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의 오타를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

by ggom

법률의 오타는 어떻게 번역해야 할까? 우리 헌법 제130조 제2항은 다음과 같다.


헌법개정안은 국회가 의결한 후 30일 이내에 국민투표에 붙여 국회의원선거권자 과반수의 투표와 투표자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우리 맞춤법에 따르면 국민투표에 "붙여"야 하는 것이 아니라 "부쳐"야 한다. 사실 현행 헌법이 제정될 당시 맞춤법은 "붙여"였는데, 맞춤법이 개정되면서 지금으로서는 잘못된 어법이 되었다.


그런데 이를 영문으로 번역한 것은 다음과 같다.


The proposed amendments to the Constitution shall be submitted to a national referendum not later than thirty days after passage by the National Assembly, and shall be determined by more than one half of all votes cast by more than one half of voters eligible to vote in elections for members of the National Assembly.


submitted 부분을 포함하여 어법상 문제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이외에도 우리 헌법에는 띄어쓰기 등 (당시 어법의 기준으로도) 잘못된 부분이 있으나, 번역본은 어법에 맞게 번역했다.


법률을 번역할 때 어법에 맞게 고치는 것이 별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법률은 절차를 갖춰서 제개정하여야 하는 것이고, 단순한 오타 또는 잘못된 어법이라도 그러한 절차를 거치지 않으면 함부로 건들 수 없는 것이다. 외국어로 옮기며 일부분이라도 수정하는 것은 정당한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문제될 수 있다. 물론 우리말을 외국어로 옮길 때 정말 곧이곧대로, 정확히 우리가 받아들이는 의미로만 해석되도록 옮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하여 번역의 모호함을 이용해 잘못된 부분을 몰래 수정하는 것은 우리 입법자들의 의지, 또는 당시의 잘못된 상식을 은폐하는 일이 될 수 있다.


특히 우리 국민이 직접 제정한 최고 규범인 헌법에서는 이 문제가 더욱 두드러진다. 국회의원들이 일방적으로 제개정할 수 있는 일반 법률과는 달리, 헌법은 개정 제안부터 쉽지 않고 개정안을 확정하기 위하여 반드시 국민투표를 거쳐야 한다. 이렇게 엄격한 절차를 통해 달성하려는 헌법의 최고규범성이 일개 행정기관의 번역으로 완화될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헌법 개정 절차의 엄격함을 명시하는 헌법 제130조에서 이런 문제가 나타나는 것은 몹시 아이러니하다.


그러나 이에 반대하는 입장도 타당성이 있다. 헌법이 최고규범이라는 것은 우리 국민에게나 그렇다는 것이지 외국인들에게까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이때의 헌법은 단지 우리나라의 숱한 법률의 하나이며, 실제로 조항 하나하나가 외국인들에게 구속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원활한 의미 전달을 위해 어법에 맞게 고치는 것은 물론이고, 언어 차이의 당연한 결과겠지만 어순을 바꾸는 것도 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또한 헌법의 최고규범성이 대내적으로도 모든 분야에서 관철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헌법의 최고규범성이 생활 모든 분야를 구속한다고 한다면 애당초 "부치다"가 아니라 "붙이다"가 맞는 어법이어야 한다. 하지만 이를 고칠 수 있다는 것은 적어도 언어생활의 영역에서는 헌법이 최고규범으로 기능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번역은 언어생활의 하나이므로, 그 과정에서 잘못된 부분을 수정하는 것 헌법의 최고규범성을 해치지 않는다. 물론 우리나라 사람들이 우리 헌법을 어법에 맞게 고치기 위해서는 여전히 헌법 제128조 이하의 엄격한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이는 (다른 영역에서의) 헌법의 최고규범성을 수호하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불편이다.


맞춤법이 바뀔 때마다 헌법이 스스로 개정되는 자동장치 같은 것을 마련하지 않는 한 원본과 번역본 사이의 갈등은 불가피할 것이다. 제개정 당시의 어법을 역사적으로 보존한다는 측면에서 그러한 자동장치가 타당한지도 의문이다. 이러한 논의는 헌법과 법률의 중요성에 비하면 다소 사소한 논쟁거리일 수도 있겠지만, 법률의 규범성을 어떻게 해석하고 보존할 것인지, 그리고 우리의 잘못 내지 실수를 공동체가 어떻게 소화하여야 하는지에 대한 흥미로운 고민거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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