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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발자 꿀 Aug 10. 2018

생애 첫 인터뷰에 대하여

개발자가 스웨덴 회사로 이직한 썰 3

6th August 2018


https://brunch.co.kr/@ggool/2/ 에 이어진다. 교환학생을 갔다온 이후 취업하고 난 다음의 이야기다.


구글 면접을 보다

내 인생에도 구글 한국 오피스에 지원했던 서류가 붙어서 면접을 본 신기한 일이 있다. 3년차 봄 즈음 서류를 넣고 몇 달 동안 잊고 있던 때에 메일을 받았다. 취업 한 이후로 어떤 이유로든지 면접을 본 것은 이 때가 처음이었는데, 구글에서 처음 낸 이력서로 면접을 보다니! 설레기 충분했다. 미리 말하지만 나는 대학생 때 ACM ICPC 같은 알고리즘 대회에서 상을 탄다거나 해커랭크의 문제를 푸는 일을 해본 역사가 없다. 대학생 때 만든 작은 인연이 유일하게 믿을 구석이랄까. 다만 일찌감치 외국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고 우리나라에서 구글을 빼면 지원할 외국계 회사가 많지 않기 때문에, 상상 가능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지원했던 것이다.

리크루터와의 화상 대화, 두 번의 전화 인터뷰를 통과하고 온사이트 인터뷰까지 가기는 했지만 1차 인터뷰에서 떨어지고 싱겁게 끝났다. 구글은 온사이트 인터뷰를 여러번 진행한다. 경험으로 비추어볼 때 각 인터뷰마다 이 사람을 또 인터뷰 할지 말지를 매번 결정하고 처음에는 알고리즘, 다음에는 시스템 인터뷰 등등으로 내용을 조절하는 것 같다. 나는 추천을 받은 것도 아니고 다니는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인터뷰 당일 담당자로부터 해당 내용을 처음 들었는데, 웃기지만 휴가를 몇 번 더 써야하는지 잠깐 생각하기도 했었다. 첫 면접의 스트레스는 대단했고 나는 실시간으로 멍청해졌다! 자기소개와 할 질문을 정리하는걸 깜빡해서 '자기소개 해보세요' 나 '회사에 대한 질문 있으신가요' 라는 말이 나올 때 마다 당황을 거듭했다. 당황한 정확한 이유는 전화 인터뷰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는데 온사이트 인터뷰에 대비하지 않은 스스로가 황당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번에 이직을 준비하면서도 자기소개를 빠뜨리는 실수를 한 번 하고 나서야 제대로 미리 적고 암기하기 시작했었다. 오후에는 1:1 화상 미팅에나 적합한 아주 작은 회의실에 나, 면접관, 그리고 오전에는 함께 있지 않았던 shadowing 하는 리크루터 세 명이 앉아서 면접을 봤는데 약간 어두컴컴한 분위기와 풀이를 설명하다가 막혀서 뒤를 돌아보면 나를 쳐다보던 두 명의 표정이 기억난다. 얼마나 집중하지 못하고 예민한 상태였냐면 리크루터가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 때문에 미쳐버릴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인터뷰를 보고 나오면서 울었나? 나를 구성하는 '여러 종류의 나' 중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 '개발자로써의 내'가 엉망으로 평가당한 것 같은 처참한 기분이었던 것은 선명하다. 그 때는 어떻게 준비하겠다는 방향이 정립되기 전이라 중구난방으로 문제를 풀고 쓸데없이 교과서적인 책을 읽었기 때문에 면접 최적화가 아주 모자란 상태였는데, 마치 내가 모자란 사람인 것 처럼 심오하게 해석하면서 계속 계속 괴로워했다. 얼마나 준비가 부족했는지 알고리즘 문제의 '교과서 예제 1번' 같은 문제도 못 풀었던 정도다. 면접관이 두 번째 문제로 교과서 예제 1번을 주면서 '원래 이런 문제는 주면 안되는데...' 말하셨고, 나는 교과서적 풀이를 몰랐기 때문에 아주 창의적으로 문제를 풀려고 노력했으며 마무리하며 '창의적이지만 디테일이 부족하다' 라고 피드백을 받았었다. 그 때는 행간을 파악하지 못했는데 그것이 교과서 예제 1번임을 아는 지금은 첫 번째 문제를 너무 못 풀어서 난이도를 대폭 하락하였고 나름대로 풀려고 하는 것은 대단하시네요 라는 뜻임을 알고 있다.

