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손해는 안 볼 녀석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는 녀석, 과연 어떻게 자랄까?

by 초봉

와이프의 입덧이 매우 심했던 그 시기(마의 16주라고도 부릅니다) 우리부부는 거제에서 한 달 간 재미난(?) 동거를 했다. 내 입사 동기이자, 나와 기숙사에서 약 5년을 같이 살았던 미혼의 A군의 집에서 A군, 나, 와이프 셋이서 동거를 하게 된 것이다.


그 기간 중 우리는 야식을 참 많이도 먹었는데, 우리나라 사람이 3명이 모이면 늘 그렇듯 우리는 고스톱을 통해 야식비를 마련하였다. 평소 내기를 꽤나 즐기는 A군은 화투, 포커류를 섭렵하고 심지어 카지노에서나 볼 수 있는 포커칩을 보유한 마니아, 나는 고스톱만 치면 나머지 사람들을 '물 반 고기 반'으로 만들고 판을 휩쓸던 고스톱계의 강자였다. 그에 반해 임신한 와이프는 모양만 맞추는 그 수준 정도. 이미 야식비를 낼 사람은 정해져 있는듯 보였다.

하지만, 고스톱을 치면 칠수록 돈은 와이프에게 모였다. 와이프는 한 3판 정도 먹지 못하며 "꼼질아(태명), 이번에는 우리가 한 판 이기자"이렇게 외치며, 늘 '쪽'과 상대방이 '싼'것을 먹는 플레이로 이기곤 했다. 아빠와 삼촌이 고스톱에서 잃은 돈으로 그녀석은 참 많이도 먹었다. 바로 그 순간이 ‘이 녀석 돈 복은 조금 있으려나?'라고 생각했던 첫 순간이었다.


녀석이 뱃속에 있을 때 와이프는 지인으로부터 '태아보험'을 들었다. 지인으로부터 든 보험은 소위 말하는 '눈탱이'를 맞을 확률이 높다. 역시나 와이프도 눈탱이를 맞은 것 같았다.

또한, 와이프는 녀석의 '교육보험을 미리 준비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비추곤 했는데, 눈탱이를 맞은 것이 계기가 되어서인지 이번에는 보험이 아닌 주식에 매월 일정금액을 투자하여 '교육보험'을 대체하겠다고 했다. '매월 일정한 날짜에 일정 금액을 구매하겠다'는 방침을 세우고, 매일 경제뉴스를 관심있게 보는 나에게 종목 추천을 요구했고, 나는 장기적으로 전망이 좋을 것 같은 주식을 추천했다.

약 6개월 정도가 흐른 며칠 전 얼핏 물어본 결과 그녀석의 '교육보험을 위한 주식'은 투자금 대비 40%에 가까운 수익률을 달성하고 있었다. 금액이 크지는 않지만 '녀석은 정말 돈 복이 있나?'라는 생각이 계속 되었다.
(그렇게 종목 추천을 받은 와이프는 40%에 가까운 수익률을 올렸는데, 추천을 해준 내 수익률은......ㅠㅠ 나는 단기만 보는 개미였다 ㅋㅋ)

녀석이 태어난지 3일째 되던 날 우리는 산부인과를 떠나 조리원으로 이동을 했다. 모든 산모들이 예정일은 있으나 정확한 출산일은 알 수 없기에 조리원 내에서의 방배정은 복불복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우리가 조리원에 들어가던 날 다행이 방이 1개 호실이 남아 있었고, 우리는 그 방으로 입성을 했다.

깔끔하게 준비되어 있었지만 생각보다 조그마한 방에, 창문이 없는 구조의 방을 배정받았다. 와이프는 자신이 샘플룸으로 봤던 곳 보다는 훨씬 좋은 것 같고, 나중에 조리원을 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방을 옮길 수 있다며 애써 웃음을 지었다. 와이프가 점심을 먹으러 간 사이 침대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과연 와이프가 여기서 3주를 버틸 수 있을까? 이정도면 내가 있어도 우울증이 걸리겠는데...똑...똑...똑...응?'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천장 스프링쿨러에서 침대로 물이 한방울씩 똑똑 떨어지고 있었다. 일단 급한대로 쓰레기통을 받쳐놓고 관계자를 불렀다. 그렇게 한 30분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원장님이 오셨다. "이게 마지막방이었는데 미안해요. 우리가 샘플룸을 새로 리모델링 했는데 거기로 옮겨드릴께"

새로이 배정받은 방은 원래의 방보다 컸고, 창문도 있어 답답함도 덜했다. 리모델링을 했는지 청결하기도 했고, 식당도 바로 앞이라 몸이 불편한 와이프가 많이 걸을 일도 없었다. 참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난 녀석이 조리사님의 품에 안겨서 새로이 배정받은 방에 들어오면서 '내 방은 내가 정한다'라고 말하며 씨익 웃는 것을 분명 보았다.
(나는 평소 안마를 즐기지 않는데 처음 배정 받았던 방에 안마의자가 있었다. 한 번 해봤는데 너무 시원했다. 하지만 새로 옮긴 창문이 있는 방은 안마의자가 없어 조금 아쉬운 마음은 들었다. 녀석은 자신을 봐주지 않고 안마의자에 앉아있는 아빠가 보기 싫었을까?ㅎ)

와이프와 나는 사주를 꽤나 많이 믿는 편이라 녀석의 사주에도 관심이 많다. 녀석은 원래의 진통대로라면 미시(오후1~3시)에 태어났어야 했으나 마지막에 진통을 한 번 건너 뛰면서 신시(오후3~5시)에 태어났다. 조금 과장하면 '자신의 운명을 자신이 만든 것'이다.

나는 그 녀석이 바깥세상을 처음 봤을 때 3가지를 약속했는데, 그 중 하나가 '공부를 강요하지 않겠다. 하고싶은 것을 하라'는 것이었다. 이대로라면 이 녀석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손해도 안 볼 수 있지 않을까?' 새내기 아빠의 자그마한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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