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곰하게 정의하는 지혜(智慧)
우리는 배움을 통해 무언가를 채워 넣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어려운 용어의 정의를 외우고, 복잡한 현상의 원리를 이해하는 것. 이것은'지식(Knowledge)'의 영역이다.
하지만 삶을 이끌어가는 실질적인 힘은 지식이 밖으로 발현될 때 생긴다. 이것을 '지혜(Wisdom)'라고 부른다. 지식이 그릇에 담긴 물이라면, 지혜는 물을 퍼서 갈증을 해소하거나 대지를 적시는 '행위' 그 자체다.
나는 "조자룡 헌 창 쓰듯 한다"는 속담을 좋아한다. 삼국지의 영웅 조자룡이 담양벌 전투에서 주군 유비의 아들 아두를 품에 안고, 조조의 백만 대군 사이를 거침없이 뚫고 지나가던 그 비장한 이야기를 사랑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속담 속에 "헌 창"이라는 단어가 참 좋다.
이 속담은 사전적으로 '어떤 분야에서 막힘없이 자유자재로 능력을 발휘한다'는 의미다. 이 뜻을 아는 것은 '지식'이다. 하지만 지식 너머의 풍경을 상상해 보자.
조자룡의 창은 처음부터 헌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대장간에서 갓 나온 창은 날카롭고 매끈하게 빛나는 '새 창'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칠이 벗겨지고, 자루가 손때에 절어 '헌 창'이 될 때까지, 그는 얼마나 많은 전장을 누비고 허공을 가르며 훈련했을까.
'헌 창'은 공학적으로 설명하기 힘들만큼 미묘하게 닳아 있다. 손아귀의 모양, 힘을 주는 각도, 땀과 피가 섞여 만들어낸 마찰력까지. 그 모든 데이터가 축적되어 손에 착착 감기는 그립감(Grip)을 완성한다. 즉, 헌 창은 사용자가 쏟아부은 노력과 시간, 처절했던 경험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물리적인 지혜'다.
주군의 핏줄을 품에 안고 적진을 뚫어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 심장은 터질 듯 고동치고 사방에서 적의 칼날이 쇄도한다. 조자룡은 비장한 각오로 헌 창을 손에 쥔다. 손바닥을 통해 전해지는 그 익숙한 낡음이 그간 쌓아온 시간, 피와 땀을 느끼게 해 준다. 그 처절한 준비는 스스로를 믿을 수 있는 자신감의 근거가 된다.
남은 것은 담대하게 나를 드러내는 것뿐이다. "내가 상산의 조자룡이다!" 자신도 모르게 자신을 드러내는 포효가 입 밖으로 터져 나온다. 이후 과정은 아마 무아지경(無我之境)의 경지였을 것이다.
이 속담을 곱씹으며 나름의 지혜를 얻는다. "막힘없이 능력을 발휘하려면, 새 창(지식)이 헌 창(지혜)이 되도록 치열하게 갈고닦아야 한다."
그리고 창을 낡게 만드는 가장 확실한 재료는 책상이 아니라 '전장(경험)'에 있다. 우리는 종종 완벽한 준비가 될 때까지 행동을 미룬다. 하지만 지혜는 사전 준비보다 행동에서 나온다. 경험은 난관, 좌절, 실패라는 피부로 느껴지는 과제를 던져준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식을 끌어다 쓸 때, 배움의 속도는 비약적으로 빨라진다. 애초에 공부는 지식을 쌓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 전쟁터에서 써먹으려고 하는 것이다.
나아가 이 지혜는 '중용(中庸)'으로 완성된다.
갈고닦은 그 날카로운 창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꺼내 쓸 것인가? 아무리 뛰어난 솜씨(지혜)라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휘두르면 그것은 폭력이 되거나, 촌스러운 과시가 될 뿐이다. 술자리에서 헌 창을 휘두르면 주사가 되고, 평화로운 대화에서 헌 창을 꺼내면 독설이 된다.
중용은 지혜가 길을 잃지 않도록 돕는 나침반이다. 내가 가진 능력을 상황에 맞게 조절하는 능력, 즉 '적재적소(適材適所)'의 미학이다. 헌 창이 될 만큼 숙련된 솜씨를 가졌더라도, 나설 때와 물러설 때를 구분하고, 강하게 찌를 때와 거두어들일 때를 아는 시의적절함이 더해져야 비로소 그 능력은 빛을 발한다.
결국, 성숙한 인간이 되는 과정은
1. 뜻을 배우고 익히는 지식(새 창)에서 시작하여,
2. 치열한 경험을 통해 내 손에 딱 맞게 만드는 지혜(헌 창)를 거쳐,
3. 그 창을 상황에 맞게 운용하는 중용(눈)에 이르는 것.
이라고 할 수 있다.
조자룡같이 어떤 분야에서 무아지경의 퍼포먼스를 보이고 싶다면, 손에는 수많은 경험으로 다져진 '헌 창'을 들고, 눈으로는 상황을 꿰뚫어 보는 깊은 '중용'을 담아야 한다. 지식으로 재료를 모으고, 지혜로 칼을 갈며, 중용으로 그 칼을 쓸 자리를 정할 때, 우리의 삶은 비로소 적절한 균형을 이루며 인생이라는 전장을 누빌 것이다.
지식이라는 '새 창'을 갈고닦아, 내 손에 꼭 맞게 만든 '헌 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