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어발 프리랜서 - 문자통역사 편
"오늘 진행되는 사주 문자통역 건 신청이 들어왔는데, 지원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가능하실까요?"
나 대신 누가 가겠거니, 생각하며 며칠을 보내고 있었는데 결국 담당자분께 일대일 연락이 왔다.
당장 몇 시간 뒤 저녁에 진행될 예정이라 급한 상황이었다.
집에서부터 해당 장소까지 거리가 꽤 멀었기에 배정받는다면 곧 출발해야 했다.
사실 며칠 동안 문자 통역 신청 공고가 올라온 것을 확인 못 한 건 아니었다.
신청인분께 죄송스럽지만 마음 한편에 부담감이 있어 흐린 눈을 하고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사주란 내담자의 생년월일, 몇 시에 태어났는지 개인정보부터 시작하여 머릿속에 있는 고민과 생각까지 역술가분께 공유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레 함께 동참한 나도 이야기를 다 듣게 되는데, 이때 참고할 점이 신청인분과는 당연히 초면이다.
물론 사적인 이야기라 함께 동행한 문자통역사는 절대 외부 유출하지 않는 것이 기본 상식이며 원칙이고 당연히 그렇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억이 강제 주입되어 언젠가 다시 마주치게 된다면 생생하게 떠오를 것 같았다.
농난청인분께 말을 전달해 주는 역할이기에 딱 거기까지 사고 회로를 멈춰야 하는데,
원치 않지만 사적인 생각들이 이성에 침투할까 우려스러운 점이 컸다.
"네! 제가 가겠습니다."
그렇다고 단지 내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고 해서 안 간다고 하기에 아수라 백작처럼 찜찜한 마음이 들었다.
듣고 싶은 것만 듣고, 하고 싶은 것만 골라하려는 달콤함만 추구하는 마인드는 머지않아 우물 안 개구리가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담당자분께 회신을 보내고 장비들을 챙긴 뒤 곧장 현장으로 출발했다.
약속 장소에 모두가 모였지만, 그 가운데 나는 초대받지 못한 손님인 것 같아 묘한 어색함이 흘렀다.
'궁금한 거 물어보세요.'
역술가분이 흐름을 깨고 운을 띄웠다.
농난청인분께서 문자 통역 화면을 한번 쓱 훑어본 뒤 줄줄이 질문들을 이어나갔다.
대인관계 고민, 앞으로의 행보 결정 등등...
평소 수없이 고민하던 나의 속마음과 별반 다르지 않아 친근감이 내심 들기도 하였지만
하마터면 못 오셨을 수도 있었겠다는 사실에 먼지 가득한 숨이 뱉어졌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나도 갓 대학을 졸업했던 시절 취업 문에 부딪혀 뿌연 허공 속 광명을 찾고자 친구와 함께 사주 카페를 찾은 적이 있었다.
"올해 열심히 하면 내년에 취업된다."
얼마나 당연한 진리의 대답인가?
너무나 단순하여 복채가 아까울 정도이지만, 당시 가족의 잔소리 같은 충고보다 남이 해 준 당연한 말 한마디에 위로받고 집으로 돌아갔던 기억이 있다.
답도 없는 내 미래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시원한 결말을 던져주길 바랐던 심리였던 걸까.
더불어 이날 신청인분도 비슷한 마음이지 않으셨을까 조심스레 추측하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농난청인분들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일상의 권리와
여느 청인들과 어려움 없이 의사소통 할 수 있는 권리를 알고도
나는 무엇이 부담스러워 흐린 눈으로 회피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