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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발자 꿀 Dec 17. 2018

방탄소년단 유럽 투어 후기

 스톡홀름살이 8

14th November 2018


방탄소년단 유럽 투어 예매 후기 (https://brunch.co.kr/@ggool/20)에 이어서, 공연을 보러 런던에 갔을 때의 일이다.


1. 숙소를 예약하다

나는 공연장과 버스로 10분 거리의 airbnb에서 일주일 정도 머물렀다. O2 아레나는 런던 시내와 좀 떨어져 있어서 런던에 가면 한 번씩 가는 Piccadilly Circus에서부터 O2까지 지하철로 30분이 걸린다. 일주일 중 이틀만 공연을 보기 때문에 공연장 근처에 숙소를 잡는 것이 좋은 결정일 지 계속 고민했다. 하지만 숙소를 중간에 옮기는 것은 피하고 싶었고 무엇보다 이번 여행은 공연을 잘 보는 것이 중요했으므로 O2와 가까운 Canary Wharf 지역에 예약했다.

하고 싶은 것들만 대충 정해놓고 무작정 런던으로 떠났는데 시내에서 교통카드를 살 때에서야 Zone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다행히 숙소가 있는 지역은 Zone 2라 더 비싼 교통카드를 사지 않아도 괜찮았다. 시내 중심가에서 Canary Warf까지 일단 온 다음 밖으로 나와 5분 정도 걸어서 다른 라인의 지하철(지상철?)을 바꿔 타야 하는 것이 불편했지만 나는 시간이 많은 여행자였으므로 이 정도 불편함은 감수할 만했다.



2. 옆 방에 정국이 오다

공연 전 날 옆 방의 이름이  정국 JungKook으로 바뀌었다! XD 투어를 보러 온 팬이라는 것은 확신했고 어느 나라 사람일까, 남자일까 여자일까 같은 것들이 궁금했다. 어떻게 이름을 바꿔서 예약했는지는 모르지만 꽤 귀엽다고 생각했다.

그리곤 방음이 거의 안 되는 연약한 벽의 도움으로 강제로 그들이 중국인 두 명이라는 것을 알았다. 밖에서 마주친 적은 없고 벽을 뚫고 들리는 목소리를 실컷 들었는데, 종종 새벽까지 떠들어서 기어코 문이나 벽을 두드려야 했다.



3. 스웨덴 가면 덕질 많이 할 거야

스웨덴에 온 이후로 덕질은 거의 안 했다고 봐야 한다. 오기 전에도 한두 달은 꽤 바빴으니까 6개월 넘게 착실한 덕후의 삶에서 아주 멀었다. 앨범이 나오면 듣고 뮤직비디오를 보는 것이 전부였다.


다른 사람들이 기대하는 북유럽의 생활은 어떠한가. 나는 내 시간이 갑자기 많아지는 것을 지나치게 걱정한 케이스다. 갑자기 증가할 혼자 있는 시간을 잘 지낼 수 있을지 내심 걱정했던 것. 그래서 미치도록 심심할 그때-특히 겨울-를 위해 모든 복습을 미루어두었다.

재미있는 것은 타지 생활이 안정되면 덕질하느라 정신이 없을 줄 알았으나, 막상 덕질을 포함하여 뉴스, 예능에도 흥미를 잃었다. 다른 글에서 번번이 말했듯 외로운 시간은 내가 직면한 큰 변화이자 문제이나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덕질이 아니다. 어쩌면 덕력이 요가로 얼마간 옮겨간 것 같기도 하고, 어디서 들었던 이야기처럼 힘들지 않기 때문에 일부러 행복함을 주입하지 않아도 되는 것일 수도 있다.




4. 스탠딩 준비하기

덕질은 정보력을 바탕으로 한 준비가 필수다. 덕질이 휴업이었던 나는 방탄이 미국에서 투어 중인 것만 알았지 스탠딩은 당일 선착순이라는 것, 그래서 미국 팬들이 밤새가며 캠핑했다는 사실은 런던에 가서 알았다. 도대체 왜 내가 산 스탠딩 표를 확인해볼 생각을 못 했을까...?

미리 알았으면 집에서 바닥에 깔고 앉을 비치 타월과 편한 옷을 챙겨 왔을 텐데 가방 속에는 어느 것 하나 없었다. 그리고 공연 전날에 브리스톨행 왕복 기차표를 이미 사둔 상태. 비치 타월은 포기하고 브리스톨에 도착하자마자 쇼핑몰에서 편한 바지부터 샀다.


