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너 본적 있어?

너를 처음 봤는데, 너의 본적을 내가 만들어 줘야 하네

by 초봉

"오늘 날씨가 너무 좋다. 하루종일 밖에서 멍때리면 좋겠다."

너무도 날씨가 좋았던 그날 아침 친구에게 했던 말이다. 그 말이 씨가 되었을까, 초산에다 크기도 다른 애기들 보다 작아 ‘예정일보다 늦게 나올 것’이라던 녀석이 예정일보다 이틀이나 먼저 나왔다. 아빠의 멍때림이 싫었던 것이겠지 녀석.

가족분만실에 누워있는 와이프는 '아침을 먹지 못해 배가고프다'는 말을 반복했고, 양수가 터졌음에도 전혀 출산에 임박한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다 조금씩 진통이 오는 것 같았다. 그 진통이라는 것이 30초를 넘지 않는다는 것을 '출산교실'을 통해 배웠기에 진통이 올 때는 손을 꼭 잡아주었고, 아닐 때는 농담을 하고 있었다. 이런 저런 상황이 지나고 본격적인 진통과 분만이 이뤄지고 있었다. 그때는 이미 '남편의 역할'은 끝났음을 '출산교실'을 통해 배웠다.(감사합니다 출산교실!)

나는 머리끄댕이를 잡혔다고 하는 남편들이 어떤 행동을 했을지 대충 예상이 되었다. 평소에 잘못을 했기 때문에 머리끄댕이가 잡혔다고?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의사, 간호사, 조산사 등이 아내의 하체를 터치하는 불편한 상황에 머리쪽에서 남편도 이런저런 주문으로 '앵앵'한다면 산모는 분명히 짜증이 나리라...출산이 임박했을 때 남편은 제발 아내의 머리 위쪽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인기척은 느껴지는 그즈음에서 입을 꼭 닫고 지켜보고 있는 것이 미덕일 것이다.(머리카락을 위해서도...)

애기가 나오고 탯줄을 잘랐다. 나의 실수로 애기가 참외배꼽이 되는 것이 아니니 긴장하지 마시길...그러고 나니 애를 닦여서 나를 보여준다. '얘는 왜 이렇게 파랗고 쪼글쪼글하지? 나를 닮은 건 아닌 거 같은데...' 정도가 내 첫 느낌이었다. 출산이 끝나면 산모의 후속조치를 위해 남편은 잠시 밖에 나가 있으라고 한다.

그 후속조치를 하는 그 시간이 너무도 길었다. '혹시 아내에게 무슨 문제가 생긴건가?'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아마 출산과정에서 눈물을 보인 남편이 있다면 그것은 '태어난 애기에 대한 기쁨'보다는 '내 와이프가 무사해서 너무 감사하다'라는 생각이 더 컸으리라. 아내가 무사하다는 것을 알고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이내 아침을 먹지 못한 아내는 '자유시간' 하나를 들고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산모와 애기 모두 건강한 출산이었다.



이름을 짓고, 출생신고를 하던 날.


내 나름 의미를 담아 그날 가장 먼저 출생신고를 한 아이로 만들어주고 싶어 9시가 되기도 전에 구청에 입성, 출생신고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9시가 되자마자 번호표를 뽑아 1번 득템!!

나는 과거부터 'ㅇㅇ씨는 할아버지가 출생신고 할 때 한자(漢字)를 잘못신고해서 의미가 이상하자나'라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들어왔다. 나도 출생신고서에 애기 한자를 적을 때 수첩에 적어온 것을 보고, 네이버에 들어가서 다시 확인하고 또 확인해서 한글자, 한글자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하게 적었다.

또한, 출생신고서에는 부모의 본적(本籍)을 적게 되어있다. 본적...사실 나는 내 본적을 정확히 모르고, 내 본적을 왜 굳이 애기 출생신고서에 써야 하는지도 의문이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거주하는 주소가 우리 애기의 '본적'이 된다고 하는데, 그 본적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했다.

출생신고를 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주민번호를 주는줄 알았더니, 주민센터는 당일 주민번호가 만들어지지만 구청에서 신고를 하면 약 1주일 정도 걸린다고 한다. 에이 그냥 주민센터가서 신고할껄...

출생신고를 마치고 와이프가 있는 조리원으로 걸어가면서 '왜 본적이 들어가지?'라는 의문이 계속되었다. 결국 그 의문은 풀지 못했고, 조리원에서 녀석을 보고 '너 이제 본적 있어'라고 속으로 말해주었다. '어디다 쓸지는 모르지만...'이라는 생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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