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사범대생에게 대외활동이란?
#4. 사범대생에게 대외활동이란?
순찬'
사범대생에게 대외활동이란?
수많은 사범대생들에게 대외활동은 '계륵'처럼 여겨질 것이다. 큰 쓸모는 이익은 없으나 버리기는 아까운, 이러기도 저러기도 애매한 것 말이다. 사실 조금 확장해보면, 고시생들에게 대외활동이란? 질문과 조금 맞물린다. 임용고시를 포함한 여러 고시 시험을 보는 것에 있어 합격에 대외활동이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진 않기 때문이다. 그러자고 대학생활을 공부와 고시 준비로만 보내자니 그러고 싶지도 않아 타 단과대생들 처럼 대외활동을 하자니, 시간을 뺏기는 것도 같고, 참 어렵다.
나는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임용 응시생'인지 '예비 교육자'인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절대로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사범대 다니면서 임용 걱정 없이' 모든 포스팅들은 한 가지 정답만을 이야기하려 쓴 것이 아니다).
내가 어떤 사람으로 대학생활을 하고 싶은지, 왜 그런 사람으로 대학생활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들이 대외활동을 '계륵' 같이 애매한 것이 아닌 '필요한 것', '불필요한 것'을 정확히 나누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고민과 고민의 답이라는 것이 이분법적인 것은 아니다. 중도적인 입장으로 바라볼 수도 있지만, 그 '중도적 입장'이란 것들이 여러 관점에서 쌓이면 '임용 볼까? 말까?', 즉 임용 걱정에서 벗어나기 어려워진다.
아래는 이 고민에 대한 포스팅이다.
저학년 때부터 착실하게 임용을 준비하여 초수나 재수에 임용에 합격하여 교직생활을 일찍 시작한 것이 맞는 사람에게는 그게 최선이다. 하지만, 우리가 선배들로부터 수많은 임용 전략을 받아보고, 들어볼 때 그들의 삶이 어땠었고, '현재' 어떤지에 대한 고민은 없었던 것 같다. 생각이 많으면 피곤한 게 인생이기도 하지만, 이 질문만은 꼭 스스로에게 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착실히 준비해서 빨리 임용되었을 때, 얻는 것은? 혹은 잃는 것은?
빨리 임용된 이후, 나는 어떤 삶은 어떨지? 내 인생이 달라지는 부분은?
그 달라진 부분이 나의 삶에서 우선 가치들 중 어디쯤에 있는지?
이러한 질문들에 답하고자 한다면, 결국 나의 삶의 '우선 가치'내지 '최종 가치'가 무엇인지 대한 이해가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가장 소중히 여기는 가치라 여기는가에 대한 것 말이다. 거기서 나의 진로계획의 방향성이 정해질 것이다. 내가 인생에서 중요시 여기는 것들이 무엇인지 모른 체 나의 진로를 설계한다는 것은 내가 무엇을 살지 생각하지 않고 쇼핑하러 가는 것과 비슷하다. 그것 자체가 모험이고 즐거움이기도 하겠지만, 쇼핑을 하는 주말 시간처럼 우리의 청춘은 한정되어 있지 않은가?
이유가 어쨌건(그냥 해보고 싶어서여도 의미 있는 이유가 될 수 있다) 설령 이유는 없지만 그냥 끌려서(이유는 나중에 찾아질 수도 있으니까! 이준건은 그랬다) 대외활동을 하고 싶다면 자연스레 이렇게 질문하게 된다.
그러면 무슨 대외활동을 해야 하지?
자, 이제 모험이 시작되었다. 답은 없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찾아보면 된다. 좋은 대외활동이란 건 본질적으로 없다. 대외활동에서 내가 좋은 경험을 할 뿐이다.
그렇긴 하지만 대다수의 사범대생 막연할 것이다. 딱히 주변(사범대)을 보면, 무언가 하는 것 같으면서도 뭘 하는지 모르겠고, 누구에게 물어봐야 할지는 더욱 모르겠다. 그렇다고 대외활동을 많이 하는 상경계열, 인문계열, 사회계열 사람들에게 물어보자니 사범대와 동떨어지는 내용 같아 고민이다.
