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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gom May 15. 2023

세월과 나이듦

96년생이라는 사실과 28살이라는 사실은 아직도 모순적으로 여겨진다. 96년생이라 이야기하는 것은 어느 순간에나 거리낌이 없으나 28살이라 밝히는 것은 나조차도 당황하게 만든다. 저, 그게, 사실은, 스물 여덟... 입니다. 스물에 묘한 강조를 넣어보아도 듣는 이는 정직하게 스물 여덟이라고 듣는다. 이 나라 사람들은 왜 이렇게 청력들이 좋단 말인가.


20대 후반으로서 느끼는 괴리감은 온전히 나이에 부과된 사회적 중책 때문이다. 내가 아는 스물 여덟 내지는 20대 후반이란, 첫 직장을 찾아 경제활동을 시작하고 한껏 물오른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내며 잠재적 배우자를 찾아나가는 활력 넘치는 시간들이다. 숱한 실패를 두려워하기보다는 성장의 자양으로 삼고, 인간관계를 깊은 감정으로든 얕은 자산으로든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하나하나 모두 벅찬 과제들이다.


나이와 의무를 연결짓는 이른바 청춘론 - 청춘을 남김없이 즐겨야 한다느니, 배움에는 시기가 있다느니 등 - 에 비판을 가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젊지 않은 세대를 부당하게 폄하하면서 그들의 자유로운 선택을 가로막는다는 이유도 있지만, 내가 그러한 흐름을 좇지 못 할까 걱정되는 마음 탓도 있다. 나의 개성적인 선택이 남들에게는 시대에 어긋난 것, 세련되지 못 한 것이라고 비난받을까 두렵다. 유행이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선택을 전제로 하는 것이니, 다수 집합에 한발짝 떨어져 있는 나로서는 그에 부수하는 유행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기도 하다. 개성과 유행은 양립불가능하다는 내 마음 속의 지리멸렬한 프레임은 나를 오랜 시간 갉아먹었다.


그러나 괴리감을 느낄수록 순수에 대한 의지는 더욱 강해지기만 해서, 선한 사람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식의 직선적인 이해를 널리 퍼뜨리고 싶은 마음은 매일 커져만 간다. 부와 명예를 멀리하고, 사람의 상상력에 감탄하며, 누구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을 일생의 목표로 삼는 것. 의지가 단순한 것은 세상에 대한 이해와 경험이 부족한 까닭이다. 그러나 나는 얽매이기보다는 싸우고 싶다. 나이, 학력, 직업, 심지어는 나 자신에 대한 이미지조차도 벗어던지고 싶다. 이것은 불가능하다. 불가능하다고 하니까 더 하고 싶다.


스물 여덟이라는 발음이 주는 무거움에서 벗어나고 싶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무엇이든 보람 있게 해내고 싶다. 시대로부터의 일탈은 오히려 반갑게 여기고 싶다. 단단한 자존심으로 개성을 뚝심 있게 완성해가고 싶다. 싶다는 것이 일생 많았으면 싶다. 그렇다면 정말로 눈칫밥이 아닌 내 손으로 지은 따뜻한 밥을 먹으면서 역시, 아직은, 살아갈 만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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