뉴욕 스타필드 / 출처 http://ny.koreatimes.com/article/20181007/1207313


5. 1일 차: 스탠딩 줄 서기

O2 공연장은 처음부터 캠핑 금지에 밤새지 말라고 못을 박았다. 텐트족은 없었지만 새벽부터 줄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간식과 아이패드 따위를 챙겨서 8시쯤 도착한 것으로 기억한다. 줄은 약간 길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미국 텐트 행렬만큼은 아니었다.

나는 당연히 하루 종일 기다릴 생각이었고 진짜 두 시간 정도 줄을 서서 간을 봤지만... 기다릴수록 답이 안 나온다는 결론을 만들었다. 오전 8시부터 거의 12시간을 서거나 시멘트 바닥에 앉아서 기다린다면 공연도 시작하기 전에 다리가 거의 없어질 것 같았다. 이것저것 들어있는 배낭을 메고 스탠딩에서 살아남을 자신도 없었고, 자리를 교대하면서 지킬 동행도 없었다.


그래서 미국 스탠딩이 우리나라 공연만큼 빽빽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희망 삼아 과감하게 줄에서 나왔다. 내 나이와 컨디션을 생각할 때 이 정도 사랑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면서.


둘째 날에 굿즈를 사는 것이 원래 계획이었는데 스탠딩을 기다리지 않기로 했으니 미리 굿즈라도 사려고 했다. 이것은 MD를 우습게 본 과오였으며, 아침 11시에 이미 1차 MD 줄은 전부 차고 2차 MD 줄이 생긴 상태였다. 1차 줄이 줄어드는 속도로 봐서 사고 싶은 것은 거의 사지 못할 것 같아서 굿즈도 포기하고 아미밤만 사서 숙소에서 낮잠을 조금 잤다.


3시에 다시 공연장에 와서 본격적인 줄 서기 시작. 이렇게 큰 공연장은 처음 가 본 나는 스탠딩 대기줄이 이렇게 길 수 있는지 처음 알았다.


O2는 돔 모양의 건물인데 원의 바깥쪽은 쇼핑몰이고 안쪽이 공연장이다. 우선 건물 중앙 입구 앞에서 기다리다가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뒤쪽 입구에서 또 한참을 기다렸다. 6시쯤인가 드디어 안으로 들어가서 쇼핑몰과 레스토랑이 있는 통로에 서서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하다가, 진짜로 공연장 가까이로 다시 한번 옮겨졌다. 직전에 가방 검사를 하기 때문에 여기서도 줄이 금방 빠지는 것은 아니다. 가방 검사를 지나면 또 한참을 걸어서 드디어 공연장 입성. 이때 벌써 줄을 서기 시작한 지 3시간이 넘어가고 있었다.



6. 1일 차: 스탠딩 관람하기

스탠딩 구역에 입장해서도 거의 두 시간을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기다렸다. 공연이 8시 반 시작이었으니까 장장 다섯 시간을 기다려야 했기 때문에 오전에 줄 서기를 포기하고 나온 것은 체력을 위해 괜찮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돌출 무대 가운데를 바라보는 쪽에 섰는데, 이미 앞쪽이 아니라서 본무대는 거의 안 보이고 돌출 무대에 가수가 오면 사람들 팔과 머리 사이로 얼굴을 볼 수 있는 거리였다.

우리나라에서 방탄 콘서트는 간 적 없어서 비교할 수 없지만, 첫 몇 곡은 그렇게 좋은 기분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평균적으로 키가 커서 (나도 작은 키는 아니다) 그들이 서있는 것 만으로 장벽이 생겼고 몇 명의 키 큰 남자들이 중간중간 우뚝 솟아있었다. 비슷한 키의 한국 사람들 사이에 서있는 것보다 시야가 훨씬 제한적이었다.

더 답답했던 것은 전부 높이 들고 있는 핸드폰들. 녹화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콘서트 시작부터 끝까지 필사적으로 들고 있는 핸드폰 때문에 아무리 까치발을 들어도 몇 백개의 팔들 사이로 볼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핸드폰 때문에 뒤로 빨리 빠질까 생각했을 정도다.


