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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발자 꿀 Oct 17. 2018

Relocation: 이사하기

개발자가 스웨덴으로 이직한 썰 7

25th September 2018

(다른 일로 좀처럼 끝내지 못하다가 이제서야 올린다.)


3개월 만에 여름을 지나고 가을까지 왔다. 여기는 벌써 기온이 10도 아래로 떨어져서 패딩과 목도리가 필요한 날씨가 되었다. 확실히 따뜻함이 오래 머물지 않는 곳이다.

지난주 금요일에 드디어 한국에서 배로 보낸 짐을 받았다. 이 짐 속에 가을과 겨울 옷이 전부 있었기 때문에 정말 완벽한 타이밍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옷을 받기 한 주 전부터 조금 추웠는데 다행히 가지고 있는 옷으로 견딜 만했다.

이 짐을 받으면서 드디어 이주 프로세스가 끝났다. 그래서 이번에는 이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1차 이사: 환절기 준비

마지막 출국 한 달 전에 살 집을 구하러 미리 스톡홀름에 한 번 왔었다. premove trip 이라고 부르는데 회사 지원으로 부동산 중개인과 집을 보러 다니는 perk 중 하나다.

이 때는 짐이 없어서 작은 캐리어 하나면 충분했다. 면접을 보러 처음 왔을 때 사고 싶은 것은 전부 샀고 이미 스웨덴에 거주 허가를 받아서 한국으로 들어가더라도 텍스 리펀도 못 받는 신분(?)이었다. 며칠 뒤에 배로 짐을 보내는 날짜가 잡혀있어서 바로 한국에 돌아가 집을 정리해야 했기 때문에 머무르는 기간도 짧았다.

그래서 premove trip을 왔을 때 환절기에 입을 긴팔, 후드 짚업이나 바지 등을 캐리어 하나에 통째로 챙겨가서 맡겨두고 왔다.


옷을 미리 정리한 이유는 배로 짐을 보내면 한 달 이상 걸리기 때문이다. 내 경우 한국에서 짐을 보낸 날부터 스톡홀름의 항구에 도착하기까지 딱 두 달이 걸렸다.

가을이 되어서야 짐을 받을텐데 스웨덴은 우리나라보다 추운 나라이기 때문에 여름과 가을 사이에 입을 두꺼운 옷은 미리 가지고 있어야할 것 같았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비행기를 탈 때 필요한 모든 것을 가져갈 순 없고 혼자서 큰 가방 여러개를 옮기는 것도 힘들어서 옷만 미리 이사시켰다.


배로 이사하기

이번에 이사하면서 처음 배웠는데 배를 이용할 때 컨테이너 하나를 통째로 쓰거나 공유하는 두 가지 옵션이 있고 가격이나 보내는 양에 따라 선택이 달라진다. 나는 혼자고 큰 가구는 보내지 않을 계획이었으므로 컨테이너 일부만 사용했다. 가족이 해외 이사를 한다면 컨테이너 하나를 전부 사용할 것 같다.

이것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회사에서 지원해 준 relocation 프로세스에 의해 결정된다. 이주 컨설턴트가 (1)한국에서 짐을 보내는 회사 / (2)스웨덴에서 짐을 받는 회사 둘을 선택해주면 회사에사 필요한 문서를 잘 보내고 스케줄을 잘 잡아 짐을 보내고 받으면 된다.

회사 결정은 가격 경쟁을 통해 정해졌다. 세 개의 회사가 집에 미리 와서 무엇을 가지고 갈지 물어보고 짐의 양을 보고 갔고, 가격을 측정해서 보내면 그 중에 가장 저렴한 회사로 결정되는 것 같았다.


컨테이너를 다른 사람들과 같이 쓴다면 저렴한 반면 컨테이너가 찰 때 까지 기다리는 만큼 짐을 받는 날짜가 늦어지는 문제가 생긴다. 예를 들어서 미국처럼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나라는 컨테이너를 잡기가 쉽지만 스웨덴은 비행기 직항도 없을 정도로 왕래가 많지 않은 나라이므로 좀 더 오래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배로 보내는 것은 내 입장에선 포장 이사랑 비슷한데 나라를 건너고 세관을 통과하기 때문에 당연히 가져가지 못하는 물건도 있다. 음식이나 술 같은 것이 문제가 되는 것으로 아는데, 건조 식품은 보내도 괜찮다는 확인을 받고 라면만 챙겼다.

