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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gom Dec 03. 2015

벌써 폭설이라니!

12월 3일, 충격과 공포의 기록

처참했다.


평소엔 20분 정도 늦잠을 자지만 오늘만큼은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누군가 시켰다고 한다면 썩 틀린 말은 아닌 게, 첫 기말고사 시험 날이었던 것이다. 심지어 물리였다. 1학기 때에도 물리 과목은 들었지만 성적이 썩 좋지 않았다.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낸 물리라는 자식을 박살내기 위해서 2학기 때에도 신청해버렸다. 신중하지 못한 행동이었다, 고 중간고사가 말해주었다. 기말고사에게선 다른 말을 듣고 싶었다. 아니, 들어야만 했다.


잠으로 늘어진 정신으로는 시험을 보고 싶지 않았다. 따라서 달콤한 늦잠을 뒤로 한 채 알람을 듣고 벌떡, 일어선 것이다. 된장국 먹고 가라는 아버지의 말씀이 들렸고 평소와는 다르게 힘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눈이 많이 오니 따뜻하게 입고 가라는 마지막 말씀은 듣지 못했다. 분명 어제는 비가 오지 않았던가.


그렇게 비교적 상쾌한 기분으로 일어나 오늘 하루는, 적어도 시험 시간까지는 긍정과 에너지로 채우겠다는 바람을 갖고 거실로 향했다. 단 1초도 되지 않는 거리였다. 무심코 창밖을 바라보았다.


어, 아, 아


세 마디면 충분했다. 유리창은 진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대설주의보.


어제 내린 비는 밤새 눈으로 변신한 모양이었다. 굳이 응고열을 내뱉으면서까지 물분자는 더 안정적인 삶을 택했다.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도 열정을 내뱉고 공무원을 택하는 인간들 아니었는가. 한국 위의 기상은 어느새 이 나라 국민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투표권이라도 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착각이 들었다.


안에서 바라본 폭설은 나름 봐줄 만했다. 아름답기까지 했다. 아무런 소리 없이 내리는 순백의 폭격 같은 느낌이었달까. 눈이 점점 공격적으로 나서자 세상은 점묘화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단순한 군상이 만들어낸 흐리복잡한 세상. 눈은 아티스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집을 나서기까지도 나는 우산을 들고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낙관적인 생각에 빠져 있었다. 아아! 어쩜 이리 로맨틱한 아침일까? 눈 정도면 맞아도 기분 좋지 않을까? 후훗, 웃으며 아파트 현관을 나서길 고대했다. 곧 현관문이 열리고 내가 맞이할 세상이 그곳에 있었다.




처참했다.


전날 온 비는 아직 바닥에서 마르지 않았다. 오히려 눈을 먹고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었다. 심지어 꽁꽁 얼어도 고개를 순순히 끄덕일 것 같이 추웠다. 아마 얼음이 맺지 않은 건 물이 내뿜는 응고열과 지상의 공기가 줄다리기를 하면서 애매하게 섭씨 0도 근방을 오갔기 때문일 것이다. 요약하자면, 최악이었다. 차라리 얼었더라면 미끄럽긴 해도 신발이 물에 젖을 일은 없었다. 이번 눈은 건방지게도 비의 단점을 충실히 챙겨온 악질이었다.