처음에는 사람들 사이에 간격이 있었는데 돌출무대로 나오는 횟수가 많아지면서 사람들이 뒤에서 점점 밀기 시작했다. 뒤에서 하도 세게 밀어서 사람들 등과 어깨 사이에 끼어서 호흡도 시야도 최악이었고 순간 다리가 바닥에서 떨어지기도 했다.

이런 상태로 나는 계속 밀리면서 버텼는데 7명이 원형 돌출 무대를 나눠서 쓰다 보니 사람들이 양옆으로 퍼지면서 공연 중후반에는 앞에서 두 번째 줄에 와있었다!!!!!!! 만세!!!!!! 이때부터 앙코르까지 정말 최고였다. 정국이가 다리를 다쳐서 춤은 안 췄지만 나중에 천천히 걸어 다녔기 때문에 7명 모두 한눈에 잘 보았다.



교복을 입던 나이부터 가수를 좋아하고 콘서트도 몇 번을 갔는지 셀 수도 없지만 좋아하는 가수를 이렇게 가까이서 본 것은 처음이었다. 마치 유튜브를 각막 앞에서 재생하는 것 같은 느낌. 이미 익숙하게 알고 있는 얼굴일지라도 내 앞에서 움직이는 것이 새삼스러웠다. 사람의 팬이라도 가끔 저 사람이 현실에 존재하는 게 맞을까?라는 질문을 할 정도로 거리감이 컸는데 그렇다, 그들은 진짜 현실에 존재하는 사람들이었다.

이 날 스탠딩은 평생 유럽에서의 최고의 순간 중 하나로 남을 것 같다.


7. 언제부터 스탠딩 줄을 서야 하는가?

진리의 케바케. 나는 정말 운이 좋게 갑자기 앞으로 쑥 이동했지만, 이튿날 스탠딩을 한 사람은 자신의 주변 자리가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고 한다.

O2는 스탠딩 구역에 들어가기 전에 가방 검사를 하면서 물통은 전부 뺏었고 공연 중에는 정말 가아끔씩 물을 나눠주었는데 이때 많아봐야 한 모금 정도 마실 수 있다. 외국 사람들 사이에 끼어있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다. 내 앞에서만 버티지 못한 두세 명이 무를 뽑듯 스태프에 의해 뽑혀 나가는 것을 보았으니 체력 안배를 잘할 것.




8. 2일 차: MD 사기

첫째 날 굿즈를 사기 위한 어마어마한 줄을 이미 보았기 때문에 둘째 날도 일찌감치 굿즈를 사러 8시부터 줄을 서서 11시 즈음 부스에 들어갔다. 내 뒤로 줄이 빠르게 늘어났고 2차 굿즈 줄도 제법 빨리 생겼다.


한국에서는 굿즈를 사기 위해 전날부터 밤샘하거나 대리 구매를 부탁한다고 알고 있는데 그것에 비하면 3시간 기다림은 장난 수준이다.

한국콘에서 파는 것과 미국/유럽 투어에서 파는 물건이 다른 것은 솔직히 실망스럽다. 아기자기한 것들은 한국과 일본에서만 구할 수 있는 것 같고, 미국/유럽은 limited 티셔츠가 있었지만 대부분 기본템이었다. 인기 품목은 티셔츠로 9시인가 10시부터 판매를 시작했는데 내가 아직 줄에 있을 때 기본 흰색 티셔츠가 먼저 품절됐다.

문제는 가격인데 한국에 비해 두배 정도 비싸다. 굿즈를 사기 위해 한국에서의 시간과 유럽에서의 시간을 돈으로 바꾼 느낌이었다.



몇 개의 가격을 비교해보았다. 환율은 1,300원을 기준으로 계산했다.

공식응원봉 VER.3 :  ₩ 33,000 ▷ € 45 (₩ 58,500)

기본 반팔티셔츠: ₩ 35,000 ▷ € 43 (₩ 55,900)

프리미엄 포토 : ₩ 9,000 ▷ € 14 (₩ 18,200)

이미지 피켓 : ₩ 8,000 ▷ € 13 (₩ 16,900)

데코 스티커 세트 : ₩ 12,000 ▷ € 15 (₩ 19,500)

(2018년 서울 공연 공식 MD https://twitter.com/bts_bighit/status/1028929361657782272)


참고로, 우리나라에서는 MD나 굿즈라고 많이 부르지만 해외에서는 Merchandise를 줄여 Merch라고 한다.


