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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gom Jan 15. 2022

능력주의

    한사코 포기할 수 없는 "공정"이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능력주의 사회를 상정한다면, 능력에 비례한 소득이나 지위를 얻는 것이 공정하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주 능력을 노력과 동일시하고 이러한 노력은 모든 운적 요소를 배제한 것으로서 순수히 개인의 고생이라고 생각한다. 정말로 그럴까?


    오래된 도식에 따르면 능력=지능+노력이다. 개인마다 비중의 차이는 있겠지만 능력(과 그에 따른 성취)에는 분명 지능이라는 운적 요소가 개입되어 있다. 또한 혹자에 따르면 노력하는 기질 역시 유전자 배합이나 가정환경 등 사람이 선택하기 어려운 특성으로서 운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주장이 정말로 타당한 것인지는 차치하고서라도, 능력은 어느 정도 우연한 기회에 기인하는 것이며 이것은 능력주의가 공정하다 또는 불공정하다는 주장 모두에 힘을 싣는 근거가 된다. 모두에게 운으로 결정되는 것이라면 능력이 분배되기 이전에는 공정하고 그 이후에는 불공정하기 때문이다.


    한편 사전적 공정 - 사후적 불공정이라는 구분은 비단 무지의 베일을 걷기 전후의 구분에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능력주의가 세습주의로 변모되는 사회적 시점에 따른 구분에 해당하기도 한다. 계급주의에 따른 세습이 불공정하다는 것으로 비판받았을 시절, 능력주의는 낮은 계급에서도 성공할 가능성을 보장하기 때문에 더 공정한 것으로 칭송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계급주의든 능력주의든 부모의 지위 내지는 능력(지능)의 세습을 야기하는 탓에 능력주의는 시간이 지나 새로운 세주의로 자리잡게 된다. 낮은 계급의 고능력자가 모두 높은 계급으로 이동하고 나면 낮은 계급에서는 돌연변이가 아니고서야 계층 사다리를 세울 능력을 잃어버린다. 계급사회에서 계급이 그러하였듯 능력주의 사회에서 능력이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는 한 계층 간 이동성은 장기적으로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능력주의의 대안은 뚜렷하지 않다. 현대사회는 능력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경제성장과 개인의 부유함을 동기화하는 데 성공하였다. 오래 전 계층 이동의 사례를 적잖이 목격하였던 기성세대는 노력과 성과간 비례관계를 착각하기에 충분하였고, 이제는 설화가 되었지만 여전히 실화라 믿는 분위기가 만연한 지금 신분 상승은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최고의 영달이다. 반면 계급과 같이 눈에 띄는 불공정을 찾기 어려워졌을 뿐만 아니라, 공부하고 출근하는 등 본인을 증명해야 하는 일들의 난도 또한 몹시 어려워졌다. 먹고 살기 바쁜 시대에 능력주의의 숨은 불공정을 애써 찾아나서는 모험을 감행하는 것은 일단의 실패를 감수해야 하기에 기대하기 어렵다. 사회는 실패에 무한한 음의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도전적 발상에 대한 본능적 공포를 조성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기적적으로 총체적 익명의 베일을 쓰고, 능력이 타고나는 것으로서 세습과 운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인생의 중요한 분기점마다 유사한 운적 요소를 도입하는 것이 의외로 타당하다는 점을 합의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운이 결코 공정하다 단언하지는 못하나, 인생의 시작에 불가피하게 운이 개입된 이상 그 기회를 여러 번 갖는 것이 그나마 덜 불공정한 것일 수 있다.


    오늘날 사회적 지위의 배분은 그 어느 때보다도 정당하고 확고한 권원을 획득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당장 보이는 시험점수나 사회기능적인 일련의 성취가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으로서 정말 공정한 것인지, 공정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고 이를 어떻게 제도적으로 풀어나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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