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 심사 통과 그날 저녁, 첫 주문이 들어왔다

예상보다 빨랐던 첫 매출의 순간

by 꼼마

심사 통과 알림이 뜬 건 2주가 지난 목요일 오후였다. 점심 먹고 나서 졸리던 시간대.

슬랙에 캡처가 하나 올라왔다. "판매 중" 배지가 찍힌 QMS 화면. 반응은 의외로 담담했다.

"오 드디어!"

"이제 시작이네 ㄱㄱ"


그리고 다시 각자 업무로 돌아갔다. 아직 한 푼도 안 벌었으니까. 심사 통과가 뭐 대단한 건 아니었다. 서류 내고 기다린 게 전부고, 승인은 그냥 출발선에 선 거였다.


축하할 건 아직 없었다.

그날 저녁이 문제였다.



퇴근하고 집에서 밥 먹는데 폰이 울렸다. Qoo10에서 온 이메일 알림. 처음 보는 형태의 이메일이었다. 일본어라 순간 광고인 줄 알았다. 절대 주문일리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QMS에 접속했다.

주문이었다.

진짜로.

image.png 첫 주문의 감격스러움


"엥???"

"이거 주문 맞아요?"

"ㅋㅋㅋㅋㅋ"

"엥 벌써??"

"반나절인데?"

"캡처 캡처"


아무도 예상 못 했다. 솔직히 일주일은 걸릴 줄 알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팔릴 거라는 확신 자체가 없었다. 그냥 올려놓으면 누가 사겠지, 하는 막연함이었는데 반나절 만에 실제 사람이 실제 돈을 내고 우리 상품을 샀다. 도쿄 어딘가에 사는 누군가가.


물건 팔아서 돈을 벌어본 건 난생처음이었다. 코드 쳐서 월급 받는 건 익숙한데, 물건을 사서, 그걸 더 비싸게 팔아서, 차액이 남는 경험. 그게 이렇게 이상한 기분인지 몰랐다. 뭐랄까, 직접적이다. 코드는 중간에 회사가 있고 평가가 있고 월말이 있는데, 이건 내가 올린 게 바로 돈이 되는 거라서.


그 거리감 없음이 묘하게 짜릿했다.

근데 짜릿함은 5분이었고, 그 뒤는 공포였다.



주문 처리를 해야 했다.

QMS를 열었다. 주문 탭을 눌렀다. 뭔가 떴다. 일본어. 버튼이 여러 개. 상태값이 뭔가 쓰여 있고. 뭘 눌러야 하는지 모르겠다.


우리가 개발자라는 게 웃긴 게, 회사에서는 복잡한 시스템을 다루면서 이커머스 관리자 화면 버튼 하나를 못 누르고 있었다.


"이거 누르면 되돌릴 수 있을까요?"

"그냥 눌러봅시다!"

"아니 실서비스인데 그냥 눌러보면 어떡해요..."

돌이킬 수 없는 버튼을 누르기 직전의 긴장감. 맞는 건지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그거.


결국 유튜브를 켰다. "큐텐 주문처리 방법"을 검색했다. 어떤 아저씨가 올린 7분짜리 영상을 보면서 따라 했다. 근데 영상이랑 우리 화면이 미묘하게 달랐다. 내 눈이 이상한 건지, 버전이 업데이트된 건지, 아무튼 메뉴 위치가 좀 다른데 대충 감으로 눌렀다.


한 번 잘못 눌렀다. 뭔가 상태가 바뀌었는데, 원래 이래야 하는 건지 잘못된 건지 판단이 안 됐다. 회사 일할 때는 뭐가 잘못됐는지 기록이라도 남는데, 여기는 그런 게 없다. 그냥 화면에 일본어 상태값이 바뀌어 있을 뿐이었다.


단톡방에 "방금 뭔가 잘못 누른 것 같은데요?"라고 올렸더니 "장사 첫날부터 사고 터지는 건가..."라는 답이 왔다.

다행히 큰 문제는 아니었다. 아마도. 확신은 없었지만 그냥 넘어갔다.



상품을 사야 했다.

주문 접수는 어찌저찌 끝났다. 이제 진짜 문제가 시작됐다.

우리가 원래 주문이 들어오면 사려고 했었던 링크를 열었다. 올리브영 온라인. 해당 제품을 찾았다. 가격을 봤다.


어라?

할인 이벤트가 끝나 있었다. 우리가 큐텐에 올릴 때 계산했던 그 가격이 없어진 거다. 원가가 뛰었다. 급하게 계산기를 두드렸다. 이 가격으로 사면 적자다. 완전한 적자. 팔면 팔수록 우리 돈이 나가는 구조.


"헐 초긴급!"

"?????"

"할인 끝났어요!"

"엥?"

"이거 사면 적자예요"


첫 주문이 들어왔는데 상품이 없다. 아니 정확히는 상품은 있는데 사면 오히려 돈을 잃는다. 이런 상황을 뭐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다. 성공적인 실패? 실패한 성공?


