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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발자 꿀 Nov 16. 2018

작은 슬럼프를 지나며

개발자가 스웨덴으로 이직한 썰 9

15th November 2018


이직 후 가장 힘들었던 한 주였다.

우리 팀 시스템에 문제가 있었는데, 해결하려고 많은 시간을 썼지만 더 많은 문제만 발견할 뿐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했다. 사용하는 인프라의 문제인 줄 알고 미국에 있는 팀으로부터 답변을 받으려고 했지만 그 팀에서도 확실한 원인은 모르는 듯했다. 꽉 막혀서 더 무언가를 생각해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컨디션을 더 구석으로 몰아넣었던 것은 내가 가진 지식이나 경험의 한계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미국 오피스와의 대화에 진전이 없어서,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판단되는) 인프라를 개발했고 지금은 나와 같은 부서에 있는 개발자에게 물어보러 갔다. 그는 내가 생각해내지 못했던, 커널 로그에서 Out of memory를 찾아내고 모니터링 툴에서 메모리를 확인하는 방법으로 우리 서버에 메모리 문제가 있다는 것을 찾아냈다.

며칠 동안 물고 늘어졌던 문제를 그가 다른 방법으로 접근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체했던 속이 풀리는 것 같다가도 왜 '내가' 하지 못했는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 기회를 어떻게 OOM을 확인하는지 알게 되었다고 생각하며 넘어갈 수도 있는데 나는 왜 그러지 못하는가.


부끄러운 실수도 저질렀다. 백엔드 서버 안에서 간단한 스케줄러로 주기적으로 실행하는 작업이 있는데 실행 주기를 10배 빠르게 바꾼다는 것을 10배 느리게 해 버린 것. 배포되고 모니터링 그래프에 변화가 별로 없다는 이야기도 했었는데, 내 코드 문제일 줄은 생각도 못 하고 '원래 차이가 미미하다'라고 넘겨버린 것이다. 다행히(?) 이 기능은 다른 이유로 금방 롤백되었고 며칠 후에 코드를 리뷰하다가 우연히 발견했다.


문제를 해결하며.

내가 턱 막혀있었던 인프라 문제는 우리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외부 경로를 통해 해결되었다. 주말을 지나 다시 출근하니 '왜 나는 그런 것도 몰라서' 같은 자기 비하적 마음도 누그러졌다. 나중에 들었는데 그는 그 인프라를 거의 처음 만들 때부터 일했다고 한다.


실수는 확실히 만회했다. 나한테는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1) 코드가 배포되고 기대되는 변화를 수치화하지 않고 감을 믿은 것

2) 테스트하지 않은 것

이번에는 두 가지 모두 확실히 해서 기대했던 방향으로 결과를 얻었다. 여기서 몇 년 동안 개발해서 저런 실수나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나는 예전에도 비교를 반대로 하는 실수를 종종 만들었는데 그때마다 옆자리의 동료가 조용히 알려주곤 했다. 1~2년 더 일한다고 사고 흐름이 쉽게 바뀔 리없다.


매니저와 대화를 마무리하며 남긴 메모


이런 기분을 느끼려고 이직했음을 기억한다면 너무 속상해할 필요는 없다.

막연히 다른 사람들과 일하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다. 내 주변에 있던 사람들과 전혀 다른 스킬셋을 가진 개발자들을 만나고 그들로부터 작은 것 하나라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다른 문화에서 일하는 것은 또 무슨 의미일까. 이것은 나의 생각을 조금 뒤틀어서 체화되었던 지식을 예전처럼 쉽게 꺼내서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고, 하지만 뒤틀린 상태에서 조금씩 꺼내보며 결과적으로 또 다른 방향으로 체화하고 내용을 덧붙이는 과정인 것 같다.

내가 데이터를 봐야 하고 테스트를 해야 하는 줄 전혀 몰랐던 것이 아니다. 전 회사에서 일할 때처럼 일을 보는 시야가 충분히 넓어지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실수를 한 번 하면서 정신 차리고 내가 예전에 어떻게 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는 것이다.


지금으로 나는 충분하다.

매니저와 "나는 여기에 있는 것 만으로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사람을 깨우는 킥은 누구에게나 감당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경험에 비추어보면 그런 킥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일이 더 어렵다고 생각한다. 나는 킥을 만들어냈고 지금 감당하는 중인데, 맞을 때마다 며칠을 앓다가도 더 무엇을 열심히, 또는 잘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면 괜찮아진다. 조금 익숙하지 않은 것일 뿐, 이미 두 회사에서 검증받았음을 자만하며.


그리고 매니저와 장점을 찾아내는 것이 정말 어려운 것 같다는 이야기도 나눴다. 성장을 고민할 때 부족한 점은 쉽게 떠오르고 이것에 대한 고민이나 노력도 많이 일어나지만 (지난주의 나처럼) 나의 장점을 알고 있는지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이것도 몰랐던 이야기가 아니다. 전 팀에서 구축했던 이미지만큼 선명한 자리매김을 아직 못 하다 보니 다시 생각하게 하는 킥이 온 것 같다. 이것도 쉽지 않겠지만 현명하게 대해보자고 생각하며 이번주의 나를 칭찬하고 주말을 기다린다!


#개발자 #해외취업 #해외이직 #스웨덴 #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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