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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발자 꿀 Aug 13. 2018

회사와 헤어지는 일

개발자가 스웨덴 회사로 이직한 썰 4

12nd August 2018


회사는 만족하면서 다닐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부모님은 내가 만족하지 못하는 상태를 안타까워하셔서 틈 날때마다 좋은 회사에 다니고 있다고 일깨워주려고 노력하셨는데 그 때마다 대화를 끊는 것으로 응수했다. 그 동안 벌어둔 돈으로 당분간 지낼 수 있고 책임질 가족도 없는데 회사에서 느끼는 성취감을 왜 포기해도 되는지... 미리 고민하고 싶지 않은 종류였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을 바로 직업으로 찾은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항상 이 점을 소중히 여겼지만, 그것이 여기서 안주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었기 때문에. 스타트가 좋다면 얼마든지 더 멀리 빠르게 갈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러니까 언젠가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되는 순간에 고민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말한다고 대단한 유토피아 회사를 상상한 것은 아니나, 적은 인원으로 많은 일을 하는 구조가 비정상이라고 느끼고 나아지지 않는 것을 보며 결정적으로 애사심이 식기 시작했다.

그 후부터는 회사를 내일이라도 그만둘 수 있는 상태를 병적으로 유지했다. 좋아하던 팟캐스트에서 들은 내용 중에 제일 선명하게 기억하는 조언 중에 하나인데, 회사를 그만두는 일에 자유로워지려면 월급을 당겨쓰는 사이클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당장 몇 달 월급을 못 받아도 문제가 없도록 대출과 신용카드를 관리했고 기간이 짧은 투자상품만 가입하고 충분한 현금을 유지했다.

그리고 우리나라를 떠날 준비를 한답시고 혼자 사는 동안 큰 가구나 가전제품도 사지 않았다. 처음 회사 근처로 이사한 집에서 늘어난 짐은 옷, 신발과 책 정도? 모든 것을 지나치게 임시로 생각하여 삶의 질을 높이지 못한 문제는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생활에서도 스스로를 끊임없이 세뇌한 것이 원하는 방향의 삶을 쟁취하는데 도움을 주었으니 해피엔딩인 셈이다.


회사 험담 래퍼토리도 무궁무진했다. 신기하게도 똑같은 회사를 계속 다니는데 다양한 이슈들이 생겨났고 다양한 방법으로 고통받았다. 어느 팀이랑 무슨 일을 했는데 말이 전혀 안 통했어 라던가 말도 안되는 일정으로 개발을 하래, 우리 회사 복지는 더 좋아지지 않는 것 같아, 건너팀 정치질과 여기서 말하지 못하는 더 많은 내용들까지... 동기들과 술이라도 마시면 누가 누가 더 힘든 팀에서 일하는지 경쟁하는 것처럼 자신들의 힘듦을 쏟아내기 바빴던 날도 있다. 그 중에 '가장 힘들게 일하는 사람 #1' 에게 조언이랍시고 하지만 글쎄, 보통 문제는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부류여서 같이 안타까워 할 수 밖에.

나의 경우 외부 문제에서 비롯되는 대부분의 것들은 모른 척 할 수 있어도 특히 내가 고갈되는 느낌은 무시하기 힘들었다. 호기롭게 해외 취업을 하겠다는 결심은 회사를 다니면 다닐수록 점점 약해져서 심폐소생술로 유지만 하는 중이라 권태기인 줄로만 생각했다. 퇴사 전 1년은 운동을 정말 열심히 했는데, 나한테 집중할수록 회복하기는 커녕 이제 그만하자는 마음만 확신하는 계기가 되었다. 일에서 나를 채우고 성장하려면 더 늦기 전에 옮기자고.



