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범대 다니면서 임용 걱정 없이] 고민 에피소드 Q&A
[사범대 다니면서 임용 걱정 없이] 고민 에피소드 Q&A
Q. 부모님께서 제가 교사가 되기를 희망하세요. 장래희망은 뚜렷하진 않은 상태이긴 한데, 교사라는 직업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어른들은 교사하면 좋다고들 하시는 것 같은데, 요즘은 아닌 것 같기도 하고요. 교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어떤가요?
결론부터 말하면 '글쎄... 사회적 인식이 좋나?'라는 느낌이다. 일단, 우리나라에는 참 교육 전문가가 참 많다. 대략 천만 명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다. 다 교육을 접해봤기 때문이다. 자신이 12년씩이나 다녔던 초중고 시절을 바탕으로 교육에 대한 의견을 강력히 제시한다. 그리고 자신이 접했던 교사들의 모습을 근거로 지금 교사들의 모습을 추정한다.
그런데 모순적이게도, '교사라는 직업'을 갖기를 바라는 부모님은 아직도 많이 존재하고, 교사는 '좋은 직업', '안정적인 직업'이라는 인식은 여전히 많다. 교사는 안정적이라 욕하면서도 내 자식은 교사이기를, 내 자식은 교사와 결혼하기를 바라는 부모님들은 여전히 많다.
친한 사람에게 물어봐라. 부모님께 물어봐라. '나 교사하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해?'라고 물어보면, 다른 직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긍정적인 답변을 들을 확률이 더 높다. 근데, '교사라는 사람들 어떤 거 같아?'라고 물어보면 과연 어떤 얘기들이 나올까? 이것이 교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핵심이다.
교사 혐오. 아직 흔하게 쓰는 표현은 아니지만, 교사로서 딱히 어색한 느낌은 아니다. 혐오라는 공통된 감정이 생성되려면 '다수의 사람'이 '여러 횟수' 접할 수 있는 직업이 이어야 한다. 이런 예시에는 연예인, 사회적 저명인사, 핸드폰 판매원, 경찰 등이 있고 아닌 예시에는 항공기 조종사, 미술가, 우리 동네 빵집 아저씨, 에버랜드 너구리 사육사가 있다. 교사라는 직업과 사람에 대한 감정은 공감을 사고 서로 키워지는 것이다. 특히, 교육자라는 타이틀을 달고서는 혐오의 대상이 되기 더 쉽다.
아마 이 글을 보면서도, '편한 직업 주제에 엄청 찡찡거리려 하네'라고 한다면 '교사 혐오'라는 말이 참으로 들어맞을 것이다.
쉽게 얘기해서 잘 알려진 직업일수록 욕하기 쉽다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교사는 아주 좋은 표적이 된다. 한국인의 99.9%가 직간접적으로 접하는 직업이고 심리적, 신체적으로 미성숙할 때 가장 오랜 시간 만나는 직업이다. 또, 교사는 의도하든 의도치 않든 통제하고 억압하는 역할을 맡는다. 특히, 80년 대생 정도까지 연령대 사람들은 교사로부터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아보거나, 적어도 목격해본 경험은 다들 있는 것도 사실이다. 혐오의 감정이 생기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한편으로는 20~30년 뒤에 교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어떨지도 궁금하긴 하다. 이 사회에서도 90년 대생이 온다고 하지 않았나. 각 시도 교육청별로 학생인권조례가 공포된 것은 약 2010년대 초반이다. 90년 대생 중 일부는 친학생인권적인 학교를 경험한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2000년 대생부터는 사실상 많은 학생들이 많이 발전된 인권적 학교를 다녔다고 볼 수 있다. 쉽게 표현하면, 적어도 선생님한테 맞아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 있는 사람보다 더 많아진 세대라는 뜻이다. 비교육적 체벌, 두발 및 복장 규제, 과도한 학생의 자율권 침해 문제, 촌지 문제 등 많은 것들이 근절되어가고 있다. 이 세대들이 부모 세대가 되면 교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지금과 어떻게 달라질까? 달라지긴 할까? 아주 어쩌면, 더 나빠질지 모른다. 아주 조금이라도 억압의 입장에 서는 교사는 자유의 가치가 날로 커지는 현대 사회에서 더욱 설자리가 없어질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는 '철밥통'이라는 표현이 있다. 안정적인 일을 하며 사는 사람들을 비하하는 표현이다. 교사가 받는 월급을 받으면서 정년보장조차 안 되면, 게다가 임용까지 그렇게 어렵다면 이 직업을 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항상 그 직업의 밝은 면을 부러워하기 때문에 철밥통을 욕하는 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대기업 사원을 보면, 언제 잘릴지 모르는 어려움에 공감하기보다, '연봉이 그렇게나 센데, 그걸 힘들어하냐?, 내가 그 돈 받으면 기분 좋게 다닌다.'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어쨌건 교사는 제도적으로 보장된 안정성 측면에서 욕을 먹기 좋다.
