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아내에게 씻을 시간을 주자

by 초봉

이 카테고리에는 녀석의 이야기만을 오롯이 담아내고자 했다. 녀석의 돌이 될 때까지의 기록을 적어놓았다가 나중에 녀석이 컸을 때 주고자하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녀석은 혼자서 크는 것이 아니듯 결국 이 이야기에는 녀석의 엄마인 와이프와 녀석의 아빠인 내가 나올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이번에는 녀석의 엄마인 와이프와 관계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며칠 전 와이프가 녀석을 데리고 내가 일하는 곳으로 왔다. 최근 열감기로 고생중인 녀석이 '너무 칭얼거려 도저히 버티지 못하겠다'는 생각에 녀석을 안고 나왔다고 했다. 그리고 그날 녀석의 행동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어떤 순간에는 조금 나쁜 생각이 들 정도로 녀석이 너무 미웠으며, 산후우울증이 왜 오는지도 조금은 이해가 된다고 했다. 그리고 그날 나는 남편의 육아역할은 '애를 보는 것보다는 아내를 잘 돌보는 것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 일이 있은 후 와이프는 이틀 간 교육이 있어 집을 비우게 되었다. 비교적 이동이 먼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나를 배려하여 숙박을 하지 않고 매일 새벽에 나가고 밤에 돌아오는 강행군을 하였다. 그렇지만 나는 녀석과 약 15시간 이상을 둘이서 보내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녀석의 열감기는 다 나아 있었다.

녀석과 노는 아침시간은 즐거웠다. 간만에 녀석과 오랜 시간을 보냈더니, 새로운 모습도 많이 보고 와이프를 흉내내 이유식도 먹여 보았다. 녀석이 대변을 봐 엉덩이를 닦아주고 헹궈주기도 했으며, 잠을 잘 때는 꼬옥 안아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지쳐버렸다. 녀석은 자지만 나는 자지 못하고, 이제 물건을 잡고 녀석이 일어서는 통에 녀석의 뒤를 졸졸 쫓아다녀야 했다. 그때 유모차를 타면 녀석이 온순해지는 것을 생각하고, 유모차를 태워 산책을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아내는 이미 새벽에 나갔고, 내가 없이는 1분 1초도 가만히 있지 않는 녀석을 두고 씻을 수가 없었다. 까치머리를 하고 밖을 나갈 용기도 없었다. 그렇게 '왜 씻지 않아서 밖을 못나가니'라는 스스로의 원망을 하며 아내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녀석을 보는 것이 아니라 아내가 올때까지 버텼다.

아내는 매일 이런 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매일 아침 후다닥 준비해서 출근하는 나를 보며 "나 좀 씻고, 여보 출근하면 안돼?" 이 말을 얼마나 하고 싶었을까. 사실 녀석과 둘이 보낸 시간이 없었다면 아내를 이해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또한, 내가 아내에게 녀석의 칭얼거림을 피할 수 있는 여건을 하나도 만들어주지 못했다는 것이 조금은 미안했다.

비단 씻는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이 힘들고 불편함이 많을 내 아내를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앞으로는 이런 사소한 불편함이 있으면 아내에게 꼭 이야기해줄 것을 당부했다. 매일 아침 출근하기 전 아내의 씻을 시간을 꼭 주겠다는 약속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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