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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인생 ver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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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gom May 08. 2023

입교날

잘 정돈된 건물들은 이곳이 어떤 면에서는 사회와 다르지 않다고 주장하는 듯했지만 그 주장은 나의 마음가짐에 의해 기각되었다. 지금껏 훈련소와 같은 면모를 상상해왔고 - 애석하게도 그것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물론 일련의 통제가 마음에 쏙 들기 어렵기도 했으나, 그보다는 기껏 회피해왔던 내 인생사의 주요한 문제 - 인간관계를 정면으로 맞닥뜨렸기 때문이다.


군에서의 탈출 이후 여러 상황은 나를 혼자로 몰아갔고 - 그 상황에는 나 자신 역시 포함되는 것이다 - 근래에는 마침내 능숙하게 외로움을 다루는 상태가 됐다. 어떤 상황이든 타인이 변수로 등장하는 것을 무서워했으며, 등장한다면 미미한 인력만 미칠 수 있도록 자신을 멀리 위치시켰다. 그러나 취업과 시작된 인생 2.0은 다른 사람이 너무나 주요한 변수여서 - 조직이라는 게 사실은 인간관계의 총체일 뿐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 삶의 가장 내밀한 철학을 정면으로 뒤흔들고 있다. 막대한 양의 인간관계를 소화하지 못 하는 거북함, 그것을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튼튼한 사람들에 대한 부러움, 말을 걸 때 혹은 거리를 걸을 때 느껴지는 숨막힘 등등 - 의도적으로 거리 둔 것들이 한날 한시에 쫓아왔을 때, 나는 반드시 치사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러나 나의 내부 문법이 어찌 되었건 - 시간은 간다. 도전 과제에 굴복하여 그저 그런 사람들로만 기억할 것인지, 나의 상처라도 아랑곳 않고 굴착기를 꺼낼 것인지 - 시간은 결정을 요구한다. 답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는 안다. 전원 버튼을 건들 용기가 문제인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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