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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발자 꿀 Aug 07. 2018

환상의 시작에 대하여

개발자가 스웨덴 회사로 이직한 썰 2

4th August 2018


나는 왜 해외취업을 결심했나. 사실 막연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멋있어보이고, 외국에 나가면 좋은 환경에서 많이 배우고, 지금보다 훨씬 개발을 잘 할 수 있게 되고, 더 잘 하는 동료들을 만나고, 훌륭한 커리어를 쌓을 수 있을 것 같다는 환상.


사대주의의 시작

문화 사대주의 : 다른 사회권의 문화가 자신이 속한 문화보다 우월하다고 믿고 무비판적으로 그것을 동경하거나 숭상하며, 자신의 문화에 대해서는 업신여기고 낮게 평가하는 태도나 주의

'환상의 시작'은 대학교 시절 교환학생 경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학년 2학기를 미국의 한 대학에서 공부했는데 이 짧은 한 한 학기는 개발에 대한 생각을 비롯해서 훗날의 목표를 성립하는데 중요한 시간이 된다.

수업 내용은 우리나라에 비해 간결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미국 학교에서 데이터 구조, OS (정확히 기억 안 나는데 이런 내용이었다), java와 OOP 수업을 들었는데, 전공자라면 꽤 중요한 과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두꺼운 책을 한 학기에 독파하기 위해 강의 시간 내내 쉴새없이 강의 노트를 읽거나 줄 세우기용 어려운 시험을 보지도 않았다. 매주 과제를 제출하는 것 하나만 똑같았다.

하지만 나를 놀라게 한 것이 바로 과제를 하는 방식이었다. 과제는 교수님의 git repository에서 다운받아서 commit으로 내용을 채우고 다시 push하면 유닛테스트가 결과로 점수가 매겨지는 작은 시스템으로 돌아갔다. 심지어 한 교수님은 터미널에서 emacs로 개발하도록 가르쳤다. 현업 개발자에게야 익숙한 도구지만 2011년 즈음의 대학교 2학년이었던 나와 심지어 그 수업을 듣는 학생들조차 git이나 emacs는 생소한 것들이었으며, 수업시간에 왜 emacs를 사용해야 하는지 질문이 나오기도 했다. 에디터는 단축키를 외우면 쓸 수 있다고 치더라도 git은 정확히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따라하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돌이켜보면 모든 과제를 제출한게 신기한 정도다. 제출을 못 해서 교수님께 메일을 여러번 보내서 겨우겨우 낸 적도 많으니까.

이 경험은 많은 것을 의미했는데, 우선 교수님이 자동화의 표본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자동화는 개발자에게 클린 코드처럼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하는 철학이자 추상화를 고민하는 시작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우리나라에서 다니는 학교는 4학년이 되도록 소스 코드를 파일로 첨부하면 조교가 다운받아서 채점하는 방식이었다. 나는 조교였던 적이 없어서 여기에 어떤 숨겨진 프로세스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git으로 제출하고 채점하는 것보다 진화가 덜 된 프로세스라는 것은 모두 동의할 것이다. 그리고 git을 대학교 2학년때 배운 것도 두고두고 큰 힘이었다. 이전 직장은 내가 입사하고 2-3년 정도까지 svn을 쓰다가 중간에 git으로 바꾸었는데, git을 편안하게 사용하고 팀원들에게 git 커맨드를 설명해줄 수 있는 것은 당시 주니어인 나에게 자신감을 주었던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덧붙이자면 이 학교에 있을 때 Lisp 같은 함수형 언어도 처음 들었다. 그 교수님은 프로그래밍 언어를 연구하는 분이셨고 Lisp 신봉자였다. 강의 시간에 말씀해주셨던 폴 그레이엄의 ‘해커와 화가’ 에 나오는 함수형 언어를 배우는 것이 좋다는 부분도 계속 기억하고 있다가 나중에 책을 읽어보기도 했다. 교수님은 강의 자료도 파워포인트가 아니라 LaTex 같은 언어로 작성하셨는데 수업시간에 수정하는 것을 보여주면서 프로그래밍을 사용하면 반복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파워포인트보다 편하다고 말씀하셨다. 그렇다, 프로그래밍 언어에서 반복은 기초중의 기초이고 파워포인트에는 정말 반복이 많은데 왜 이 생각은 못 했을까? 정말로 내가 만난 사람 중에 가장 ‘개발자 같은’ 분이었다.