막연하다면, 교육 그리고 교과와 직접적인 관련성이 높은 것부터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
우선 나(순찬) 또한 [사범대 다니면서 임용 걱정 없이] #2. 사람을 통해 세상을 바꾸는 행복한 교육자에서 이야기하였듯(아래 링크 참조) '다양한 학생을 포용하기 위한 다양한 경험이 있는 교사'를 모토로 시작했으나 처음에는 막연했다. 그래서 당장 직접적인 관련성이 높은 주로 교육과 수학(수학교육과니까)에 관련 활동부터 하였다.
http://blog.naver.com/ggoma8989/221096356616
2012년, 그 해는 올림픽처럼 4년마다 개최되는 국가가 달라지는 국제수학교육자대회에가 우리나라 서울에서 열리던 해였다. 그 해 여름, 국제수학교육자대회에서 수학체험부스에서 사이클로이드를 만들고 찾아오는 국내외 교사, 학생들에게 설명을 해주고 체험시켜주는 부스를 운영했다. 나는 영어를 그렇게 잘하는 편이 아니지만, 부스의 체험 내용과 관련된 문장을 암기라도 해서 외국인 교사들에게 설명해주었다. 대학교 1학년이 수학 교사에게 수학 교구를 설명하는 것만으로도 긴장되는 일인데 영어로 하니 내성적인 나에게는 더욱 긴장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부딪히고 부딪혀서 그렇게 맛본 성취는 나의 자산이 되었다. 무언가를 낯선 이에게 제대로 설명해보는 첫 경험이었던 것 같다. 남들에게는 별거 아닌 경험일지라도 나에게는 전공과 관련한 고민과 성취의 씨앗이 되는 경험이었다.
그렇지만 나도 다른 요즘 1학년들처럼, '공부하는 1학년, 도서관 가야지' 나도 어쭙잖게 폼 잡았던 것 같다. 공부하는 1학년이 어딨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알지 않는가? 1학년 때 이상하게 고등학생의 관성이 있어서 '어쭙잖게' 공부하는 1학년 말이다. 그래서 대외활동도 거의 안 했던 것 같다. 공부에 방해된다고.
1년 내내 국제수학교육자대회 체험부스 운영하고 유럽 여행(24살 먹고 태어나서 처음 가보는 해외여행) 다녀온 것 말고는 한 것이 없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20살 때 겪었던 실수를 크게 다르지 않게 반복하는 것 같아 이대로는 안 되겠다 마음먹고 겨울방학 전 무언가를 찾아보았다. 학교 벽보였던 것 같다. 사실, 우리는 정말 수많은 정보가 근처에 있음에도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런 걸 어디에서 찾냐고 물어본다. 강의실만 나가도 바로 코 앞 학교 게시판에 여러 활동들이 붙어있다(물론 여기서 선별해야 하지만). 대학교 내 사회봉사단이란 기관에서 인원을 추려 올려서 한국대학사회봉사협의회에서 해외봉사 가는 인원을 선발하는 공고였다. 유료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무료로도 정말 유익한 프로그램이 많은 걸 아는데 그때 당시에는 내가 나이만 먹고 아무런 이력이 없었기 때문에 유료면 선발이 조금 쉽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돈을 일부 내서라도 지원하게 되었다(2주 해외봉사에 60만원이었나? 내 인생의 위기감에 비하면 그렇게 비싼 돈은 아니었던 것 같다. 사실 방학 때 2주 동안, 그리고 국내에서 준비하는 동안 숙식을 해결해주면 괜찮은 돈이라고도 생각했다. 그 당시에는)
해외봉사를 처음으로 지원하던 시기에는 몰랐는데,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
스펙이 스펙을 낳는다.
해외봉사를 운영하는 팀의 입장에서 만약 원활히 봉사가 운영되는 것을 우선순위에 둔다면(실제로 대부분은 그렇다) 해외봉사나 관련 경험이 있는 지원자를 선호하는 것은 당연하다. 수상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활동을 엄청 잘해서 수상한 경우도 있지만, 여러 경험들이 쌓이다 보면 자연스레 수상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들도 많다. 이런 사례를 나열하면 끝도 없다. 스펙이 스토리와 스펙을 만들고, 그 스토리와 스펙이 또 다른 스토리와 스펙을 만들어나간다.
