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네모났다. 지금도 여전히 네모날 수도 있다.
'아, 나도 같은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지'
최근 우연히 본 기사에서 까맣게 잊고 있던 나의 과거가 생각났다.
지금 생각하면 나의 무지함에 민망한 웃음이 절로 지어진다.
기사의 내용은 이렇다.
얼마 전 가수 비(정지훈)가 대만에서 콘서트를 했는데, 춤을 추지 않고 가만히 서 있는 팬을 지목하고 "왜 춤추지 않느냐"며 계속해서 호응을 유도했다.
통역사가 이 말을 번역하여 팬에게 전달했지만, 그럼에도 팬은 춤을 추지 않았다.
이유는 나중에 알고 보니 구화와 문자통역(자막)으로 의사소통하는 농난청인이라서 비와 통역사의 말 모두 알아들을 수 없었던 것.
호응을 유도하는 말을 듣고도 의도적으로 춤을 추지 않은 게 아니라,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었다.
비(정지훈)가 나중에 이 사실을 알고 "배려가 부족했고 생각이 짧았다"며 SNS를 통해 사과를 전했다고 한다.
콘서트장에 오는 관객은 모두 당연히 청인일 것이라는 전제 하에 일어난 일들이다.
'선생님도 콘서트장에 가셨어요?'
이제 필자의 민망한 과거 이야기를 꺼낼 차례다.
무지함에 무례함을 저질렀던 더블 쌍무 사건.
필자는 과거에 농난청인의 근로지원인으로 근무한 경험이 있다.
이해를 위해 편의상 '그분'이라고 지칭하겠다.
평상시와 같이 티타임을 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이야기 주제로 아이돌이 나오자 그분은 과거 학생 시절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장에 많이 갔었다고 즐겁게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듣자 곧바로 궁금증이 생겼다.
'가슴까지 울리는 빵빵한 음향으로 가수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는 점이 콘서트의 가장 큰 묘미인데, 들을 수 없다면 어떤 포인트에서 즐기시는 걸까? 단순히 시각적인 효과를 보기 위해서?'
농난청인과 직접 많은 대화를 나눠본 게 처음이라서, 그 시절에는 거의 상식이 전무한 상태였다.
잠시 고민하다가 조심스럽게 질문을 드렸다.
"선생님도 콘서트장에 가셨어요? 실례지만 그러면 콘서트장에 가시면 시각적인 부분을 즐기시는 건가요?"
다행히도 그분께서는 청인의 네모난 궁금증을 이해해 주시고는 친절히 설명해 주셨다.
"네! 그럼요. 웅장한 소리 덕분에 진동과 함께 현장감이 느껴지고, 무대 효과가 화려하니까 콘서트 가는 거 엄청 좋아해요. 실물도 직접 볼 수 있잖아요."
청각장애가 있다고 해서 아예 안 들린다고 생각하는 게 대다수의 일반적인 생각이지만, 그렇지 않다.
잔존 청력이 남아 있어 약간의 소리를 들을 수 있지만, 대신 어느 방향에서 나는 소리인지 모르기 때문에
일대일 대화할 때는 원활한 소통이 가능한 반면 다수가 동시다발적으로 말하는 모임에서는 방금 누가 말한 건지 구별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케이스도 있다.
또는 본인의 유형에 꼭 맞는 보청기를 찾아서 일상생활을 원활하게 잘 지내는 사람도 있다.
(같은 청각장애라도 사람마다 유형이 무궁무진하게 다양하기 때문에 본인에게 잘 맞는 보청기를 찾기 어렵다고 한다.)
혹은 아예 들리지 않더라도 수어통역사 혹은 문자통역사가 모바일 기기로 자막 서비스를 제공해 주는 곳에서 마음껏 즐기는 경우도 있다.
'농난청인은 콘서트에 가도 못 들으니까 즐거움에 제한이 있는 거 아닌가?'
이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즐거움을 제한하는 것은 정작 청인들의 고정관념이 아닐까 싶다.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해 본 것을 바탕으로 생각하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생각의 끝이 미처 가능성이라는 흐름을 무한하게 타지 못하고 멈춰버린다.
그리고 그대로 생각하기를 멈추고 틀 안에 가둬버린다.
자신만의 생각대로 정답이라는 선을 그어주는 것이 아닌, 일단 나조차도 나름대로 방식이 있듯이
마찬가지로 사람마다 각각의 방식이 다양하다는 것을 존중해 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과거의 나도 그러했듯이 반성하며 꾸준히 배움의 자세로 네모난 틀을 깨나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