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와 4분의 3 승강장 같았던 세계

그곳에는 이기적인 말포이 선생님도 함께

by 한꼼꼼


“엄마, 저 아줌마랑 가까이 있는데 왜 그렇게 크게 말해?”


어릴 적부터 어머니 덕분에 농난청인분을 자주 접할 기회가 많았다.

어머니는 이사 가는 동네마다 뛰어난 사교력으로 친구분들을 금방 사귀셨는데, 그중 꼭 농난청인분이 계셨다.


“응, 아줌마가 소리가 잘 안 들려서 귀에 보청기를 끼고 있거든. 대신 크게 또박또박 말해주면 다 대화할 수 있어.”


어머니가 큰 목소리로 같은 단어를 몇 번 반복해서 말씀하시면 아주머니는 알쏭달쏭한 표정을 짓다가 뭔가 깨달으신 듯 갈매기 눈썹이 되었다.

그러면 그제야 어머니가 뒷 말을 이어나갔는데, 옆에서 지켜보니 마치 단어 하나하나를 스무고개처럼 맞춰 나가며 대화의 맥락을 파악하시는 것 같았다.




'내가 알던 세상이 전부가 아니었구나.'


성인이 되고 독립하면서 농난청인분을 만날 기회가 매우 좁아졌는데, 본격적으로 속기를 시작하면서 더 넓은 길이 펼쳐졌다.


한창 다니던 회사를 건강 문제로 퇴사하고 도망치듯 이직한 곳은 특수학교였다.


그곳이 나에게 준 첫인상은 마치 영화 해리포터에 나오는 기차역 같았다.

문 하나를 통해 다른 세계를 다녀온 것 같아서 입사 초반은 처음 느껴보는 감정에 어색했다.


학교에 출근하면 다양한 장애 유형의 아이들이 다가와 큰소리로 내 이름을 말하며 반겨주었다.

하지만 퇴근하고 나오면, 단지 건물 밖만 나왔을 뿐인데 길에서 단 한 명도 만나볼 수 없었다.

거리에는 비장애인만 다녔기에 반나절 동안 꿈을 꾸고 나온 듯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속기사 선생님, 제가 방금 한 말은 안 적으셔도 돼요.”


특수학교에서 내가 맡은 직무는 청각장애교원 근로지원인이었다.

교원 연수나 회의, 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말하는 것을 전부 속기해야 했다.


말 그대로 선생님의 귀가 되어 회의 시간에는 선생님들 간에 오고 가는 농담까지 담아내고

수업 시간에는 다른 선생님이 학생을 혼내는 사소한 말까지도 다 속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이를 꺼려하는 분이 계셨다.

같은 학교 선생님이었다.


장애아동을 가르치며 장애인 감수성을 누구보다 강조하고 비장애인과 똑같이 대하는 것을 엄수하지만,

정작 직장동료인 청각장애인 선생님을 청인 간 대화에서 배제하는 모습이 의아했다.

게다가 특수학교 내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괴리감을 느꼈다.

처음 겪어보는 상황에 잠시 손이 멈칫했지만, “네”라고 대답하면서 모두 속기했다.


그런 나의 행동을 눈치챈 걸까.

훗날 시간이 지나고 줄곧 자신의 말을 적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던 그 선생님은

실시간 속기 화면에 자신의 말이 적혀 있는지, 없는지 직접 확인하는 모습에 등골이 오싹하고 씁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