그러고도 나름 대설이라고 세상을 예쁘게 꾸며놓으려 하고 있었다. 이건 기만이다. 물바닥은 신경 쓰지 말고 고개를 들어 관악산이나 쳐다보라는 하늘의 꾐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예쁘긴 예뻤다. 신발 양말이 온통 물에 젖어 최악의 컨디션을 향하고 있었음에도 그 자리에 서서 스마트폰을 열고 카메라로 찍을 수밖에 없었을 만큼. 인간을 오랫동안 상대해 온 기후는 마침내 인간을 다스리는 법을 알아낸 모양이다. 어떻게 하면 문제를 덮을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관심사를 돌릴 수 있는가. 기후는 정말 인간을 닮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채로 시험을 봤다. 난방도 되지 않는 낡은 건물 안에서 발이 축축 젖은 채로 밖에는 아직도 눈이 펑펑 쏟아지는 공기 속에서 75분짜리 시험을 치고 밖으로 나왔다. 기대하는 건 채점 결과 100점이 아니라 시험의 종료였으므로 15분이나 일찍 나와버렸다. 역시 눈이 오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날은 더욱 추워지고 있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기 귀찮아졌다. 차라리 시간이 멈춘다면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굳이 이동할 필요가 없는 영겁의 정지. 귀차니즘을 한 방에 해결할 묘책을 찾았다며  마음속으로 유레카를 외쳤다.


물웅덩이를 이리저리 피하며 지나가다가 행정관 앞 넓은 잔디에 누군가가 있는 걸 발견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머리 길이나 목소리를 보니 여성이었다. 놓칠세라(?) 가까이 가 관찰해보았다. 절친으로 보이는 두 명이서 눈사람을 만들며 놀고 있었다. 나는 적잖이 놀랐다.  앞자리가 2로 넘어가는 순간 자연과 함께 노는 건 이제 끝이라고 생각했다. 봄의 꽃/식물 관찰이나 여름의 곤충 채집, 가을의 은행/밤 털이와 겨울의 눈놀이까지 자연의 모든 프로그램은 19세 이하 연령을 위한 놀이터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보기 좋게 상식을 파괴하고 있었다. 아니, 애초에 나에게만 상식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흐뭇한 마음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뼈저리게 반성했다. 놀고 즐기는데 나이가 있으랴.


나도 뭘 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에 쌓여있는 눈 근처를 서성거렸다. 혼자서 눈사람 만들기에는 예술성과 용기가 모자라서 일단 우산을 들고 글씨를 써보았다.



"눈이 너무 많이 온다."


팩트였다. 이건 하늘 보라고 쓴 말이었다. 보고 느낀 바가 없지 않은지 눈이 점차 잦아들기 시작했다. 어? 하늘이 내 소원을 들어준 건가?


"손이 시리다."


이것도 팩트였다. 수족냉증이 심한 편이지만 오늘은 그와 무관하게 그냥 추웠다. 이걸 해결하기 위해서는 하늘은 두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골라야만 할 것이었다.


(1) 날씨를 현저하게 따뜻하게 만든다.

(2) 누군가 그의 손을 잡아주게 만든다.


지구는 충분히 아프고 기상은 변덕이기 일쑤였으므로 (1)번을 선택하는 것도 그렇게 비논리적이진 않았다. 다만 엄청나게 많은 에너지가 든다는 게 문제였다. 단 한 명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서 몇 조 몇 경 줄(J)을 낭비한다? 한 명 한 명 소원 들어주다간 우주의 열죽음을 부추길지도 모른다. 지구는 오래 살고 싶을 거다, 분명.


그렇다면 소거법에 의해 남은 선택지는 (2)번.


후후, 지구 자식. 걸려들었어.


드디어 올해 크리스마스는 솔로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작년도, 재작년도 그렇게 생각했더란다.




처참했다.


지구는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남은 눈을 모두 토해냈다. 그 뒤엔 더 차갑고 더 매서운 공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단단히 준비해온 모양이다. 나는 오늘도 도서관에 가는 수밖에 없었다. 손을 녹이고 발을 말리면서 생각했다.


내가 졌구나.


기록적인 폭설과 지구와의 승부. 나는 둘 중 어느 것에서도 기쁨을 얻지 못했다. 하긴 그랬다. 45억 6700만 살과 20살의 승부였으니. 그가 나보다 더 산 45억 6699만 9980년은 헛되지 않았을 테니까.


다음 승부를 위해 오래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내일은 눈이 좀 덜 왔으면 좋겠다. 학교에 또 가야 한다. 부탁합니다, 지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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