대부분의 대외활동 저경험, 무경험 사범대생들이 대외활동 이력이 화려한 사람에게 '벽'을 느끼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나(순찬)도 대외활동을 많이 했지만, 1학년 때는 고작 국제수학교육자대회에서 며칠 동안 수학 교구 부스를 운영하고 겨울방학이나 돼서야 해외봉사와 교육봉사를 해본 것이 전부였다. 그것조차도 버거웠고 힘들었다.
대외활동 고스펙자들도 처음 대외활동들은 마찬가지로 쉽지 않았다.
수치로 예를 들어보자. 대외활동 40개를 한 사람 A가 있다고 하자. 대외활동을 4개 한 사람 B가 A를 바라볼 때, '우와... 나는 4개 하기도 힘들었는데, 저 사람(A)은 나의 10배나 했네. 대단하다. 내가 따라갈 수 있는 영역이 아닌 것 같다. 저 사람이 저렇게 40개 하고서 스토리를 얘기해주면 뭐해. 나랑 다른 세상 이야기인데'라는 식으로 바라보기 십상이다. 그 마음 안다.
나(순찬)도 반오십이나 되는 나이에 이르러서야, 고작 해외여행을 1번, 대외활동 3개가 전부였다.
대외활동이나 기타 스펙은 '가속도'가 붙는다. 어느 시점 이후로는 별로 힘들이지 않고 참여할 수 있고, 이야기했던 것처럼 스펙이 자연스레 여러 방면에서 다른 스펙을 낳는다.
그런데, 스펙이 스펙을 낳는 것보다 더 중요한 깨달음이 있었다. 나의 경우는 그랬다. 25살이나 먹고 어벙하고 경험도 부족할 때,
화려한 이력의 대학생들로부터 벽을 느끼끼도 했지만
그들을 통해 넓은 세상을 보기 시작했다.
한국대학사회봉사협의회에서 청년단기 25기 해외봉사로 방글라데시로 2주간 교육봉사를 갔던 30여 명의 방글즈 팀에서 정말 많은 것들 배웠다. 해외봉사 활동 자체에서 배운 것도 많았지만(이 부분은 아래에 작성하겠다) 같이 갔던 팀원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나는 첫 해외봉사였는데 나보다 어린 대학생들이 이미 5번째 해외봉사라는 사람도 있었고, 여기저기서 리더의 경험과 각종 자기 분야의 전문성, 여러 분야에서의 다양한 대외활동 이력이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 '가시적' 이력뿐만 아니라 성실함, 따뜻함, 추진력, 기획력, 감화력 등 사람마다 각자의 빛을 내뿜고 있었다. 무언가 경험하고 배우고자 떠난 해외봉사였던 탓인지 모든 사람들은 나에게 빛이 났다. 꿈을 좇는 젊은 청년들이 보아왔던 세상을 간접적으로 느끼면서 나도 넓은 세상에 대한 기대와 두근거림, 그리고 이후의 실제적인 계획들을 구상하는 영감을 얻을 수 있다.
나 또한 그렇게, '상대의 천부적, 압도적(?) 스펙과 재능'을 강하게 느끼면서 시작하게 되었다. 그것이 '무언가의 벽'으로만 느껴졌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벽으로 느껴지는 동시에 '새로운 세상에 대한 두근거림'이기도 했다. 그것이 이후의 나를 움직이게 했던 것 같다.
넓게 보기 시작한 세상은 1차적으로 '재미'를 가져다주었다(준건이의 스토리도 이와 맞물리는 부분이 있다). 학업 이외의 모든 대외활동들은 재미와 함께 그를 넘어 다양한 경험과 시각 가져다주었고, 결국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내가 어떤 교사가 되고 싶은지
계속 질문하는 힘과 거기에 답하는 힘의 원천이 되었다.
학업에서 얻을 수 있는 것과는 또 다른 원천.
겉보기에 취업을 위해 스펙을 쌓은 것처럼 본 사람들도 많았을(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냥 재밌었다. 경험하고, 그 경험은 또 나에게 새로운 갈증과 도전의식을 불러일으켰다. 돌이켜보니 쌓아온 경험들은 사범대생들 중에 거의 독보적인 수준이 되어있었다. 이는 일련의 '스토리'에 중요한 '스펙적' 요소가 되어 훗날 사립 정교사 3군데 동시 합격의 커다란 힘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교직을 시작한 이후에도 나의 교직관을 끊임없이 고민하는 힘이 되었다. 학업에서 얻을 수 있는 것과는 또 다른.
