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에 저항하다.

세습 01 |

by 꼼꼼

인간의 운명

인간이 지나온 어느 시기에는 태어날 때부터 ‘운명’ 또는 ‘숙명’이라고 할 만큼 태어난 자의 인생이 정해지던 때가 있었습니다. 어부의 자식은 수영을 배우고 배를 타며 물고기를 잡는 인생으로, 농부의 자식은 평생 밭을 일구는 인생으로, 천한 지위의 사람은 천한 지위로 살아야만 했습니다. 반대로 양반과 귀족은 글을 읽고, 하인을 다루는 법을 배워야만 하는 인생이었습니다. 이런 사회적 합의를 무시하거나 저항한다면, 사회는 안정을 해친다는 이유로 다수를 움직여 소수를 제거하는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과거 인간은 사회집단의 구성원으로서 살아남기 위해 전통에 따라 조직된 사회 속에서 관습과 명령이라는 틀을 통해 안정을 누릴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1].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진 운명을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것은 필연이었고, 불평등을 받아들이는 것은 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이었으며, 당시 교회의 가르침이라는 것도 불평등을 옹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쉽게 사용되었습니다.

‘세습’은 인류 역사 속에서 생존과 안정이라는 목적 아래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었습니다. 이후, ‘개인적 이익’을 통한 경제적 변화와 사회계층 간 이동이 생겨나는 혁명을 접하면서 잠시 주춤했으나 기득권자는 하위의 계층 상승을 용인하지 않고 자신의 자본과 권한을 이어가려는 욕망은 현대사회에서도 쉽게 발견됩니다. 소위 ‘부의 대물림’에 대하여 ‘토마 피케티’는 세습자본주의(patrimonial capitalism)라고 비판하면서 경제적 성공이 능력과 노력이 아니라 ‘어느 집안’에서 태어났느냐에 의해 결정되는 현실을 꼬집었습니다.


우리가 고려해야 할 것은 교회세습문제가 일순간에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간 존재의 지속성과 안정을 바랐던 과거 역사 속에 그리고 오늘 현재에도 세습으로 인한 갈등과 불평등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이 모든 문제에 대하여 운명으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이어졌던 저항의 길을 계속해서 열어가려는 의지가 필요합니다.

오늘 우리는 이런 저항의 의지를 확인하는 순간이며 다짐의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세습사회, 금수저와 흙수저

부의 세습 현상으로 인한 불평등과 경제적 양극화 현상에 대한 문제 제기는 꾸준히 있었습니다. ‘아무리 일해도 가난에서 벗어나기 힘들다’고 하는 서민층과 ‘능력에 따른 보상보다 부의 세습에 따라 지위가 결정’되는 것에 대한 ‘격차 사회’에 대하여 자료는 차고 넘칩니다. 이런 격차사회에 대하여 일반 시민들은 그 원인을 ‘부의 세습으로 인한 계층이동의 어려움’으로 지적해 왔습니다 [2].


2021년 국감에서는 20대의 경우 부의 세습으로 생기는 자산 격차가 크다는 사실을 지적했습니다. 당시 부모의 재력에 따라 달라지는 기회의 불공정, 부의 세습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습니다 [3].

열심히 일한 결과로 부자가 되었고, 가난한 사람은 열심히 일하지 않은 결과라는 주장이 터무니없다는 것은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세습된 부가 사회에 해악을 끼치고 있다는 인식이 높습니다. 기부를 통한 사회 환원이 작동하지 않는 한국사회는 탈세와 편법을 통해 부의 세습 현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금수저와 흙수저’로 이야기되는 사회적 불평등 문제는 그 원인을 결국 ‘돈’의 문제로 나아가게 합니다. ‘돈’의 영향력이 큰 사회, 행복과 안전도 구매할 수 있는 사회가 된 지금의 현실은 인간이 ‘돈’에 종속된 존재로 강요당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돈’ 이 없는 사람은 제 몫을 다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회[4]가 된 지금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돈’을 축적하고 물려주는 일을 감행하도록 합니다.


부의 불평등과 재분배의 문제, 부의 양극화의 문제, ‘돈’의 소유와 축적된 양으로부터 시작된 사회 문제에 대하여 안타까운 마음을 숨길 수 없습니다. 그리고 더 안타까운 것은 이런 사회적 문제가 교회 안에서도 발견된다는 것입니다. 사회에 공적 기여를 통한 변화를 일으켜 하나님나라의 가치를 실현해야 하는 존재적 의미를 내팽개쳐버린 일부 교회의 모습에서 참담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불평등과 양극화 그리고 ‘돈’의 소유와 축적 나아가 이를 세습하는 것까지 누가 교회 안에서 발견될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었을까요. 능력주의와 세습주의로 혼란스러운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대조적이고 대안적인 메시지가 선포되어야 할 교회가 극렬한 욕망의 도가니였음이 드러난 이 부끄러움이 우리의 몫이 된 현실이 어렵기만 합니다. 바라며 기도하는 것은 오늘보다는 더 개혁된 교회의 내일입니다.


