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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gom Nov 11. 2015

수능날의 기억

내일, 동생이 수능을 봅니다!

하하... 동생 놈이 내일 수능을 봅니다. 이로써 저희 은 2년 동안 연속적으로 겪었던 고3을 영원히 벗어나게 됩니다. 감회가 새롭습니다.


제가 수능 볼 때는 사실 당일 새벽 말고는 거의 떨지 않았습니다. 시험이 이틀 남았을 때에도 아래와 같은 마약에 취한 글을 적곤 했습니다(...)



긴장을말하랴오늘빰은채칸꿘익는거스로조칼찌도모르겓따쓸마른넘쳐나지만공간은한업씨유한하므로생각은차라리아예표현되지안켇따는의지를구친다분처를무시하고어법규정은다조까야마땅하므로


2014.11.11(화)

04:28 오후



당시 피처폰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메모장에는 100자만 적을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지, 고민하다가 띄어쓰기를 무시하기로 했고, 기왕 어기는 거 분철까지 어겨버리자, 그냥 발음 나는 대로만 써보자, 해서 이딴 글이 탄생했습니다. 제 문법 실력을 검증한다는 의미도 있었습니다. 틀린 부분이 있으면 지적해주세요.


이렇게 미루어둔 긴장을 당일 새벽이 되어서야 벌벌 떨기 시작했습니다. 편하게 잠들기 위해서 산책까지 마치고 온 참이었습니다. 가벼운 샤워를 끝내고, 머리의 물기가 다 마르기까지 기다린 후에야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잠을 잘 수 있는 완벽한 상황. 저 적어도 12시에는 잠들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  같은 발상이었습니다. 분명 어제도 좋다고 잠들었던 그 침대였는데 오늘만은 왠지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편하게 온몸을 감싸주던 이불은 쇳덩이를 올려놓은 마냥 제 몸을 억눌렀습니다.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 고요한 공기가 불편했습니다. 곧은 자세로 자려니 따분함이 몰려왔습니다. 룸메 몰래 몸을 뒤척여 가슴을 바닥 쪽으로 향하게 해보았습니다. 소용이 없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습니다. 따분한 공부를 달래 주던 여러 자극 중 가장 오랫동안 머리에 남은 것은... 원치 않게도 음악이었습니다. 유투브에 떠돌아다니던 아이유 <소격동> 10시간 연속 재생 동영상. 그것은 분명 경쟁자가 남 몰래 심어놓은 폭탄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순진한 저는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수학 공부를 할 시간만 되면 컴퓨터 앞에 앉아 아이유와 함께 소격동을 다녀온 것입니다. 그리고 제 몸은 용케도 그 자극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겨우 침대에 누운 오후 10시 30분, 제 청각기관은 시키지도 않았는데 10시간짜리 아이유 동영상을 재생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아아, 제 몸은 생각보다 똑똑했습니다...


요컨대 초단기 불면증에 빠져버린 상황. 패닉과 차분함 사이를 오가던 이성은 다행히 이런 것도 있을 법한 일이라며 저를 다독이는 쪽으로 정착했습니다. 틀린 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중요한 일을 앞두고 항상 떨고, 떨어야만 합니다. 지나친 두려움은 분명 해악이지만 적절한 양의 두려움은 우리에게 경각심을 줍니다. 말 그대로 몸을 깨어있게 만들기 위한 천연 각성제. 레드불이나 핫식스 따위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건강함입니다.


그래서... 잠들기 전 마지막으로 시계를 보았던 건 2시 40분. 기숙사에서는 4시 50분에 깨워줬으니 그때부터 자기 시작했더라도 대략 2시간 정도밖에 자지 않은 셈입니다. 하지만 머리는, 뭐 평소보다는 확실히 피곤했습니다만, 그래도 나 꽤나 멀쩡하다고? 어필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녀석, 꼭 중요한 일 앞두고 이렇게 말썽을 피운다니까, 하면서 꿀밤을 먹였습니다. 룸메는 기겁을 하더니 아직 시험도 안 봤는데 벌써부터 자해할 필요는 없잖아? 하는 눈빛으로 저를 훑어봅니다. 후훗, 정 많은 녀석 같으니.


그 뒤의 이야기는 평범합니다. 아침을 먹고, 학교 중앙 플라자에서 친구들과 으아~ 하고 함성을 한 번 지르고, 바로 관광버스를 타고선 시험장으로 향했고, 시험을 봤습니다. 제가 경험한 하루 중 가장 짧은 하루였던 것 같습니다. 12년의 노력을 단 8시간 내에 쏟아붓는다는 건 마치 1시간에 1년이 넘는 밀도로 세월을 되감기 한 기분이었습니다. 지루하고 평범한, 하지만 꽤나 재미있었던 일상의 정점. 수능을 끝내고 기숙사로 돌아온 저는 왠지 서글퍼졌습니다. 그렇게 하고 싶었던 게임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제 시간에 잠자리에 들었을 뿐입니다.


이게 벌써 1년 전 이야기네요. 지금 생각해봐도 그때의 감정은 참 기묘한 것이었군요.


동생이 최선을 다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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