일정 규모를 넘어가는 IT 회사와의 면접은 특히 ‘면접을 위한 공부’에 성실해야 한다. 그들은 일정한 시스템과 프로세스를 가지고 사람들을 채용하고 아주 많은 면접관이 참여하기 때문에 일관된 방식으로 관리된다. 나는 이것이 문제를 임기응변으로 창조하거나 면접에서 벗어난 질문을 받을 가능성이 낮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본다. 그렇다면 적어도 내가 가진 문제 풀(pool)을 소화하고 회사에 대한 정보를 모은다면 승산이 있다고 볼 수 있지 않겠나. 쉽게 말해 구글이나 페이스북이라도 leetcode나 hackerrank에 있는 문제들 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할 것이고, 최악의 경우 응용력이 0에 가까워서 모든 문제를 처음 보는 것 처럼 풀어야 할지라도 시간을 들여 일정량을 소화한다면 할 만한 게임이라는 뜻이다. 면접 준비를 너무 고행길 처럼 적은 것 같지만 나는 오히려 이렇게 생각하면서 자신감을 회복했다. 시간을 들인다면 승산이 있다고 계속 생각했다. 남들이 한두달 안에 만드는 것을 나도 똑같은 시간 안에 해야 할 이유는 없다. 내가 1~2년이 걸려서 해냈다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물론 이렇게 생각하게 되기까지 많이 생각하고 나를 단련해야 했다. 나는 자격지심을 안고 살았다. 평범한 사람으로 태어나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더라도 고만고만한 수준을 유지하지만 늘 머릿속으로는 네임드가 되서 세계를 정복하는 꿈을 꾼다! 그래서 불특정 소수의 고수들에게 자격지심을 느끼고 나는 왜 이른바 천재가 아닌지 아쉬워했다. 그래서 떨쳐내기 굉장히 어려웠던 생각 중 하나가 준비를 했는데도 안 되면 어떻게 하지, 특목고 출신들을 어떻게 이기지, 같은 불안감이었다, 면접은 이기고 지는 문제가 아닌데도. 이런 나에게 '나만의 시계를 사용하는 일'은 매우 오래 걸렸다. 물론 구글 면접을 보고 난 후 몇 년 후의 이야기다.


첫 면접은 큰 상처를 받고 끝이 났고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3년차에 접어들어 개발에 속도가 붙으면서 스스로 잘 하고 있다고 느끼는 자화자찬의 시기에 뜻밖에 찬 물을 맞고 정신차린 기분이었다. 겸손이란 덕목과 더불어 확인한 것도 몇 가지 있다.

리크루터는 싱가폴에서 일하는 외국인이었고 이 때 처음으로 화상 인터뷰를 했었는데, 몇 년 동안 딱히 영어를 공부하지 않았음에도 대화할 수 있는 것과 혼자 메일을 쓸 수 있음을 확인한 것이 큰 소득이었다. (나머지는 한국어로 보았다 :/ )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다는 것은 꽤 큰 자신감을 줄 뿐만 아니라 해외로 이직할 때 해야 할 준비를 급격하게 줄여준다. 무엇보다 정보는 대화를 통해 흘러나오기 때문에 중요하다. 경험상 지원한 포지션이나 팀, 복지, 인터뷰 피드백 같이 정말 궁금한 내용은 화상대화를 통해 듣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중요한 회사 정보이기 때문에 메일로 남기면 안되는 규칙이 있는 것인지, 지금 말한 내용을 메일로 다시 보내줄 수 있냐고 물었을 때 거절당하기도 했다. 레쥬메와 경력을 한 번 검증한 것도 중요하다. 일단 레쥬메로 인터뷰까지 갔다는 것은 눈길을 한 번이라도 끌었다는 이야기고, 다시 말하면 그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능력이 몇 개라도 이력서 안에 적혀있고 현재까지의 경력과 회사가 원하는 인재상이 '어느정도' 일치하는 것을 확인한 셈이다.

이직은 다방면에 준비가 필요하지만 단계를 밟듯이 준비하는 것이 좋은 것 같다. 나는 기본 커뮤니케이션, 이력서와 링크드인, 알고리즘(폰 인터뷰), 시스템 디자인(온사이트 인터뷰) 순서로 줄을 세우고 가장 마지막에 통과한 단계의 그 다음에만 집중하면서 단계를 올려갔다. 앞서 말했듯 구글 면접에서는 커뮤니케이션과 이력서는 통과한 것으로 치고 다음 면접을 준비할 때는 알고리즘을, 알고리즘 인터뷰도 한 번 통과했다면 그 다음에는 시스템 디자인을 공부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목표를 단계별로 좁힐 수 있기 때문에 인터뷰에 떨어지는 같은 경험을 하더라도 '이번에도 또 떨어졌어'가 아니라 '목표로 했던 단계는 넘었다'고 나를 칭찬해줄 수 있게 된다.


면접 망친 이야기를 길게 하는 이유는 원하지만 쉽게 저지르지 못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혹시 6개월이나 1년 정도 준비하고 그 다음에 지원할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지금 당장 이력서를 쓰기 시작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나도 비슷한 생각으로 버린 시간이 꽤 많은데, 냉정히 말해서 직접 부딪혀야만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이미 회사에 다니고 있다면 시간을 내기가 정말 힘들고 칼퇴하더라도 기운이 쭉 빠진 상태일테니 그럴 수록 동기 부여는 더 중요하다. 혼자 문제를 못 푸는 것과 면접관 앞에서 막히는 것은 차원이 다른 좌절과 동기를 준다. 분명히 풀어봤던 문제를 못 풀어서 체온이 식는 기분을 느껴봐야 퇴근하고 공부 할 마음이 한 주라도 유지될 것이다. 나도 망친 면접을 딛고 스톡홀름에 왔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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