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주문의 달콤함과 현실의 쓴맛이 동시에 다가오다.
첫 주문이 들어온 날 밤, 우리는 맥주를 마셨다.
정확히는 편의점 카스였고, 정확히는 각자 집에서 슬랙에 캔 사진을 올린 거였지만, 기분만은 을지로 루프탑이었다.
"와 진짜 이러다 우리 부자 되는 거 아니야?"
누군가 말했고, 아무도 부정하지 않았다.
그날 밤 슬랙에서 벌어진 일을 솔직하게 고백하면, 연매출 역산을 했다. 하루 한 건이면 월 30건, 객단가 3천 원이면 월 9만 원, 상품 수를 500개로 늘리면...
계산기 앱 스크린샷이 돌아다녔다. 개발자가 치킨집 하나 차려놓고 프랜차이즈 100호점 매출을 역산하는 그 패턴. 우리가 그걸 비웃어왔으면서 정확히 같은 짓을 하고 있었다.
매출이 수직 상승하는 그래프. 우리는 지금 딱 그 시작점에 있다고 믿었다.
QSM 셀러센터에 로그인했다. 매출 0엔. 주문 0건.
뭐, 이틀이니까. 원래 그런 거지. 첫 주문도 며칠 걸렸잖아.
사흘째. 0엔....
이쯤 되니까 이상한 습관이 생겼다. 아침에 눈 뜨면 QSM부터 여는 거다. 화장실 가기 전에. 이를 닦기도 전에.
0엔.
폰을 내려놓는다. 이를 닦는다. 다시 연다.
0엔.
혹시 화면이 안 바뀐 건가 싶어서 새로고침을 해본다.
0엔.
새로고침한다고 매출이 달라질 리가 없다는 걸 머리로는 아는데 손이 먼저 움직였다.
가게를 열면 최소한 지나가는 사람이라도 있다. 기웃거리다 나간 사람이라도 있다. 그런데 여기는 아무것도 없었다. 지나가는 사람조차 없는 골목. 간판을 올렸는데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가게. 우리 상품 페이지에 일본 사람이 거의 들어오지도 않았을뿐더러 '결제' 버튼을 누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처음엔 시도 때도 없이 누군가 물었다. "오늘 주문 들어왔나요?" 대답은 항상 같았지만 물어보는 것 자체가 일종의 의식이었다. 우리는 아직 포기 안 했다는 확인 같은 거.
시간이 조금씩 지날수록 질문이 줄었다. "지금은...?" 말줄임표가 붙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아무도 안 물어봤다. 침묵. 안 물어보는 게 배려라는 걸 다들 알고 있었다. 회사에서 면접 결과 기다리는 동료한테 "어떻게 됐어?"라고 물어보지 않는 것과 같은 종류의 침묵이었다.
답답한 건, 왜 안 되는지를 모른다는 거였다.
막연하게 "안 팔린다"는 알겠는데, 그다음이 없었다. 회사 일할 때는 문제가 생기면 원인을 추적할 수 있다. 기록을 뒤지고, 하나씩 확인하고, 범위를 좁혀나간다. 근데 "안 팔린다"는 문제의 원인을 찾을 도구가 우리한테 없었다.
가설은 넘쳤다. 가격이 비싸서? 검색에 안 잡혀서? 썸네일이 구려서? 상품명 일본어가 이상해서? 배송이 느려 보여서? 리뷰가 없어서? 신뢰도가 낮아서? 다 맞는 것 같고 다 아닌 것 같았다. 검증할 방법이 없으니까 전부 그냥 추측이었다.
올리브영 베스트셀러를 큐텐에 옮겨놓고 팔리길 기도하고 있었다. 진짜로. 전략이 기도였다.
유튜브를 보고 있었다. 일본 역직구 관련 영상을 닥치는 대로 보고 있었다. 어떤 셀러가 말했다. 별로 유명하지도 않은 채널이었고 영상 화질도 별로였는데 한마디가 귀에 꽂혔다.
데이터를 보고 골라야 해요. 뭐가 팔리는지, 검색량이 어떤지, 경쟁자가 몇 명인지. 그거 안 보고 올리면 로또예요.
멈칫했다.
데이터. 그 단어가 머릿속에서 빙빙 돌았다.
우리한테는 데이터가 없었다. 큐텐에서 뭐가 검색되는지 몰랐다. 어떤 상품이 실제로 팔리는지 몰랐다. 경쟁자가 같은 상품을 얼마에 파는지 몰랐다. 우리 상품이 검색 결과 몇 페이지에 뜨는지, 아니 뜨기나 하는지도 몰랐다.
아무것도. 진짜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우리가 한 건 올리브영에서 잘 팔리는 걸 골라서 큐텐에 올린 거였다. 한국에서 잘 팔리니까 일본에서도 잘 팔리겠지,라는 가정. 그 가정을 뒷받침하는 데이터는 제로. 개발자가 감으로 코딩하면 욕먹으면서 사업은 감으로 하고 있었다.
그 생각이 들었을 때 뭔가 묘한 느낌이 왔다. 좀 익숙한 느낌. 이 답답함을 예전에도 느낀 적이 있다. 눈 감고 운전하다가 사고 나는 느낌. 블랙박스 없이 "뭔가 부딪힌 것 같은데요" 한마디로 원인을 밝혀야 하는 느낌. 전에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그때 우리가 뭘 했더라?
측정했다. 기록을 남겼다. 숫자를 모았다. 한눈에 볼 수 있게 정리했다. 데이터가 없으면, 데이터를 만들었다.
우리 개발자잖아.
큐텐이 데이터를 안 주면 가져오면 된다. 검색 결과를 긁으면 뭐가 노출되는지 보인다. 상품 페이지를 긁으면 가격이랑 리뷰 수가 보인다. 랭킹 페이지를 긁으면 뭐가 팔리는지 보인다. 매일 긁으면 추이가 보인다. 추이가 보이면 패턴이 보인다. 패턴이 보이면 기회가 보인다.
프로그램을 짜서 큐텐 사이트의 정보를 자동으로 수집하는 거다. 대상이 바뀌었을 뿐 본질은 같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만드는 일. 우리가 10년째 하고 있는 그 일.
가슴이 뛰었다. 0엔만 보면서 죽어있던 뭔가가 꿈틀거렸다. 이건 아는 영역이다. 이건 할 수 있다.
조용하던 우리의 슬랙이 갑자기 살아났다.
터미널 창을 열었다. 검은 화면에 커서가 깜빡이고 있었다. 이 화면 앞에 앉으면 늘 그렇듯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근거 없는 자신감. 개발자의 고질병. 하지만 이번엔 그게 필요했다.
커서가 깜빡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