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기간중 아내와 가장 달랐던 점이 하나 있다면, 아내는 독서를 좋아하는 반면 나는 1년에 책을 한권 읽을까 말까 할 정도로 독서에는 관심이 없었다는 점이다. 책을 읽는 행위자체가 나에게는 지루하게 느껴졌고,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 것보다는 1권을 읽었다는 만족감과 대견함에 몇 날 며칠 술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독서의 필요성은 알고있지만 책을 읽지 않는 나였기에, 매일 아침 출근해서 30분은 책을 읽는 것을 습관으로 만들어버렸다. 처음에는 졸리고 지루하기도 했지만 날이 지날수록 독서도 '꽤나 괜찮은 행위'라는 생각을 했고, 작년에 이사올 집을 구할 때는 주변에 도서관이 있는지 여부가 우리 부부에게는 절대 중요한 요건이 될 정도로 독서를 좋아하게 되었다. 요즘도 우리부부는 독서를 많이 하는데, 나는 주로 아내와 녀석이 자고 있는 새벽에, 아내는 나와 녀석이 자는 밤중이나 녀석이 낮잠을 자는 틈을 활용하여 독서를 하고 있다.
갓 뒤집을 무렵부터 아내는 녀석에게 그림책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글자가 별로 없는 그림책이지만 아내는 그림을 보며 즉흥적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녀석에게 들려주고 있었다. 그렇게 매번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아내도 신기했지만, 아내가 읽어주는 장면장면을 똘망똘망하게 보는 녀석도 신기했다. '쪼끄만 녀석이 알긴 뭘 알겠어'하는 아빠의 생각이었다.
시간이 좀 지나 녀석은 기는 행위로 활동력을 갖추었고, 오만 집을 헤집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녀석은 책을 잡고 입으로 줄줄 빨기 시작했다. 아직은 자신이 원하는대로 손을 쓸 수 없었기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빠는 행위만을 반복했던 것 같다. 어떤 책은 코팅이 벗겨져 종이가 나와있었고, 종이로 된 책은 일부가 없어지기도 했는데 아마 녀석의 배로 들어갔지 않나 싶다.
녀석이 이제 스스로 앉고, 밀가루 반죽같은 손(대부분 고사리같은 손이라 부르지만 퉁퉁하고 하얀 것이 딱 밀가루 반죽같아 붙여준 별명이다)이 자유자재로 움직이면서 녀석은 본격적으로 책을 보기 시작했다. 그 본다는 것이 허투루보는 것이 아니라 대기업 임원이 중요한 보고서를 보듯 한장을 넘기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훝어보고 다음 한장을 넘기는 식이었다. 그러다 2장이 넘어가면 다시 어떻게든 1장을 되돌려 다 본 뒤에야 또 1장을 넘기고 있었다. 녀석의 첫 상처도 그렇게 책을 보다 종이에 오른쪽 손가락이 베인 것이었다.
어떤 날에는 녀석이 엄마와 아빠보다 먼저 일어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때면 녀석은 조용히 머리맡으로 가서 그림책을 보고 있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녀석이 그렇게 책을 읽고 있는 것이 어찌나 신기한지, 아내와 나는 흐뭇하면서도 한편으로 녀석은 무슨생각을 하며 책을 보고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나는 녀석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너무 책만 보는 것도 나에게는 그다지 반갑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독서라는 것은 부정적인 부분보다는 긍정적인 면이 많다고 생각하기에 녀석의 첫 취미(?)에 대해서는 만족하는 입장이다. 세살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했는데, 9개월 조금 지난 녀석의 취미가 평생갈 것인지 보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