네이버 쇼핑을 뒤지기 시작했다. 같은 제품을 파는 다른 판매자가 있는지. 쿠팡도 찾아봤다. 11번가도. G마켓도. 검색어를 바꿔가며 찾았다. 브랜드명, 제품명, 용량, 색상까지.

있었다. 쿠팡에서.


할인은 아니었지만 마진이 남는 가격이었다. 많지는 않지만 적어도 적자는 아닌 그 미묘한 선. 계산기로 세 번 확인했다. 배송비, 쿠팡 수수료, Qoo10 수수료, 환율 변동폭까지 다 고려해서. 겨우 남았다.

주문했다. 익일배송으로.


그때 깨달았다. 우리는 준비가 전혀 안 돼 있었다. 할인 이벤트가 끝나면 어떻게 할 건지, 대체 소싱처는 어딘지, 마진율은 어떻게 유지할 건지.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냥 "올리면 팔리겠지"였는데, 진짜로 팔리니까 당황한 거다.


근데 이상하게 재밌었다. 문제가 터지는 그 순간의 긴장감. 해결책을 찾는 과정. 회사에서 버그 터져서 새벽에 고치는 것과 비슷한 아드레날린이었는데, 이건 돈이 걸린 문제라서 더 절실했다.



포장은 또 어떻게...

다음날 오후, 쿠팡에서 화장품이 도착했다. 회사 주소로 배달시켜 놨다. 이제 포장을 해야 했다.

우리는 포장재가 없었다. 당연하다. 팔릴 줄 몰랐으니까. 셀러 등록할 때 뽁뽁이를 미리 사놓을 정도의 자신감은 없었다. 그냥 "되면 좋고" 마인드였는데 진짜로 되어버린 거다.

점심시간에 근처 마트에서 뽁뽁이를 샀다.


뽁뽁이를 샀으니 마지막으로 상품을 보내기 위한 박스가 필요했다. 근데 박스는 1개씩 안 팔았다. 최소 10개부터 판매. 우리는 박스 1개만 필요한데 10개를 사야 하나? 그것도 아깝고, 보관할 곳도 없고.

그때 생각난 게 쿠팡 포장이었다. 가끔 쿠팡에서 물건 시키면 박스가 아니라 비닐에 담아서 오는 경우가 있잖아. 그거다. 우리도 그렇게 하자. 박스 대신 비닐.

회사 근처 문구점에서 비닐을 샀다. 여러 사이즈 묶음으로.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다 들어있는 그런 세트. 이거면 어떤 크기 상품이 들어와도 다 커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마치 포장 전문가가 된 기분이었다.


사무실 한쪽 구석에서 포장을 시작했다. 화장품을 뽁뽁이로 감싸고, 비닐봉지에 넣고. 근데 비닐봉지가 생각보다 얇았다. 국제배송을 버텨낼 수 있을까? 의심이 들었지만 일단 해보기로 했다.


지나가던 다른 회사 대표가 이 광경을 봤다.


"지금 뭐 하고 계신 거예요?"

"아, 일본에 보내는 거 포장이요."

"엥? 뭐 보내시는데요?"

"화장품"

"???????????"


설명하기가 애매했다. 개발자 셋이서 큐텐 재팬에 한국 화장품 올려서 파는 중이라는 말을 하기가 좀 그랬다. 창업센터에 입주한 모든 사람들이 다들 우리를 AI 개발자이고, 뭔가 Something Great 한 것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누가 사무실 구석에 쭈그려 앉아 화장품을 뽁뽁이 여러 개로 감싸고, 또 어설프게 비닐에 그걸 넣고 있는 사람을 AI 개발자로 생각하겠나.


포장 결과물은 처참했다. 택배 박스도 없이 뽁뽁이로 둘둘 말고 비닐봉지에 넣은, 어디서 보면 중고거래 택배 같은 모양새였다. 이걸 국제배송으로 보낸다고 생각하니 좀 부끄러웠는데, 일단 보내는 게 먼저였다.


첫 해외 배송 포장이 뽁뽁이랑 비닐봉지라니. 이게 맞나 싶었지만 뭐 어쩌겠어. 방법이 없었다.

그래도 첫 고객이니만큼 정성 들여 손글씨로 편지도 썼다. 읽지도 못하는 일본어 편지도 함께.

image.png 일본어는 그냥 번역기에 그려져 있는 그림을 그대로 그렸습니다.



마지막 관문, 물류창고

KSE 물류창고. 우리가 선택한 배송대행지였다. 여기로 가져다주면 일본까지 알아서 보내준다.

근데 이게, 멀었다. 정말 정말 멀었다.

환승 시간이나 이것저것을 고려하면 사무실에서 편도로 1시간 30분은 가야 했다.

image.png 말이 1시간 10분이지. 실제로는 1시간 반이 넘게 걸린다.


소중한 상품을 챙기고 먼 길을 나섰다.