우리나라가 잘 살고 행복한 나라가 되면 좀 나아질 수 있는 얘기일까? 몇 년 전 초등교사 선발 가티오가 전년도의 1/8로 박살 난 적이 있었다. 대부분의 여론은 수급정책에 실패한 정부를 탓하지 않고, '다른 취업이 얼마나 힘든데, 그거 경쟁률 조금 오른 거로 찡찡거리냐?'였고, 언론은 그것을 더욱 자극하는 기사들을 쏟아냈다. 2010년대 초중반 학번 교대생들은 교사를 바라보는 사회의 차가운 시선을 예비교사시절에 처절하게 느끼고 졸업했을 것이다. 아마 평생 상처로 남을 것이다. 이쯤이면 교육의 목표는 모두에게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을 기르는 것이 아닐까?
철밥통이라는 표현은 보이지 않는 대상들을 향해 하는 말이지만, 당연히 아는 사람에게 '철밥통'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지만, 교사를 철밥통으로 바라보는 정서는 여러 가지 말들을 통해 알 수 있다. 대표적인 말이 방학에 관한 얘기다. 물론 가볍게 안부를 묻는 의미도 일 수 있겠지만, '교사=편한 직업=방학'이라는 공식에서 가장 먼저 튀어나오는 말일 확률이 높다. 어떤 곳에서는 41조 연수를 폐지한다는 목소리도 낸다. 교사는 방학 때 쉬지 말고 일해야 한다고.
방학 전후 시즌, 오랜만에 누군가와 연락을 하면 10명 중 7~8명은 하는 말이다. '방학 언제야?', '방학 언제까지야?' 무슨 대답을 바라고 하는 말일까? 방학은 정말 학교마다, 교사마다 다르다. 나 같은 경우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방학'의 개념에 해당하는 방학은 여름방학은 평균 3일, 겨울방학은 평균 10일 정도 된다. 방학 때마다 보충수업을 하고,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들을 연수들이 있으면 연수를 들으러 다닌다. 요즘은 3학년 담임이라 애들 입시지도를 한다. 그러다 보면 딱 그 정도 방학이 남게 된다. 이런 상황들을 설명해봤자 '아 그래? 특이하네?(내가 봤던 교사들은 아닌데?)'라는 말투로 답을 듣게 된다. 그래서 그냥, '학사 일정상' 방학을 얘기하고 만다. (이래서 동료교사가 중요하다. 진짜 공감해주는 사람은 결국 동료교사이다.) 결국, 자신이 학창시절 경험했던 교사들의 모습을 통해 현재의 모든 교사를 바라본다. 나는 개인적으로 '연가'를 원하는 때에 자유롭게 쓰고, 극성수기가 아닌 비수기에 여행을 다니는 것이 부러울 때가 더 많다.
방학 때 놀면서 돈을 번다는 표현이 있다. 연가는 놀면서 돈 번다는 표현은 절대 없지만 말이다. 정확히 말하면 방학 때 놀면서 버는 것이 아니라 연봉을 1/12로 나누어 매달 받는 것이다. 물론, 교사도 연가를 쓸 수 있다. 그러나 학기 중에 연가를 남발하는 교사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자신의 수업과 학생을 챙겨야 할 뿐더러, '방학이 있는데도?'와 같은 말들을 듣기 때문이다.
한편, '안정적이다'라는 뜻은 반대로 열심히 일해도 물리적, 정신적 보상을 받기 어려운 직업이라는 뜻이다. 열심히 하더라도 급여는 한정적이고, 학생들에게 헌신한다고 하더라도, 이 사회에서 교사를 바라보는 시선은 아이들을 위해 수고하는 사람보다는 편하게 꿀 빠는 사람으로 더 크게 인식되는 것이 사실이다.
철밥통이라는 표현과 함께 등장하는 말 중 하나는 '잘 못 가르친다', '학원 강사보다 못 가르친다'라는 것이다. 사범대에서 그렇게나 어려운 임용을 뚫고 된 요즘 교사들이 무능력해서일까?
우스갯소리로 '수업은 쉬러 가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사람들은 수업이 교사의 주요 업무라 생각하겠지만, 그럴 수 없는 것(그러지 않는 게 아니라)이 현실이다. 아이들 관계 신경 쓰며 상담하고, 수학여행 보내고, 급식 먹는지 신경 쓰고, 생기부 입력, 수행평가, 각종 교육 프로그램 운영, 학교에서 일어나는 잡다한 행정업무 등을 하면서 양질의 수업을 준비하기에는 추가 근무가 필연적이다. 교사가 수업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는 목소리보다, 교사는 편한 직업인데 수업도 구리다는 목소리가 큰 것이 이 사회의 현실이다.
최근에는 코로나19사태로 인해 아이들이 학교를 등교하지 않자, 교사들이 너무 놀고 먹는다는 댓글들도 많았다.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온라인 수업을 처음 준비하느라 엄청 애먹고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했을텐데 말이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아이들을 위해 도움을 줄지 고민하셨을 수많은 선생님들이 이런 댓글들을 보며 많이 씁쓸해하셨을 것을 생각하니 나도 씁쓸해진다.
