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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gom Oct 13. 2015

교육을 효과적으로 망치는 두 가지 방법

높으신 분들을 위한 충실한 조언

교육이 잘 굴러가면 높으신 분들은 항상 두렵기 마련이다. 의식 있는 국민의 출현은 기존 권력에 도움은 주지는 못할 망정 오히려 훼방을 놓기 때문이다. 따라서 높으신 분들은 교육을 분탕칠 방법을 궁리하게 된다. 어떻게 하면 은밀하게 효과적으로 교육을 망칠 수 있을까?


이 자리에서 그 해법을 소개한다. 높으신 분들, 주목!




1. 자본


교육에 자본을 투입하는 건 가장 손쉬운 방법 중 하나이다. 여기서 말하는 '투입'이라는 건 교육 부문에 대한 정부 지출을 늘리라는 복지주의자나 할 소리가 아니고, 교육을 철저히 자본주의 사회로 만들라는 소리다. 말이 이렇지 전혀 어렵지 않다. 자본주의의 중요한 속성 두 가지만 따오면 된다.


(1) 모두가 결과를 위해 경쟁한다.

(2) 돈 많은 사람이 이긴다.


우리 사회가 자본주의이기 때문에 이와 같은 속성을 교육에 대입하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 오히려 오늘날 상당히 잘 구되어있어 현 상태만 제대로 유지해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내신/수능 상대평가를 통해 (1)을 구현하고 있고, 사교육을 받는 학생이 더 좋은 성적을 가져한다는 점에서 (2) 역시 충실히 따르고 있다. 권력자들이 오직 신경써야할 것은 정신 없는 입시 제도를 꾸준히 유지하여 학부모와 학생들의 불안감을 부채질하는 것뿐이다. 사교육이 늘어나면 업계 종사자들도 돈을 벌고 GDP도 비약적으로 증가하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 공생이란 말인가!



2. 권력


권력이 직접 교육에 간섭하는 것은 상당한 비용을 초래한다. 당장 반대여론이 들끓어 정부에 대한 반감만 더 키울 수 있다. 따라서 이 방법은 조용히, 간접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교육자들을 친 정부 인사로 채워넣는 것이다. 아무래도 학생들은 배우는 입장이다보니 교수나 교사의 생각을 그대로 물려받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여기서 [1. 자본]이 발목을 잡는다. 개인의 성향과 무관하게 교수/교사 되기가 어려운 세상이 되어버려서 원하는 인사를 마음대로 앉히기가 힘들어진 것이다. 우리 편일 줄 알았던 자본이 우리를 배신할 줄이야... 좌절하지 마라. 아직 방법은 있다.


간접적인 방법으로는 교과과정에 개입하는 게 제일 좋다. 교육과정을 바꾸는 것은 교육부 소관이고, 교육부 장관은 우리 편이기 때문이다. 전 정부가 만들어놓은 교육과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이 참에 바꿔버리면 그만이다. 1998년부터 실시된 7차 교육과정, 2007 개정 교육과정, 2009 개정 교육과정, 2015 개정 교육과정 등 들쑥날쑥으로 개정된 선례도 풍부하지 않은가?


또한, EBS 연계 정책을 내놓았던 관계자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사교육을 잡는다는 훌륭한 명분에 감출 수 있었던 우리의 성취는, 일개 출판사밖에 되지 않는 EBS에 압력을 행사하는 건 너무나도 쉬운 일이라는 점에서 기인한다. 2017학년도 수능부터 연계된다는 EBS 한국사 교재의 문제가 발매 직전에 바뀐 것에서 우리의 힘을 확인할 수 있다.[1]


그리고 2015년 10월 12일, 정부는 큰 결단을 내렸다.


수많은 반대여론을 무릅쓰고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발표한 것이다.


이는 중요한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교육을 정치의 영역으로 끌여들여 이데올로기의 문제로 소화했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 싸움으로 번지면 전국민의 반은 자기 편으로 만들 수 있다. 당정청은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그렇게 권력을 이어왔기 때문이다. 반대여론도 심각하게 들끓고 있지만, 정부가 챙기는 국민은 참으로 착하고 조용하기 짝이 없다.


이렇게 이번 정부는 역사 퇴행이라는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후대 권력자들에게 '손바닥 뒤집듯이 교육 정책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하는 변명을 친히 마련해주었다. 국민과의 소통을 깡그리 무시하는 정부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오직 이 정부만이 해낼 수 있었고, 설마 진짜로 할 줄은 몰랐는데 정말로 해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데 이제는 현재만 시끄럽게 떠들고 과거는 조용히 입을 닫을 것이다. E.H.카 선생이 보면 무어라 말씀하실까. <역사란 무엇인가>를 조만간 수정해서 재출판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우리는 두 가지 방법을 통해 교육을 효과적으로 망쳐놓았다. 이제는 기다릴 뿐이다. 시간이 지나고 모든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질 때쯤, 교육의 병폐가 차차 힘을 발휘할 것이다. 국민은 우리의 편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시간은 완벽히 우리의 편이다. 그동안 아무도 행동하지 않기를, 아무런 변화가 없기를 간절히 바라면 온 우주가 나서 도와줄 것이다.




[1] "[단독] 교육부, EBS 한국사 교재 사전검열?", SBS 뉴스, 2014. 09. 02.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2566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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