와 근데 처음 가자마자 다시는 오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빡셌다.


생각보다 더 돌아가야 했다. 지도에서 볼 때는 그냥 "좀 머네?" 수준이었는데, 실제로 가보면 그 "좀" 안에 환승, 애매한 도보, 물류창고 근처 특유의 황량함, 그리고 묘하게 안 맞는 동선들이 다 들어 있었다. 한 번에 쭉 가는 길이 아니라, 계속 꺾고, 건너고, 또 걷고. 물건 하나 들고 가는 길치 체험판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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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E 가는길. 고가 도로를 넘고, 또 한참이나 걸어야 물류센터에 도착한다.


편도로 1시간 30분. 왕복 3시간.

이걸 주문 들어올 때마다 직접 왔다 갔다 한다고 생각하니 바로 답이 나왔다.


아, 이건 안 된다. 절대 지속 가능한 구조가 아니다.


첫 주문이라니까 이벤트처럼 움직인 거지, 이걸 계속 사람이 몸으로 때우기 시작하면 장사는 커지기도 전에 내가 먼저 지치겠다. 그때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했다. 얼른 이걸 직접 들고 다니는 방식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위탁할 수 있는 구조를 찾아야겠다고. 적어도 우리가 해야 할 일과 안 해도 될 일을 분리해야 했다.

그 생각을 하며 겨우 도착했다.


KSE 물류창고는 예상과 다르게 꽤 깔끔했다. 뭔가 정신없고 어수선한 창고를 상상했는데, 훨씬 정돈돼 있었고 직원분들도 엄청 친절했다. 처음이라 어버버 하면서 들어갔는데도 차분하게 응대해 줬다.


"여기 두시면 됩니다"

말 한마디가 그렇게 안심될 수가 없었다.


근데 동시에 좀 민망했다.

다들 나를 신기하게 쳐다봤다. 정확히는, 걸어서 여기까지 들어와서 손에 든 물건 하나를 건네고 가는 사람이 신기했던 것 같다. 대부분은 차를 타고 와서 큰 박스들을 휙 내려놓고 금방 가버리는데, 나는 혼자 그 먼 거리를 터벅터벅 걸어와서 뽁뽁이 잔뜩 감긴 화장품 하나를 소중하게 내밀고 있으니까. 약간 소포 들고 온 심부름꾼 같기도 하고, 뭔가 대단한 사업을 하는 사람처럼 보이진 않았을 것이다.


창고 안에는 이미 수많은 박스들이 쌓여 있었다. 진짜로 "물류"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풍경. 우리처럼 한 개 보내는 수준이 아니라, 누가 봐도 계속 굴러가는 사업들의 흔적이었다. 그걸 보는데 묘한 기분이 들었다. 압도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우리도 언젠가 저렇게 될 수 있을까.


매일매일 상품이 들어오고, 박스가 쌓이고, 출고가 밀려서 정신없어지는 날이 올까. 지금은 고작 상품 하나를 들고 와서 직원분께 조심스럽게 건네는 수준인데, 언젠가는 우리 것도 저기 한편을 차지하게 될까. 그런 상상을 아주 잠깐 했다.


그리고 그 상상을 들키기 전에 얼른 상품 하나를 건네고 돌아섰다.

이제 이 상품은 KSE에서 알아서 잘 보내주겠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였다. 그 이후는 물류의 영역이고, 국제배송의 영역이고, 어딘가 도쿄에 사는 누군가의 문 앞까지 가는 긴 여정의 영역이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이상하게 마음이 조금 가벼웠다. 아직 정산도 안 됐고, 배송 사고가 날 수도 있고, 리뷰가 망할 수도 있고, 사실 불안한 요소는 여전히 많았는데도 어쨌든 첫 주문이 진짜 "발송 단계"까지 갔다는 게 컸다. 판매 중 배지를 처음 봤을 때보다, 주문 메일을 처음 받았을 때보다, 오히려 이 순간이 더 실감 났다.


아, 우리가 진짜 뭔가를 팔았구나.


인터넷 어딘가의 상품 페이지에 올려둔 데이터가 아니라, 실제 물건 하나가 누군가에게 가고 있구나.

그제야 좀 믿겼다. 이게 장난이 아니라는 게.


물론 그 믿음과 동시에 또 하나 확실해진 것도 있었다.

이 방식으론 오래 못 간다.


주문 하나 처리하는 데 사람 둘셋이 붙고, 가격 다시 계산하고, 쿠팡에서 급하게 소싱하고, 점심시간에 뽁뽁이 사 오고, 퇴근 전에 포장하고, 물류창고까지 왕복 세 시간을 써야 하는 구조. 이건 첫 주문이라 재밌는 거지, 열 번째부터는 노동이고, 스무 번째부터는 재난이다.


그러니까 다음에 해야 할 일은 분명했다.

더 많이 파는 게 아니라, 덜 허술해지는 것.

팔리기 시작한 뒤에야 비로소, 뭘 준비해야 하는지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