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기억; 오늘과 내일 사이에서’

2024년 2월 성서한국에 싣다

by 꼼꼼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십 년’이란 ‘십간(十干)을 의미한다고 하네요.

‘십간’이란 ‘하나의 굽이를 넘어선 수’ 또는 ‘하나의 매듭이 끝나는 수’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의 단계를 거치다.’ ‘한 굽이를 넘어섰다’라고 하여 일상의 한 단락을 끝마쳤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십 년’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습니다. ‘십년지기[1], ‘십년감수[2]’,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갔다.’ 등 하나의 사건과 단락이 끝나는 시점에 ‘십 년’이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중국에서는 ‘십년하동 십년하서(十年下東 十年下西)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황하강의 상류에서 황토가 강물에 흘러 들어오면 강바닥에 흙이 쌓이게 되고, 강줄기가 변하여 강 동쪽에 있던 마을이 십 년이 지난 후에는 강 서쪽에 있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강산이 변하고 마을의 위치를 바꾸어 버리는 ‘시간의 흐름’은 과거의 것을 매듭짓고 다음 시간을 준비하도록 강요 합니다.

변화의 시기를 마주할 때 일반적으로 ‘문제의식’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주어진 과제를 살피며 답을 찾는 과정입니다. 문제의식을 통해 우리는 바꾸어야 할 것과 지켜야 할 것에 대한 통찰을 얻게 될 것입니다.

저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더하고자 합니다.

우리의 사고체계 가운데 ‘허위의식’을 제거하는 뼈아픈 성찰의 결정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허위의식은 우리로 하여금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지 않는 것입니다. 스스로에게 괜찮다고 설명하며 현재를 바르게 인식하지 못하게 합니다. 매우 논리적이기도 한 허위의식은 자신의 결정에 흠을 발견하게 되는 결과를 마주할까 불안해하고 회피하려는 우리의 정서에 도움을 받습니다.


특히, 과거에 의미 있는 결과를 경험했다면, 과거의 긍정 결과에 머물러 있는 허위의식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 고집을 피우기도 합니다.

‘위험한 기억’에 붙들려 있다면 시간의 흐름이 요청하는 매듭과 새로움에 제대로 반응할 수 없습니다.


문제의식은 허위의식에서 벗어날 때야 비로소 떠오릅니다. 현실을 왜곡하게 만드는 위험한 기억에 파문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시간은 우리를 고사하게 할 것입니다. 위험한 기억에서 벗어나 낯설지만 현시대와 소통하며 공감할 여백을 위하여 전제를 의심하고 살펴야 합니다.


이제는 ‘십간’이 아니라 순간의 시간에도 문화와 사회가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변화에 적응하는 유연성과 함께 지켜야 할 것들을 지키는 용기가 더더욱 필요한 때입니다.


하나의 매듭과 다음을 기대하는 시점에서 누구 한 사람으로 대변되고, 한 사람의 가치관이 모든 것의 의미가 되는 것은 아니면 좋겠습니다. ‘나’의 곁에 다가온 ‘너’와 함께 ‘우리’가 되는 내일 꿈꾸며 내게도 똬리를 틀고 앉아 있을 위험한 기억을 지워냅니다.


[1] 오래전부터 친히 사귀어 잘 아는 사람 , 네이버 국어사전

[2] 수명이 십년이나 줄 정도로 위험한 고비를 겪음, 네이버 국어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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