9. 2일 차: 좌석에서 관람하기

내 좌석은 공연을 바라보고 약간 오른쪽 사이드의 가장 가장 끝이었다. 정말 정말 정말 끝! 천장에 가장 가까운 자리다! 자리를 찾아갈 때 경사가 너무 가팔라서 무서웠을 정도다.

좌석 구역은 우리나라에서 야구 경기를 보듯 공연을 보는 것이 재미있었다. 물은 물론 음료수나 맥주도 팔고 소시지 같은 것도 살 수 있다. 돌아다니면서 팝콘을 파는 사람도 있었다.


내 자리에서. 시야가 너무 높아서 천장 설치물이 사진에 찍힌다.


LY 투어가 정말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는 이유는 이틀 공연이 서로 다르게 좋았기 때문이다. 첫날에는 정말 가까이서 보았고, 둘째 날은 주변에 앉은 사람들이 좋았고 공연 분위기도 첫째 날보다 에너지가 있었다.

공연 중반까지는 경사 때문에 무서워서 일어서지를 못하다가, 옆에 앉은 뷔의 팬이 먼저 같이 일어나서 춤추자고 해서 얼떨결에 일어났다. 우리나라 팬들은 목청이 터져라 노래를 같이 부르는 것을 잘한다면 해외 팬들은 영어 가사를 위주로 따라 부르지만 춤추는 것을 좋아하더라. 아무 춤이라도 막 추면서 신남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나는 그들 사이에 유일한 한국인이었으므로 노래도 춤도 불태웠다 :)

천장에 닿아있는 자리에서 아무리 눈에 힘을 줘서 방탄을 본다한들 누가 누구인지 짐작하는 수준이다. 그럼에도 콘서트를 진짜 재밌게 만들었던 사람들은 주변에서 같이 춤추고 노래를 따라 부르던 팬들이다. 어느 순간부터 방탄이 잘 보이건 말건 스크린에 누가 나오건 상관없이 그 순간 자체에 엄청 빠져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가 있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과 같이 즐거움을 공유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MIC DROP


콘서트가 끝나고 나가면서 서로 끌어안고 우는 팬들을 지나칠 수 없어서 토닥여주고 옆에 앉아있던 뷔 팬이랑도 포옹하면서 헤어졌다.

콜드플레이 첫 번째 앨범이 나왔을 때부터 좋아하다가 작년에 내한 공연을 갔을 때 마지막 노래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그들도 나와 비슷한 감정이었을까? 해외 팬들이 방탄소년단한테 느끼는 감정적 또는 물리적 거리감은 우리나라 가수를 좋아하는 내가 느끼는 거리보다 멀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내가 한국에서 팬사인회를 가거나 공방을 돈 것도 아니고 가상의 사람들인 것 같다며 불평을 해도, 그럼에도 같은 나라 사람에 같은 언어를 쓰는 것 만으로 나는 어떤 가까움을 느끼는 것인지도 모른다.


10. 참고: VIP 티켓에 대하여

무대 오른쪽 VIP 구역, 뒤쪽으로 펜스가 보인다.


O2의 스탠딩 구역은 좌석에 비해서 작았다. 그중에 VIP는 돌출 무대로 가는 통로 양옆에 널찍하게 분리된 구역이다. 안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을 보면 몇 개의 티켓을 풀었는지 대충 알 수 있다. 전체 좌석수에 비해 아주 적은 수다.

여유로운 공간 외에 별도의 라인에서 기다릴 수 있다고 본 것 같다. 몸이 편한 것은 좋아 보이는데 빨리 티켓을 낚아채야 하는 티켓팅을 생각하면 확률적으로 대박운이 필요하고, 공연 알짜배기는 모두 돌출무대에서 하니까 멤버들이 지나다니는 것 위주로 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11. 마치며

나는 이틀을 런던에서 더 놀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두 달이 지난 지금도 DNA 뮤직비디오를 보며 떼창 하던 소리가 생생하다.

이 휴가는 개인적으로 중요한 시기였다. 이직하고 세 달쯤 지났을까? 안정적으로 회사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반작용으로 고민이 많던 때였다. 나의 집은 한국일까 스웨덴일까, 얼마나 여기 있을 수 있을까 따위를 생각하며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어중간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이런 시기에 여행을 가고 기다리던 공연을 보고 집에 돌아오니 ‘아, 여기가 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내.


내년 투어도 기쁜 마음으로 갈 수 있기를 기대하며 후기 끝



#방탄소년단 #BTS #투어 #후기 #스웨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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