더욱이, 교사에게는 다른 모든 직업들에 비해 높은 도덕관을 요구하기 때문에 잘못을 했을 때 더 큰 처벌을 받고 욕을 먹게 된다. 어떤 잘못에 대해서 어느 직업군에 대해서는 '그럴 수도 있지'라고 한다면, 교사에게는 '어떻게 애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그럴 수 있어?'가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교사는 혐오의 표적으로 삼아지기 딱 좋다. '교사는 음주운전하면 안 돼', '교사는 무단횡단하면 안돼'는 잘못된 표현이다. '운전자는 음주운전을 하면 안 돼', '보행자는 무단횡단하면 안 돼'가 맞는 표현이다.
스승의 날. 이상한 청원이 올려왔다. 스승의 날을 폐지하자는 청원이었다. '응? 교사들이 하도 꿀 빨고 편해서 스승의 날도 없애자는 건가?' 흠칫했으나 더욱 흠칫하게 만든 건 교사의 청원이었다는 사실이다. 아래는 청원 문의 일부다.
''스승의 날 학생대표만 교사에게 꽃을 줄 수 있다''는 국민권익위원회장의 말은 화를 돋구었습니다. 교사들 중에 누가 그 꽃을 받고 싶다고 했습니까? 왜 교사의 자존감을 이렇게 짓밟는 것입니까?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을 수 없다''는 말은 늘 하면서 정작 교사에 대한 정부기관과 우리 사회의 인식은 여전히 '촌지나 받고 있는 무능한 교사'라는 인식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권침해는 나날이 늘어가고 있고, 언론의 교사 때리기가 도를 넘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스승의 날은 유래도 불분명하고 정권의 입맛에 따라 없앴다가 만들기도 했습니다. 우리 헌법이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칙적 중립성을 보장받도록 하고 있지만 정작 교사는 교육의 주체로 살아본 적이 없습니다.
모든 책임을 학교에 떠넘기며 교사를 스승이라는 프레임에 가두어 참고 견디라고 하면서 ''교사는 있지만 스승이 없다''는 말은 또 아무렇지 않게 합니다. 왜 이 조롱을 교사들이 받아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교단의 현실이 이와 같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교권존중의 사회적 풍토 조성"을 이유로 포상, 기념식 등의 행사로만 일관하고 있습니다.
교권은 포상과 행사로 살아나는 것이 아닙니다. 교권추락은 수수방관하며 교사 패싱으로 일관하는 분위기에서 현장의 교사들은 스승이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소명의식 투철한 교사로 당당하게 살아가고 싶습니다.
나에게도 스승의 날은 364일 매맞기 위한 1일의 보상과 같은 느낌이다. 그렇지만, 아이들이 스승의 날에 표현하는 감사함은 이 생각을 잊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참 어렵다.
어쩌면 백 번 들은 칭찬보다 한 번 들은 비난이 더 오래 기억에 남기에 교사인 나의 글이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힘든 거 알아달라고 찡찡거리는 것이 아니다. 이 글을 통해 교사들이 품고 가야 할 것들을 예비교사에게 전해주고 싶었을 뿐이다.
어쨌건 교사로 살아간다는 것은, 아이들을 위해 살아간다는 것은 끊임없는 내적, 외적 갈등의 과정인 것이다. 내가 아이들을 위해 순수하게 노력하더라도, 모든 사람이 나를 칭찬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나아가 사회적 혐오를 피할 수는 없다. 물리적 보상 또한 사실상 없다. 교사는 그 모든 것을 안고 나아갈 뿐이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내가 노력한 것만큼, 아니 그것보다 더 성장하는 아이들의 모습과 감사함을 전하며 멋지게 사는 아이들을 보면서 꾸역꾸역 힘을 내려 한다. 그런 아이들이 있어 감사할 따름이다. 존경받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아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좋은 영향을 주었다는 생각과 경험은 재만 남기 직전과 같은 화로에 조그만 나무 장작을 넣어주곤 한다.
걱정이 된다. 요즘 초등학교에서는 애들이 선생님을 욕하고 성희롱하고 때린다던데. 그 세대의 아이들이 고등학교에 올라오면 나는 또 어떤 교사가 될까? 5~10년 뒤에는 교사충이라는 말도 있지 않을까? 설령 그런 아이들을 만나게 될지라도 이 시대의 선생님들은 꿋꿋이 아이들을 케어해 나갈 것이다. 편한 직업이라고, 방학 있다고, 연구 안 하고 계속 똑같이 가르친다고 누군가 말하더라도, 아이들의 성장과 꿈에 감동하고, 고생하며, 연구하고, 고민하며 살아갈 것이다. 나 또한 그럴 것이다. 어쩌면 그렇게 '선생님이 된다는 것'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독려하고, 그리고 '위로'하며 살아가야 할 일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