교환 학생으로 나는 미국의 교육이 이른 시기부터 현업과 비슷하게 이뤄진다는 것을 단편적으로 체험했고, 이런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구글이며 스타트업에서 일하는거구나, 작은 학교도 이 정도면 스탠포드는 진짜 쩔겠다, 그 학교 애들이 모이는 실리콘밸리는 장난 아니겠다 는 흐름으로 이른바 사대주의를 꽤 오래 전부터 마음에 품게 된 것이다. 이것은 사실 부끄러운 의견이지만 구글, 페이스북 같이 모든 개발자들이 한 번쯤 일해보고 싶어하는 회사들이 대부분 미국 출신이므로 아직까지 꽤 강력한 동기로 작용하고 있다.


물리적 거리

guru가 미국에서 많이 나타나는 이유는 오직 교육 때문일까. 다시 ‘해커와 화가’ 에 의하면, 천재들은 어느 나라에나 있지만 천재들을 알아봐주고 그들이 성장할 수 있으려면 커뮤니티가 필요하며, 나도 이 견해에 동의한다. 폴 그레이엄은 이탈리아를 예로 들었던 것 같은데 비슷하게는 동시대에 오스트리아 빈에서 살았던 클림트, 에곤 실레, 밀러, 그리고 프로이트가 있다. 서로의 비범함을 알아보고 가르쳐 줄 사람들이 있어야 천재도 비로소 꽃 피울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진지한 소명의식을 품고 있다면 주류의 흐름을 느끼고 싶은 누구에게나 커뮤니티는 찾아나설 충분한 가치가 있다. 에곤 실레를 비롯한 당시의 예술가들이 황금기의 빈으로 몰려들었던 것 처럼.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 같지만 나는 황금기 빈에 대해 말하면서 실리콘밸리로 모여드는 개발자들과 그 곳에서 탄생하는 스타트업과 투자, 구글같은 공룡들을 떠올린다. 그 곳에서 일하는 개발자들은 원래 미국인일 수도 있고, 어떤 경로를 통해 미국에 가게 되었는데 우연이었거나 아니면 치열한 노력의 시간이었을 수도 있다. 그 중 누가 나보다 더 나은 개발자라면 그러한 차이는 태어날 때 정해진 것이 아니라 일하는 환경이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더 쉽게 영감과 동기부여를 느낄 수 있고 끊임없이 정보가 흐르는 환경, 내 가능성을 함께 발견해줄 팀 따위의 커뮤니티가 가진 선순환이 개인을 성장시키는 것이다.

누군가 인터넷에서 정보와 네트워킹 모두 가능하지 않냐, 그냥 노력이 부족한 것 아니냐고 반박한다면 필사적으로 노력하지 않았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물리적인 거리를 좁히는 것이 가장 빨리 녹아드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고 일하면서 하루에 더 쓸 수 있는 시간은 제한적이었다. 나는 개발을 좋아하긴 하지만 실력은 고만고만하다는 것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퇴근해서 몇 시간 아등바등 하는 것으로 갑자기 아마존에서 면접보자는 메일이 오거나 깃헙 스타를 백개 넘게 받는 일은 쉽사리 일어날 것 같지 않았다. 개발자로서의 평범함을 인정하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경험이었지만 그 후에는 방향을 분명히 잡는데 도움이 되었다. 난 실행력이 좋은 편이고 스스로 동기부여를 잘 한다. 그래서 어차피 노력이란 것을 한다면 미국으로 가는 길을 트는 것에 시간을 쓰는 것이 제일 효율적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이렇게 다년간 쌓아온 사대주의는 이후 면접이나 유학 준비 등 다양한 방법으로 표출했는데 사실 잘 되는 것은 없었다. 그리고 결국 미국이 아니라 스웨덴으로 오게되는 차선책으로 결론이 나버렸는데 부디 좋은 결정이었기를 바라고 있다. 사대주의 분출에 대해서도 차차 이야기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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