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서 비롯된 이야기인지는 모르겠는데 다음과 같은 설화가 있다고 한다.
모시 모처에서 뚱뚱한 왕과 가난뱅이가 요정 지니를 만났다. 불명의 이유로 지니는 굉장히 기분이 좋았고, 그에 따라 두 사람의 소원을 하나씩 들어주기로 하였다. 왕은 황금을 몹시 사랑하였기에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황금을 갖고 싶다고 하였다. 그는 본인의 집을 비롯하여 온갖 장신구를 황금으로 치장하고 다녔다. 한편 가난뱅이는 자신의 속마음이 시키는대로 행복하게 살게 해달라고 부탁하였다. 덕분에 그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
지니가 기분이 좋았다는 얼토당토않은 사정 덕분에 운 좋은 두 사나이가 혜택을 봤다는 것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다. 그러나 깊이 생각할수록 각 소원의 실현가능성을 재고하게 된다.
먼저 왕의 소원에 대해 생각해보자. 왕의 소원은 크게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하나는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현존하는 황금량을 모두 본인의 소유가 되게끔 해달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황금이 본인의 소유인 상태가 영원히 이어지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둘의 차이는 앞으로 자연발생 내지는 인공합성될 황금이 왕의 소유가 될 것인가의 여부이다. 전자의 경우 새로 만들어진 황금은 그의 소원과 무관한 반면, 후자의 경우 세상 모든 황금이 그의 것인 상태가 지속되어야 하므로 당연히 그의 소유가 된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왕에게 이익되는 것은 후자임이 명백하므로 기분좋은 지니가 이처럼 확대해석해주었다고 하자.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지니가 소원을 하나씩만 들어주었다는 사실과 모순될 수 있다. 지니의 소원성취는 순간적인 것인 반면 왕의 소원은 지속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소원에 따르면 왕은 당장 현존하는 모든 황금을 가지게 되고, 그 후에는 황금이 새로 만들어질 때마다 또 소유권을 갖게 된다. 당해 소원은 명목상 하나인 것처럼 보여도 실질은 황금소유권을 취득할 때마다 새로운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는 매달 발생하는 월별 유족연금수급권 각각의 독립성을 인정하는 대법원의 태도와 유사하다 할 것이다. (2018두46780 등)
다음은 가난뱅이의 소원에 관하여 논해보자. 행복이라는 단어가 유발하는 추상성을 차치하고서라도, 그의 소원이 갖는 가장 큰 문제점은 그의 소원이 왕의 소원과 모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가난뱅이도 왕만큼이나 황금을 좋아해서 본인이 보유한 황금량이 행복 여부를 결정한다면, 모든 황금소유권을 강탈하고자 하는 왕의 의도와 명백히 모순된다. 혹은 왕의 불행이 곧 자신의 행복이 되는 비교심 많은 사람이라면 황금을 포함해 왕이 행복해지고자하는 어떠한 시도와도 양립할 수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문제가 발생한 근본적인 원인은 지니의 소원성취가 아무런 권원 없이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본디 알라딘의 지니는 본인이 갇혀있는 요술주전자를 누군가가 찾아 그것을 문질러야만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는 방식이다. 마치 조건없는 소원처럼 들리지만, 주전자를 찾는 험난한 과정 그 자체가 요건이 된다. 더욱이 여러 명의 소원을 한꺼번에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주전자를 득한 일인의 소원만을 들어주어 소원간 모순이 없는 이상 논리적인 문제는 찾아보기 어렵다. 반면 설화의 지니는 양자에게 아무런 노력도 요구하지 않고 양자의 소원을 죄다 들어주는 바람에 심각한 모순가능성을 내포하게 되었다. 요건 없이 효과만 발한 탓에 적용대상을 합리적으로 배제시키지 못했다.
앞으로의 지니는 적절한 요건을 통해 소원을 들어줄 사람을 일인 이하로 간추리고, 소원의 성격을 다방면으로 검토함으로써 자신의 선언이 엄격히 지켜지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