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등장하기도 전에 미리 깜짝 놀랐다가 무엇이 실제로 등장했을 때는 별로 놀라지 않았던 경험이 있는가? 문이 갑자기 열리는 줄 알고 깜짝 놀랐다가, 정작 누군가 들어올 때는 놀라지 않았던 경험 등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이때 그 깜짝 놀람은 도대체 무엇을 향한 감정이며, 이후의 평온함은 무엇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일까? 앞선 깜짝 놀람의 대상에 대한 각 가설을 중심으로 이 현상을 해석해보자.
1. 뒤이은 사건의 객체라는 설
뒤이은 사건의 객체라는 설에서는 깜짝 놀란 대상이 이후 사건의 객체라고 설명한다. 예컨대 위의 예시에서 깜짝 놀라고 나서 실제로 들어온 사람이 그 놀람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깜짝 놀랄 당시에는 그 대상이 존재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것을 대상으로 놀랄 수 있는지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마치 테드 창의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는 소설에서 소개된 '예측기'와 같은 인과관계의 역전이 발생하는 것인데, 예측기는 버튼과 LED로 구성된 작은 기계로 사람이 버튼을 누르기 1초 전에만 반드시 불빛이 점등하고 버튼을 누르지 않는다면 절대 켜지지 않는다. 예측기의 존재가 자유의지를 부정하는 것인가에 대하여는 예측기와 자유의지 문제를 참고하기 바란다.
여하튼 이 가설에 따르면 깜짝 놀란 대상은 뒤이은 사건의 그 객체이므로, 이후에 실제로 그 객체가 등장했을 때 우리가 평온함을 지키는 이유를 어렵지 않게 설명할 수 있다. 그 객체에 대해 놀란 감정을 미리 소모하여 그것을 반복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놀람과 객체 사이의 일대일대응이 성립한다면 단순히 인과의 서순이 바뀌었을 뿐 통상의 사건과 다를 바 없다. 현상에 대한 가장 깔끔한 설명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예측기와는 달리 감정 이후에 사건이 뒤따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이 가설은 심각하게 훼손된다. 누가 문을 여는 줄 알고 깜짝 놀랐으나 이후에 아무도 들어오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애초에 無를 향한 놀람이라면 모를까 조그마한 有라도 전제된 놀람이었다면 이 가설은 전제부터 성립할 수 없다. 이 경우 인과관계가 역전되었다느니, 자유의지의 존재가 부정된다느니 하는 이야기는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2. 아무것도 아니라는 설
가장 단순한 해석 방법이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깜짝 놀랐을 뿐이니 그 대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설이다. 그러나 이는 경험칙에 위반되는 사례가 많다. 깜짝 놀랐다가 이후에야 그 대상이 등장하는 일은 수없이도 많이 예시할 수 있다. 애당초 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여러 가지 해석이 제공되는 것은 그 미묘한 상관관계를 설명하기 위함이다. 놀란 대상이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다면 사람들은 그에 대한 해석을 요구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이후의 평온함을 설명하기에도 충분하지 않다. 처음에 놀랐던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을 향한 것이었다면, 이후에 실제로 무언가 등장하는 것은 독립사건이므로 그때는 별도로 깜짝 놀라야 한다.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 어찌 되었건 놀람의 감정을 소모하였으므로 이후에는 그 감정을 또 발현할 수 없다는 일종의 에너지적 해설도 가능하겠으나, 그것은 상황과 개인에 따라 편차가 있기 때문에 보편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3. 특정되지 않은 무언가라는 설
가장 유력한 가설인 특정되지 않은 무언가라는 설은, 놀람의 대상이 존재는 하나 무엇인지는 알 수 없는 존재라고 한다. 대명사설 또는 익명설이라고도 불린다. 이 가설은 위 두 가설을 모두 포섭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놀란 대상이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이기 때문에, 그것이 뒤이은 사건의 객체일 수도 있고(사실 뒤이은 사건의 객체라는 설) 아무것도 아니었을 수도 있는 것이다(아무것도 아니라는 설). 특히 후자와 같이 존재는 하나 그다지 실체가 없는 공집합도 포섭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가설의 포용력을 높게 평가할 수 있다.
또한 실제 사건이 발생했을 때의 평온함 역시, 미리 놀람에 포함되는 상황 중 하나가 발생한 것이겠으므로 평온한 것이 타당하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실제 상황의 객체는 미리 놀란 감정으로써 이미 평가되어 이후에 이를 다시 평가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상황을 포섭하는 만큼 설명력은 그만큼 떨어져서, 모든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가설의 구체성을 포기하였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해명이 필요한 어떤 상황에 대해서 "무언가 있긴 하겠죠"라고 설명하는 것은 과학성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강경한 비판론자들은 이 가설이 "잘 모르겠는데요"라는 대답과 전혀 차이가 없다고 지적한다.
4. 결론
미리 놀람이 무엇을 향한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결국 우리가 세계를 해석하는 방법으로 귀결된다. 그것은 반드시 발생할 운명론적인 대상일 수도 있고(뒤이은 사건의 객체라는 설), 사실은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으며(아무것도 아니라는 설), 무언가이기는 한데 그냥 잘 모르는 것일 수도 있다(특정되지 않은 무언가라는 설). 삶의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대답은 다를 수밖에 없겠으나, 깜짝 놀라는 것이 자율신경계의 문제 때문일 수도 있으므로 건강상 유의를 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