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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gom Dec 10. 2022

[단독]넥슨 '카트라이더' 서비스 종료 앞둬...


카트라이더가 내년 상반기 중 서비스를 종료한다고 합니다. 차기작 카트라이더:드리프트에 역량을 집중하기 위함이라고 하네요. 카트라이더는 2004년 6월 1일 OBT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6월 20일에나 처음 시작할 수 있었어요. 집에서 컴퓨터를 마련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성능도 나빠서 도저히 접속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처음으로 접속해 아이디를 만들었을 때의 몽글몽글한 감정이 생각납니다. 저는 다오는우승, 동생은 다오퍼그라는 이름으로 만들었습니다. 크레이지 아케이드를 즐겨온지라 당연히 다오가 주인공인줄 알았습니다. 대가리가 너무 커서 시야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지금은 다른 캐릭터를 쓰고 있지만요.


그 즈음은 온라인 게임의 전성기였습니다. BnB를 비롯해 수많은 게임을 제공하던 크아, 레벨업이 미친듯이 어렵지만 낭만은 끝내줬던 빅뱅 전 메이플, 축알못도 선수 이름을 달달 외우게 해주던 피온2, 탄막 게임의 잠깐의 쾌감과 오랜 시간의 좌절을 깨우쳐준 나나이모, 플래시 게임 이외의 이유로 한게임에 접속하게 만들어준 던파, 서울 시민도 아닌데 서울 지리에 빠삭하도록 만들어준 레이시티… 손끝을 스친 게임은 수없이도 많고 아직까지 들르는 게임도 한 손을 넘어갑니다. 물론 소리소문 없이 사라진 게임도 많습니다. 나나이모, 레이시티는 처음 들어보신 분들이 많을 테고 그게 사라진 이유고, 카트랑 비슷해서 나름 유의미하게 즐기고 있었는데 첫 업데이트 이후 방기당한 에어라이더도 금방 접혔고, 크아도 라이센스 문제로 테트리스가 없어지고 이젠 만렙들이나 접속하는 석유물이 되어버렸고, 메이플은 아직 건재하지만 강화 시스템을 쫓아갈 역량이 안 되고… 카트라이더는, 그래도 제가 즐긴 게임 중 난도가 낮은 편이었습니다. 새로운 엔진이 출시될 때마다 적응해야 했지만 초기의 시스템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었어요. 업데이트를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새 맵, 새 속도에만 익숙해지면 기존 드리프트 테크닉을 큰 수정 없이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카트라이더가 평생 게임이길 바랐습니다. 자주 만나지는 못 하더라도 꼭 어제 만난 것 같은 익숙함을 풍기는 편안한 게임이길 바랐습니다.


그러나 18주년이라는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습니다. 끈질긴 생명력만큼이나 수많은 문제가 산적해 있었죠. 다행히 새로운 디렉터님과 활동적인 유저 분들은 이 오래된 게임을 어떻게든 정상화시키려 노력하였고, 의미 있는 결실을 여럿 맺었습니다. 작년 초부터 이어진 여러 게임의 사건사고 와중에도 카트라이더는 무탈하게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오랜 친구가 엉망진창이 되지 않는 것은, 물론 관심이 덜 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다행이고 또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그 방심이 오늘의 충격을 배가시키고 말았습니다. 카트는 어느새 게임계 올드비가 되어 있었고 원로에 대한 존중 차원에서 최소한의 형태로 영생할 가능성도 조심히 점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게임은 사업이었습니다. 넥슨의 공식 발표도 아닌 언론의 단독 보도로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이 너무나 얼척없고, 화가 나고, 마음이 아픕니다. 서비스 종료를 이렇게 진행해서는 안 됩니다. 게임에 애정을 가진 유저들, 그리고 생계가 달린 리그 관계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이란 말입니까? 종료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정이 있다면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감정적, 현실적 탈출구를 마련해주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제가 잘 기억하지도 못 하는 옛 추억의 일부가 카트라이더에 데이터 형태로 저장되어 있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말이 그렇게나 어려웠습니까?


사업적 결정에 따라 게임이 아무런 사전 작업 없이 공중분해 당할 수 있는, 이런 나쁜 선례가 만들어져서는 안 됩니다. 정황상 카트라이더가 머잖아 서비스를 종료하는 것은 불가피해 보입니다. 늦게나마 게임을 마저 즐기고, 기억할 것은 기억해두고 처연히 떠나보내겠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풀고, 추억을 쌓으며, 선수들이 장면을 만들고, 역사를 써내는 게임이라는 컨텐츠가 예고 없이 사멸의 벼랑으로 몰리는 일은 더 이상 없었으면 합니다. 게임이 유저들의 감사 인사와 함께 명예로운 끝을 맞을 수 있도록 존중을 다해주었으면 합니다.


사실은 무근이었고 이 글이 설레발이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 않기에 몇 마디 남깁니다. 실력이 좋지 않던 저에게 가끔씩은 1등을 허락해준 유저 분들에게 고맙습니다. 극적인 장면과 퍼포먼스로 감동과 감탄 그리고 재미를 선사해준 선수들에게 고맙습니다. 꾸준한 업데이트와 소통으로 게임의 마지막을 붙잡던 개발자 분들에게 고맙습니다. 공교롭게도 게임이 문을 닫는 내년 초 저도 학부를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학창시절을 빠짐없이 함께 한 카트라이더에게 온 마음을 담아 전합니다. 고맙습니다. 보고 싶을 겁니다.


카트라이더:드리프트가 내년 1월 12일부터 서비스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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