준건'
사범대생에게 대외활동이란?
사범대생이란 타이틀을 떨쳐낸지도 1년 하고 다시 8개월이 더 지났다. 시간이 더 지나 많은 것들을 잊기 전에 내 이야기를 적으려 한다. 대외활동이란 무엇인가 얘기하기 전에 대외활동이란 무엇일까 정의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수학 전공자는 모두 정의하기를 좋아한다.) 문자 그대로 쓰자면 대학 바깥의 활동, 각종 기업에서 대학생의 이름을 달고 하는 활동, 봉사활동, 캠페인 등등 나열하기엔 너무 많다. 내가 목격한, 지원한, 활동한 대외활동들이 전부가 아니듯 내가 모든 사범대생의 활동을 묶어서 이야기할 순 없다. 내가 무슨 대표성이 있다고... 나는 내 좁은 식견으로 내 이야기만 하고자 한다.
나에게 대외활동이란?
같이 글을 쓰는 황순찬과 비교했을 때 나의 대외활동의 개수, 방면, 활동의 깊이는 압도적으로 차이가 난다. 나에겐 뚜렷한 목적도, 방향도 없었다. 누군가 하자고 해서 해본 것이고 해보니까 기대 이상으로 재미가 있었고, 재미가 있어서 주변에 적극 추천을 했을 뿐, 그뿐이었다.
이제는 누가 어떤 맥락에서 했던 말인지 기억이 나질 않지만 '사범대 학생'이라고 하면 상당히 폐쇄적인 이미지를 갖는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아마 어느 교양 수업에서였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이 말에 어느 정도 동의할까? 나는 적어도 절반 이상은 확실하게 동감한다. 사범대는 그 특성상 폐쇄적일 수밖에 없다. 다른 단과 대학과 비교했을 때 단출한 인원수, 전공별 뚜렷한 구분으로 다른 과와 섞여서 듣는 수업이 거의 없는 특성, (특히 우리 학교 같은 경우 높은 곳에 있어서 일단 올라가 틀어박히면 나오기 쉽지 않은 위치상 이점?)까지 다른 과와 굳이 섞이지 않아도 거의 모든 사람을 알고, 친해지고, 외로움 없이 다닐 수 있는 단과대학이라고 생각한다. 그로 인해 이런 이미지가 생긴 것이리라...
내가 첫 대외활동을 시작한 계기는 진로에 대한 고민에서였다. 수학교육과에 입학했으면 정해진 수업대로 임고를 준비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없기를 바란다.
수학교사를 희망해서 입학을 한 것은 맞지만 20대 초반에 5년 안팎의 시간 동안 진로에 대한 고민이 없을 리가 없다. 군대를 갓 제대한 2학년의 내가 그랬다.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나도 등을 떠밀리듯이 임용시험 고시생이란 흐름에 떠밀려 갈 것 같았다. 그 물살이 무섭기보다는 (수영에는 근거 없이 자신감이 넘친다.) 일단 물에 들어가고 나면 주변 풍경을 관찰할 수 없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많이 걸렸다.
23살의 나는 인생에 대한 고민이 필요했다. 눈 앞의 해석학과 미분기하가 벅찬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기에 더욱 다른 활력소 같은 존재가 필요했다. 나에겐 그것이 대외활동이었다.
저런 일련의 사고 과정을 거쳐 대외활동해볼까?라는 결론에 도달한 것은 결코 아니다. 아마 전공이 힘들었고, 다른 재밌는 일을 눈 돌리다가, 우연히 어느 전단지를 발견한 게 아닐까 싶다.
자, 그렇다면 대외활동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자연스레 다음의 질문이 나오게 된다.
그럼 무슨 활동을 해야 하지?
사실 이 질문에 대하여 '왜 해야 하지?', '바쁜데 어떻게 할 수 있지?' 등으로 다시 재질문 해야 하지만, 추상적인 이야기를 많이 늘어놓았으니, 막연한 이들을 위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황순찬, 이준건의 추천 대외활동을 남겨보고자 한다.
#5. 사범대생 추천 대외활동
http://blog.naver.com/ggoma8989/2211024296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