없는 세상입니다. 계란을 수억 개, 수조 개 던져도 바위는 깨지지 않는 법이니까요. 갑자기 경제학을 공부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네요. 배운 게 적어 틀린 내용이 많다고 지적해주세요! 수요도 힘이 있다고 말해주세요!

작가의 이전글 오토바이에 동승하는 올바른 자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