세습현상을 주목하다.

교회개혁실천연대(개혁연대)의 교회세습반대운동은 시간을 거슬러 2002년까지 올라갑니다. 대흥교회, CCC, 소망교회, 금란교회, 왕성교회 등 교회뿐만 아니라 기관이 이르기까지 자행되는 세습문제에 대하여 외침을 이어왔습니다. 그리고 2012년 교회세습을 반대하는 9개 단체와 함께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를 결성하고 교회세습문제가 한국교회의 갱신을 위한 시급하고 필연적 과제임을 알려왔습니다. 주요 교단 노회에서 ‘세습금지법’ 헌의 안이 의결되고 총회에서 세습금지법을 제정하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교회세습’, ‘목회지 대물림’, ‘목회세습’, ‘목회승계’ 등 다양한 단어로 소개되는 이 현상은 한국교회 안에서 보편적인 이야기로 자리 잡았습니다. 때로는 가업을 잇는 것처럼 ‘전통’으로 미화되어 소개되는 현실이 씁쓸하기만 합니다.

강연안 교수는 자신의 글에서 1970년대 이후 한국의 경제개발과 도시화가 급격하게 진행되면서 한국 개신교가 팽창할 시기, 젊은 목사 혼자의 몸으로 거의 혈혈단신 개척을 했던 교회에서 교회세습이 발생한다고 지정합니다 [5].

그는 계속해서 작은 상가 건물에서 어렵게 시작한 교회가 교인 수가 늘어나고 헌금 액수가 증가했다고 이야기하면서 이런 교회의 성장이 담임목사 개인의 기량에 따랐으며, 이로써 담임목사의 발언권과 결정권도 함께 커졌다고 이야기합니다. 결국, 개척교회 담임목사는 대기업 창업주의 위치에 서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개척된 교회의 장로와 리더들은 대부분 담임목사가 세운 사람이며, 한국교회 정서상 담임목사가 세운 장로들이 담임목사의 뜻을 거스르기란 쉽지 않은 환경을 지적하면서 담임목사가 교회세습을 감행할 때 당회는 거부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교회세습은 담임목사, 교회의 장로들, 교인들, 그리고 세습을 받는 당사자가 함께 협력하여 이루어지는 것으로 이 네 당사자 중 누구라도 교회세습에 저항할 때 교회세습은 쉽지 않다고 말합니다. 특히 교회세습을 공동의회에서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과정을 보면서 많은 교인이 ‘인지적 착각’이나 ‘혼란’이 있을 것으로 말했습니다.


교회세습은 교회의 성장을 통한 축적경제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입니다.

교회의 성장을 이끈 담임목사는 성공한 목사로 인식되어 막강한 권한을 가진다는 점, 담임목사는 공들여 키운 교회를 사유화하여 타인에게 넘겨주기보다는 아들이나 친인척을 통한 세습을 통해 영향력의 지속성을 확보하려 한다는 점, 끝으로 담임목사 개인의 의지로만 교회세습이 가능하지 않으며, 장로와 리더 그룹, 교인들 그리고 세습을 받는 당사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조건들이 충족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교회세습은 상승의 욕망과 지속적인 소유와 축적에 대한 탐심이 어우러지는 결과물입니다.

이는 ‘비움’과 ‘낮아짐’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리스도인의 선택일 수 없습니다. 교회는 비움과 낮아짐이 어우러져야 하고, 이를 일상에서 실천적으로 살아내야 합니다. 이로써 우리는 혼란스러운 사회에서 빛과 소금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1] 로버트 L 하일브로너, ‘세속의 철학자들’, 장상환 옮김, 이마고, 2008, 26쪽

[2] “양극화 심화 원인은 1) 부세습 2) 노동시장 불평등” <한겨레>, 2012,12,31 ,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67730.html>(접속일:2022,03,23)

[3] “2030 세대 빈부격차 심회… 원인은 부의 대물림 [2021 국감]”, <쿠키뉴스>, 2021,10,12, <https://www.kukinews.com/newsView/kuk202110120048>(접속일:2022,03,23)

[4] “한국사회에 장밋빛 미래가 있을까? ‘청년세대를 살리는 것이 사회에 도움이 된다”, <DAILY POP>, 2021.07.19, <http://www.dailypop.kr/news/articleView.html?idxno=52633>, (접속일:2022,03,23)

[5] 강영안, 한국교회와 목회 세습,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 2013,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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