그런데 막상 이직이 결정되었어도 회사에서 만난 사람들 때문에 100% 기쁘지 않았다. 생활면에서 보자면 막막한게 한 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새로운 회사에서 일하는 것은 시간만 있으면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가족보다 더 자주 만나고 지낸 사람들과 헤어지는 것이 싫었다. 웃기게도 감상에 빠져서 사람들을 뒤에 남겨두는 죄를 지는 것 같기도 했다. (새 직장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했는데 다른 사람은 정 들었던 사람들과 작별파티를 몇 번이나 하고 마지막에는 울었다고 했다) 독립적인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판단했던 내가 얼마나 사람들에게 의지하고 있었는지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공채로 입사했고 연수에서 만난 동기들과 주로 만났다. 회사를 포함한 신변잡기적 일들을 전부 이야기했고 재미있는 일을 상상하고 선뜻 함께 시작하기도 했다. 회사 안에서 만났음에도 이들과 이야기 할때면 가끔 하고싶은 것이 많았던 대학생으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아이디어에 맞장구 쳐주고 같이 시작해 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말 한마디 던졌던 것에 야금야금 시간을 보태서 결과물이 나오는 과정을 보는 것은 신나는 경험이었다. 매주 주중에 퇴근하고 하루 시간 맞추는 것이 힘들었고 야근, 약속, 운동 등등 장애물이 많았는데 적극적으로 일정을 맞추고 다같이 하려고 한 마음도 고마웠다.

무엇보다 같은 업계에서 일하고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내가 앞으로 나아가고자 할 때 현실적인 피드백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난 욕심이 많고 동시에 벌이는 일이 많은데 희미하게 생각만 하다가 그들에게 몇 번의 팩폭을 당하면서 진지하게 나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항상 여러가지를 소화하면서 부지런한 느낌에 중독되는 악순환에 빠져있었는데, 시간도 체력도 한정적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인정한 때인 것 같다. 그래서 벌여놓은 일들을 치우고 이직 준비에 전념한 것이 스톡홀름으로 오는 길을 터주었다. 심지어 이직 준비를 가족들에게조차 비밀로 했을 때도 이 친구들한테는 전부 말했다.


그리고 입사하고 첫 팀에서 만난 동갑 친구도 회사 생활의 큰 버팀목이었다. 1년 먼저 입사한 팀 선배였는데 회사 생활에 조언을 구하는 주요 루트이자 내 인맥의 핵심 인물이었다. 그는 정말 희박한 확률로 만난 동갑에 동성인 개발자 동료여서, 말 그대로 ‘같은 일’을 하면서 친구로 부를 수 있는 내 인생에 첫 번째 여성이었다.

똑같이 회사에서 만난 사람들이었지만 앞서 말한 동기들에게 느끼는 끈끈함과는 좀 달랐다. 솔직히 말하건데 대학교 때 부터 주변에 이성 친구들이 많았지만 동성 친구들과는 분명 다르다, 같은 상황도 다르게 생각하고 살면서 서로 다른 문제에 부딪힌다.

때문에 우리는 회사 안에서 상대방을 더 잘 이해하고 같은 방향으로 분노할 수 있었다. 회사에서 미묘하게 기분 나빴던 일이 내가 소심해서인지 고민될 때, 나는 잘 하고 있는지 문득 의심이 들 때, 선택의 기로에 있을 때, 나이를 먹으면서 좋은 자식이 되는 것이 부담될 때마다 만나서 이야기하고 다시 일어날 에너지를 채웠다.



첫 회사의 인맥이 중요한 이유는 직장인의 삶을 큰 발돋움으로 시작할 때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회사 동료들이 어떤 친구들보다 더 편해지기 시작하는 시점에서 어릴 때 친구들과 잘 통하지 않는 것을 굉장히 고민했던 적이 있다. 관심사와 생활 패턴과 심지어 소득 수준까지 비슷한 것은 회사 동료들이기 때문에 어찌보면 슬프지만 당연한 일일 것이다.

새 회사 안에서 모여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가끔 동기들과 커피마시며 농담하던 때를 생각한다. 이 곳에서도 여전히 좋은 동료들을 많이 만나고 영향받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내가 누군가에게 좋은 동료가 될 수 있는지 생각한다.


#개발자 #해외취업 #스톡홀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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