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난 단어들로 뜨개질하는 이유
구멍난 코 메우기 - 문자통역사 편
'오늘도 문자 통역받으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문자 통역이 끝나고 나면 농난청인께 드리는 인사다.
열심히 발화자의 말을 듣고 땀나도록 속기한 건 필자이지만, 되려 고생하셨다는 인사를 드리는 이유가 있다.
'그냥 편히 앉아서 글만 읽는 게 아니었나?'
가까이에서 농난청인분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문자 통역 화면에 빠르게 쏟아져 나오는 글자를 놓치지 않으려고 두 눈으로 집중해서 따라간다.
이때, 발화자가 말을 끊지 않고 준비한 PPT 자료나 유인물을 손이나 레이저 포인터로 가리키는 상황이 온다면?
지시하는 것이 무엇인지, 가리키는 문장을 읽음과 동시에
그곳이 어디인지 눈으로 한 번 더 따라가서 본다.
왜냐하면 이해를 돕기 위해 만든 자료니까.
청인의 경우 어려울 점이 없는 모습이다.
그런데 필자가 봤을 때 이 상황이 마냥 매끄럽지 않아 보이는 면이 있다.
청인은 귀로 설명을 들음과 동시에 눈으로 가리키는 곳을 따라갈 수 있으니, 한 시선에 두 가지 일 처리가 가능하다.
반면 농난청인분들의 경우 눈으로 문자 통역을 보고 있는데, 자료를 번갈아 봐야 하는 상황이 오게 된다면.
두 눈이 자료물과 문자 통역 화면을 바삐 움직이며 발화자의 설명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여기에서 이 부분을 보시면요.'
발표나 강연 등을 듣다 보면 흔하게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여기'가 무엇이고, '이 부분'이 어느 부분인지
지금 위 문장만 보았을 때 정확히 알아차릴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감사한 독자분들께서도 필자가 어느 부분을 가리키는지 예상하기 힘드실 거라는 추측이 든다.
대부분 발화자는 발표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경우가 있기에 시간 관계상 빠르게 설명하고 넘어간다.
또는 설명할 부분이 많을 때 일일이 A부터 Z까지 세심하게 짚는 건 현실적으로 힘들기에
흐름상 대명사로 지칭한 후 레이저 포인터나 손으로 빠르게 가리키고 거둔다.
이때, 만약 문자 통역 화면을 응시하느라 발화자가 지시한 부분을 놓쳤다면, 다시 되짚어줄 수 있는 대체 수단은 문자통역사다.
예를 들면
'여기(브런치스토리)에서 이 부분(댓글)을 보시면요.'
위와 같은 표시로 괄호 기호를 기입해서 지시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짚어주면 된다.
방법은 간단하지만 순발력과 배려심이 요구된다.
내가 입장을 바꿔 속기록을 받아본다고 가정했을 때,
문장만 보고 이해할 수 있을지 역지사지하면 된다.
조각난 단어들로 한 줄씩 뜨개질하다가
발화자의 지시 대명사 (여기, 이것, 저것) 사용으로 왕코가 빠질 때 방치하고 넘어갈 경우,
이해에 차질이 생기기 때문에 촘촘하지 않고 구멍 숭숭 뚫린 미완성품이 된다.
추후 구멍이 무엇이었는지 메우려 해도 유추가 어렵기에
문자 통역 시 이 부분까지 세심하게 살필 필요성이 크다고 느낀다.
'보내주신 속기록이 가독성이 좋고 강연까지 좋아서 너무 감사하게 봤습니다.'
실제 문자 통역 종료 후 받았던 쪽지인데, 사실상 필자가 계속 활동할 수 있게 해 주는 반영구적 비타민이라 할 수 있다.
달력이 넘어갈수록 가라앉기 마련인 초심을 수면 위로 끌어올려주고 더 나은 통역 방법은 없을지 궁리하게 된다.
더불어 나의 일이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하다는 그 사실만으로 존재 가치를 여실히 느끼게 해 주기에 더욱 감사한 마음으로 작업 종료 후 인사드린다.
'오늘도 문자 통역받으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