재미있는 것은 물건들도 사람이 국경을 건널 때처럼 목적지 나라에 도착할 수 있는 ‘자격’이 필요하며 물건을 보내는 사람의 비자를 물려받는다고 한다. 다른 말로 하면 짐을 빨리 받기 위해 아무때나 짐을 보낼 수가 없다는 뜻이다. 세관 문제만 없으면 relocation을 시작하자마자 보내면 좋을텐데 아쉽게도 내가 스웨덴에 비자를 받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바다를 건널 짐을 싸다

스톡홀름의 집을 해결하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1)비행기 수화물로 가지고 갈 것 / (2)배로 보낼 것 / (3)부모님 집에 보관할 것 크게 세 가지로 짐을 나눠서 생각하면서 배로 보낼 짐부터 정리하기 시작했다.

나는 사용하던 모든 것을 일단 어딘가에 넣어두고 당장 필요한 것만 가져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정말 ‘이사’를 해야 했기 때문에 사실 물건은 가지고 가거나 버리거나 둘 중에 하나였다. 부모님 댁에는 추억이 있는 물건들 중에 이번에 가져가지 않을 것들만 남겨두었다.


정공법을 선택할 것

이사는 가장 먼저 배로 짐을 보내고, 다음에 살던 전세집을 정리하고(마지막 이사), 부모님 댁에 몇 일 있다가 출국했다. 그래서 배로 보낼 짐을 정리할 때 필요한 것이 모두 가지 않아도 출국할 때 마지막으로 기회가 있다고 생각해서 서랍장 끝까지 비우듯이 짐을 정리하지 않고 필요한 것만 골라 담듯 했다.

하지만 배로 보내지 '못한' 것들이 계속 생겨나고 캐리어에 자리가 이렇게 부족할 줄은. 옷과 신발이 이렇게나 무겁고 많고 출국 직전까지 선물을 받게 될 줄은 몰랐던 것이다. 머릿속으로는 문제없이 캐리어에 다 들어간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막상 캐리어에 넣어보니 치밀하게 퍼즐 맞추기를 하고 적절하게 캐리어끼리 무게를 나눠가져야 비행기를 탈 수 있는 수준이었다.


처음부터 모든 짐을 밖으로 꺼내서 분류하는 것이 현명했다. 비행기 수화물로 가지고 갈 수 있는 양은 정해져있기 때문에 출국하면서 가져갈 가방을 도라에몽 주머니처럼 생각하면 안된다. 수화물로 가져갈 캐리어를 처음부터 펼쳐놓고 이 가방 안에 꼭 있어야 하는 것들을 미리 넣어서 간을 보아야 비행기 타기 전날에 떨면서 체중계에 가방을 올리는 일이 없을 것이다.


애증의 운동화

캐리어에 구겨넣은 짐 중에 가장 기억나는 것은 흰 운동화들이다. 배로 보낼 신발을 정리할 때 더러운 흰 운동화 두 켤레가 계속 거슬렸다. 신발 겉과 바닥을 닦아서 신발 박스에 하나씩 넣는데 흰 운동화들은 세탁 밖에는 답이 없었다. 세탁소에 맡기더라도 배 이사(?)를 하기로 한 날까지 못 받을 것 같아서 캐리어에 넣어 가져가기로 했다. 지금 생각하면 웃기지만 그 때는 왜 그렇게 신발을 깨끗한 상태로 보내는 것에 집착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운동화가 이렇게 부피를 많이 차지할 줄은. 캐리어에 넣어보고 정말 정말 후회했다. 운동화 두어개에 캐리어 한 쪽이 벌써 꽉 차는 것을 보고 심지어 신발 하나를 버릴지까지도 고민했다. 결국은 처음 계획대로 신발들과 비행기를 탔으나 옷과 신발이 늘 그렇듯, 열심히 빨아 말린 운동화 중 하나는 스웨덴에 와서 한 번도 신지 않았다.


가지고 갈것인가 말것인가?

막상 시작을 하니 고민할 것들이 정말 많았다. 가지고 갈 것인가? 한국에 두고 갈 것인가? 버릴 것인가? 옷이나 신발은 가져갈 것과 버릴 것이 확실했는데 신기하게도 주방 용품이나 사소한 생필품을 챙기는 것이 힘들었다. 물건 하나를 집을 때마다 스웨덴에 가서 새로 사고싶은 마음과 일단 가지고 가서 돈을 줄이자는 마음 사이에서 고민했다. 이 고민은 생각보다 벗어나기 힘들다. 일단 사용할 선박 컨테이너의 공간이 널널했기 때문에 가지고 가고 싶은 것은 대부분 가져갈 수 있었으며 스웨덴에서도 살 수 있지만 한국 물건이 더 좋을 것 같은 느낌도 한 몫 했다. 이 고민에 대한 나의 기준은 '이 기회에 버리고 싶으면 버리자'였다. 깨끗한 것은 남기고 버릴까 말까 고민되는 것은 대부분 버렸다.


