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가장'이라는 이름의 무게

by 초봉

어제 밤은 녀석이 이앓이를 하는 것인지 많이 아파, 밤새 뒤척이기를 반복하다 새벽이 되어서야 겨우 잠들었다. 새벽에 일어난 나는 녀석에게 지금까지 써온 블로그를 보다 내가 많이 변해감을 느꼈다. 그것을 책임감, 부성애,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 등이 맞는지 알수는 없지만, 그런 이야기를 담았기에 이번 글은 조금은 무거울 것 같다. 또,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지'라고 했을 때 이 '어떻게'는 대체적으로 경제적인 부분을 이야기 하기에, 오늘은 경제적인 부분을 한 번 생각해보려 한다.

어릴적 남들에 비해 특별히 공감능력이 뛰어난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교통사고로 부모가 사망한 자녀들의 이야기나 뱃속에 아기를 남겨두고 순직한 소방관의 기사를 볼 때 '아, 안됐다' 정도였지 그보다 더 심취해서 생각을 해본적은 없었던 것 같다.

결혼을 꼭 해야한다는 것도 아니었다. 대기업에 다니고 있었고, 내가 벌어서 나 혼자 쓰면 노후에 쓸 연금도 넣고 현재의 삶에도 어느정도 즐길 수 있는 여유는 있었다. 그러다 '이 여자라면 결혼을 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해서 결혼을 했고, 얼마 후 녀석이 태어났다.

초등학교때부터 대기업에 들어가기까지 약 20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해 대기업에 입사를 했고 연봉을 획득했는데, 녀석의 등장과 함께 나는 짧게는 몇개월에서 길게는 1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해 대기업에서 받던 연봉 수준이나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했다. 와이프는 내 생각보다는 조금 적어도 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지만, 나는 아니었다. 그것은 '정말 가장이 되었구나'라는 의무감이거나, '소비의 주체가 2명에서 3명으로 늘어났다'는 단순한 내 생각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보다 더욱 나를 움츠려들게 하는 것은 '실패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나 혼자라면 당장 돈벌이가 없더라도, 사업에 망하더라도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와이프와 자식이라는 가족이 생긴 순간부터는 실패가 곧 '내 가족의 궁핍'이 되어버렸다. 그 궁핍만은 '나몰라라'하는 가장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종종 잠에서 깨 곤히 자고 있는 와이프와 녀석을 본다. 내가 꼭 지켜야 할 둘. 그러다 가끔은 내가 이 세상에 없는 것도 상상을 해보는데, 남겨진 둘에게는 너무도 비참할 것 같은 현실이라 가급적 그런 생각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최근에는 '노인이 잠이 없는게 아니라 지킬게 많아서 잠이 줄어드는 건 아닐까'라고 노트에 메모를 했었는데, 그런 의미에서 보면 나도 점점 지킬 것이 많아지는 것 같다.

결론적으로 나는 '이 가족에 꼭 있어야 하며, 꽤 많은 수익을 창출하되 실패하면 안되는 사람'으로 정의가 되는 것 같다. 현실적으로 와닿는 경제적인 면만을 봤을 때 그렇다.

와이프는 내가 50살이 조금 넘었을 때 본인이 만든 '남편'이라는 작품이 멋있기를 바라고 있고, 나는 녀석이 세종처럼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태종(이방원)이 롤 모델이라 말했다. 태종의 와이프도 태종이 멋있는 작품이라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아직은 젊다고 믿기에, 가족들이 나를 믿어주고 출근길에 웃음을 지어주기에 하루하루 좋은 기운으로 살아가고 있다. 또,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느리지만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나중에 녀석도 나처럼 한 가정의 아빠가 되었을 때, 나와 같은 무게감을 느낄까?
궁금한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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