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를 알고 나니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큐텐을 해킹하자."
큐텐 셀러 관리 시스템, QSM이라고 부르는 그 백오피스에서 우리한테 주는 정보는 너무 제한적이었다. 우리가 얼마나 팔았는지, 어디에서 유입되어서 어떻게 구매가 되었는지. 끝.
경쟁자가 같은 상품을 얼마에 파는지, 어떤 상품이 지금 카테고리에서 잘 나가는지, 우리 상품이 검색 결과 몇 번째에 뜨는지. 그런 건 하나도 안 알려준다. 마치 눈 가리고 복싱하는 느낌이랄까. 맞고 있는 건 알겠는데 누가 때리는지를 모르는 거다.
그래서 큐텐 시스템을 전부 뜯어보기로 했다.
첫 번째로는 우리가 확보할 수 있는 데이터를 최대한 많이 수집했다.
큐텐 자체에서 공식적으로 제공해 주는 데이터는 거의 없기 때문에 우리는 노가다로 하나하나 데이터를 클릭하고 확인해 가며 확보할 수 있는 데이터를 리스트업 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아는 유명한 데이터 분석 사이트들도 이렇게 시작했다는 사실이 안도감을 주었다.
꽤 오랜 시간 노가다를 하다 보니 상품 목록, 랭킹, 가격 정보, 판매량 추정치, 리뷰 수, 셀러 정보 등등, 우리가 궁금했던 거의 모든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었다.
일주일째 못 찾던 리모콘을 소파 쿠션 밑에서 찾은 순간 같았다.
우리는 그날 밤 바로 코드를 치기 시작했다.
이게 재밌었다.
코드를 치는 건 물건을 파는 것과 달랐다. 손이 기억하는 일이었다. 타이핑하면서 머릿속에서 구조가 잡히고, 문제가 생기면 원인을 찾고, 고치고, 다시 돌리고. 이 과정이 반복될 때의 그 감각. 오랜만이었다.
아, 우리 이거 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지.
물론 말이 쉽지 실제로는 고려해야 할 것이 무척이나 많았다.
엄청나게 많은 데이터를 계속해서 확보하기 위해서는 데이터 파이프라인을 설계하고, 사이트의 악성 유저가 되지 않기 위한 트릭들을 적용하고, 쌓인 데이터를 분석하는 등등. 수십 번의 시행착오를 짧은 시간 동안 거치며 우리만의 지도를 만들었다.
서비스라고 부르기엔 좀 민망한, 아주 기초적인 프로그램 수준이었지만, 어쨌든 24시간 돌면서 우리가 원하는 데이터를 차곡차곡 쌓아가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우리가 확보한 데이터를 분석해 보니 충격이었다.
우리가 팔고 있던 어떤 아이템은, 같은 카테고리에서 경쟁 셀러가 67명이나 있었다. 그리고 67명 전부 우리보다 200엔에서 500엔 정도 낮은 가격이었다. 우리 상품의 노출 순위는 대략 44위. 큐텐 검색 결과가 한 페이지에 20개씩 나오니까, 44위면 3페이지까지 가야 한다. 누가 3페이지까지 넘겨보겠는가. 솔직히 우리도 쿠팡에서 2페이지를 넘겨본 적이 없다.
그제야 그림이 보였다.
가격이 높으니 랭킹에서 밀린다. 랭킹에서 밀리니 노출이 안 된다. 노출이 안 되니 안 팔린다. 안 팔리니 판매 실적이 안 쌓이고, 판매 실적이 안 쌓이니 랭킹이 더 떨어진다. 완벽한 악순환. 우리는 이 루프 안에 갇혀서 "왜 안 팔리지" 하고 있었던 거다.
가게가 한산한데 이유를 모르겠어서 끙끙대다가, 'CCTV를 달아보니 손님이 간판을 못 보고 지나치고 있었네.' 그런 순간과 비슷했다. 문제의 원인을 몰랐던 게 아니라, 볼 수 있는 수단이 없었던 거다. 수단이 생기니 원인이 바로 보였다.
그리고 이런 우리의 노력을 안다는 듯 주문도 한건, 한건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다음부터는 빨랐다.
수집 데이터를 이리저리 조합하며 우리만의 가설들을 세웠다. 어제 대비 경쟁자 가격 변동, 우리 상품 순위 변동, 카테고리별 상위 상품 리스트 등등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그러고 나서 가장 먼저 한 건 가격 조정이었다. 경쟁자 평균 가격보다 무조건 1엔은 낮게 맞췄다. 마진이 줄어드는 게 불안했지만, 어차피 안 팔리면 마진이고 뭐고 없으니까.
그다음은 상품 추가. 수집 데이터를 보니 우리가 밀고 있던 상품은 이미 레드오션이었다. 셀러가 60명 넘게 붙어 있었다. 반면에 특정 앰플 카테고리는 수요는 있는데 셀러가 5명밖에 없었다. 거기로 갔다.
가격 조정을 시작하고, 또 블루오션 상품을 취급하고 나서는 조금씩 주문이 늘기 시작했다.
근데 사실 늘어봤자 3건 정도였다.
3건. 숫자만 보면 웃기지만, 며칠 동안 0건이던 날들을 생각하면 3건은 엄청난 개선이 된 거다. 방향이 맞다는 증거였다.
이때부터 뭔가 리듬이 생겼다.
아침에 대시보드를 본다. 가설을 세운다. 실행한다. 다음 날 아침에 결과를 확인한다. 맞으면 유지하고, 틀리면 다른 가설을 세운다.
가설, 실행, 검증. 가설, 실행, 검증.
어디서 많이 하던 건데, 생각해 보니 이건 우리가 회사에서 매일 하는 일이랑 같았다. 감으로 하는 장사가 아니라, 데이터를 보고 원인을 찾고, 고치고, 결과를 확인하는 거. 장사라고 부르니까 막막했는데, 문제 해결이라고 부르니까 할 만했다.
무기가 생겼다는 건 확실했다.
코딩의 가치가 타이핑 속도에 있는 게 아니듯이, 이 수집 시스템의 가치도 데이터 자체에만 있는 건 아니었다. 진짜 바뀐 건 사고방식이었다.
"왜 안 팔리지?"라는 막연한 질문이 구체적인 질문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구체적인 질문에는 구체적인 답이 있었다.
우리는 그때부터 조금씩 뭘 모르는지를 알게 됐다.
데이터가 보이기 시작하니까, 보이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도 보이기 시작했다.
대시보드에서 마진율 칼럼을 추가한 날, 숫자를 보고 잠깐 말을 잃었다. 잘 팔리는 상품들의 공통점이 있었는데, 그건 가격이 싼 게 아니라 소싱 원가가 낮다는 거였다. 우리가 올리브영에서 사서 파는 가격으로는, 경쟁자 가격을 맞추면 마진이 안 남는 수준을 떠나서 심각한 적자였다. 경쟁 셀러들은 대체 어디서 가져오길래 이 가격이 가능한 건지...
뭘 팔아야 하는지는 이제 데이터가 알려주고 있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어디서 어떻게 가져올 것인가.
그건 코드로는 풀 수 없는 종류의 문제였다. 아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