이런 모습을 본 아빠는 물건을 쉽게 버린다고 하셨지만 나는 나름대로 타당한 이유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떠날 상태를 유지한답시고 간소한 살림으로 4년을 살았는데 삶의 질이 훌륭하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한다. 집은 그다지 아늑한 공간이 아니었다. 집을 꾸미는 행위는 있는 가구의 위치를 바꾸거나 작은 테이블과 스탠드를 산 것이 전부다. 이렇게도 잘 살 수 있었던 이유는 주말마다 친구를 만나러 꼬박꼬박 밖으로 나가고 집 바로 앞 카페로 가끔 피신했기 때문에, 즉 우리나라에 살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스웨덴으로 가면 이야기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구하고 온 집은 시내 중심과 꽤 떨어져 있었고 주말마다 만날 친구도 없으며 긴 겨울에는 많은 시간을 집 안에서 보낸다는 이야기를 지겹도록 들었다. 나의 독립생활을 레벨업 할 시기가 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살림살이를 좋은 것으로 교체하고 하루종일 있어도 답답하지 않은 집으로 만들어가는 행동 자체가 나에게는 스웨덴에 잘 적응하는 중요한 행위였다.

그리고 은연중에 한국에서 많은 물건을 가져가면 가져갈수록 스웨덴에 정착하는 시간이 길어진다고 생각했다. 사람 사는 곳이고 마트에 가려면 운전을 해야하는 동네로 가는 것도 아니면서 우리나라 마트 출신들을 잔뜩 보낼 필요가 있을까. 돌아올 계획을 정해놓고 가는 것이라면 모를까, 나는 여기 사람들이 사는 것을 혹시 불편하더라도 똑같이 쓰면서 살 생각이다.


중고 처분

책 대부분은 회사 중고 장터에 팔았다. 책 판매 글을 올리자마자 연락을 받는 것은 꽤 기분이 좋은 경험이었다. 퇴근 시간이 훨씬 지나고 심지어 주말에도 연락을 받았다. 알라딘같은 중고 서점에 책을 파는 것 과도 확연히 달랐는데, 마치 내가 엄선하고 아껴서 본 책들의 가치를 누군가가 알아봐주는 느낌을 받았다. 종이책은 그 어떤 물건보다도 매번 특별한 경험을 주는 것 같다.


작거나 지금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깨끗한 옷과 가방은 아름다운 가게에 기증했고, 이 기회가 아니면 버리지 못할 것들은 과감하게 정리했다. 아름다운 가게에서는 물건을 담아줄 용도의 쇼핑백도 기증을 받기 때문에 집에 쌓여있던 종이 쇼핑백도 함께 보냈다. 아름다운 가게 기증은 처음 해봤는데 시스템이 잘 갖춰져있는 것 같다. 물건을 기증하고 몇일 뒤에 내 물건들이 잘 가게에 등록되었고 총 얼마의 가치가 매겨졌다는 '기부 영수증'을 문자로 받았다. 연말에는 공제 혜택도 있다고 한다.

원래는 옷 정리를 위해 서울시에서 여는 플리마켓에 나가려고 했었다. 그런데 선거와 더위 때문에 장터가 열리지 않는 시간이 많다보니 내가 참여할 수 있는 날은 출국 전까지 딱 이틀이었다. 이틀 모두 신청했으나 당첨되지 않았다.


16개의 박스들

이렇게 배로 보낸 살림은 큰 박스 16개가 전부였는데 모든 박스를 꼭꼭 눌러담은 것은 아니라서 꽉 채워서 12-13개 정도가 될 것 같다. 옷과 신발이 가장 많았고 전기밥솥, 토스터기, 깨끗한 주방용품 몇 개와 수저 세트, 아직 읽지 않는 책들, 다리미랑 청소기, 온수 매트 등. 가구라고 부를 만한 것은 침대 사이드 테이블만 보냈다.




그리고 이사 후

진짜로 살아보니 이사할 때 좀 더 쟁여올껄, 하며 아쉽게 만드는 것도 있고 반대로 야심차게 꾸렸지만 막상 사용하지 않는 것도 있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화장품이 정말 가성비가 좋고 종류가 다양한데 여기서는 미샤나 이니스프리처럼 저렴한 브랜드가 없고 종류도 많지 않다보니 아쉬움이 제일 컸다. 부피가 제일 큰 짐은 온수 매트와 전기 장판인데 이것은 겨울을 겪어봐야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기억할 것은 여기도 사람들이 사는 동네라는 것이다. 필요한 것은 대부분 구할 수 있고, 정말 매장에서 살 수 없는 물건들은 시간과 돈을 투자한다면 인터넷으로 구매가 가능하다. 마트를 헤매다가 여러번 물어서 필요한 것을 제대로 사거나 한국에서 오는 택배를 가슴 졸이며 기다려서 받는 쾌감은 모든 것이 준비된 상태로 해외 이사한 편안함 만큼이나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개발자 #스웨덴 #해외취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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