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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발자 꿀 Mar 13. 2019

Scala meetup에서 발표하기

개발자가 스웨덴으로 이직한 썰 16

8th March 2019


'Scala Stockholm'이라는 meetup 그룹 행사에서 'Big Data with Scala and Scio at Spotify'  주제로 발표를 했다.



https://www.meetup.com/Scala-Stockholm/events/259154747/


기회의 땅

우리 팀이 속한 부모 조직에서 가끔 이틀짜리 핵데이를 진행하는데 입사하고 첫 핵데이에서 컨퍼런스 발표를 준비할 계획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멋있다'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이후에도 심심치 않게 발표자가 나타났고, 심지어 우리 팀에도 그동안 외부 발표를 한 사람이 두 명이나 있다.

내가 한국 회사를 다닌 기간과 그 회사의 아는 사람 수를 생각하면 여기는 빈도가 정말 높다. 같은 팀 동료가 외부 발표를 한 적이 없는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컨퍼런스 발표라고 하면 개발 능력에 자기 홍보 기술까지 겸비한 네임드 개발자나 팀 리더 정도 되어야 할 수 있는 것으로 알았는데. 그랬는데.


몇 달의 유럽 생활에서 느낀 것 중 하나는, 여기는 기회가 많다. 우선 유럽 사이에는 이동이 자유로워서 원하는 것이 있다면 우리나라에서 일본에 가는 정도의 노력이면 충분하다. 그래서 발표 자리를 찾는다면 유럽의 어떤 도시라도 선택지가 된다. 요즘은 크고 작은 규모의 컨퍼런스나 밋업이 늘어나는 추세인 데다, 발표 준비를 '이번 주 나의 할 일'이라고 당당하게 회사에 말할 수 있으므로 준비 시간도 확보된다. 여기는 정말 기회의 땅이 맞다.


기회의 땅에서 기회를 얻기

"어렵게 기회의 땅으로 이직했으니 그런 기회를 잡아야 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을 하긴 했다. 선뜻 나서지 못한 것은 역시 영어 때문이었고 특히 질문을 이해하지 못할까 봐 걱정을 했다. 나는 상대방의 질문을 질문으로 듣지 못하고 동문서답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인터뷰와 회의에서 질문을 놓쳤던 기억 때문에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영어로 일하며 월급을 받은 것이 벌써 7개월이 넘었다. 그 사이 언어에 대해서 '천천히 어떻게든 될 것이다'라는 막무가내 마음을 먹으면서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기폭제가 된 것은 사람들과의 대화였다. 매니저와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그것과 비슷한 일을 하는 J와 대화를 해보는 것이 어떻냐는 의견을 듣고 진짜로 어색한 듯 친숙하게 말을 걸었다. 우리는 물리적인 거리는 가깝지만 심리적으로 어색한 사이다. 나는 말이 별로 없는 사람이지만 들으면서 크게 웃어주는 편이고 J는 먼저 대화를 시작하기보다 맞장구치는 스타일이라 우리 둘이 테이블에 있으면 아무도 대화를 시작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런저런 말을 주고받다가 발표를 하면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이 있고 그러다가 기회가 오는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당연한 말이므로 '그럼 그럼, 나도 하고 싶다'라고 대답했는데 그가 생각지도 못한 제안을 했다. 스톡홀름의 스칼라 그룹에서 발표 요청을 받았는데 뉴욕 오피스에 가는 일정과 겹친다며 내가 해보는 게 어떻냐는 것이다.


사실 그에게 조그마한 멘토링을 부탁하는 것은 매니저와 작년부터 얘기했던 것인데 내가 시작을 못하고 있었다. 하고 싶은 일은 있지만 개인적인 계획이 모호해서 구체적인 질문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니저가 먼저 J에게 귀띔을 해준 성의도 잘 알고 내가 이런저런 관심이 있다는 표현이 너무 늦어지면 안 될 것 같아서 (심리적 어색함을 극복하고) 대충 질렀던 것인데 바로 결과가 나올 줄은 몰랐다. 대답은 당연히 - Yes.


발표 1+1

J가 내가 대신할 것이라는 메일을 써주고 발표 준비를 하는 것으로 간단하게 끝날 줄 알았지만 진짜 발표를 하기까지 우여곡절이 있었다.

당장 2월에 밋업을 가질 수 있는 장소가 없어서 밋업이 미뤄지는 줄 알았는데 우리 회사에서 할 수 있겠냐는 부탁을 받았다. 이때 J는 뉴욕에 있었기 때문에 내가 대신 회사 공간을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밋업 날짜는 3월 둘째 주로 정해졌다. 밋업이 미뤄져서 나는 당연히 처음에 부탁을 받은 사람이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장소 대여까지만 도와주려고 했는데, J가 그냥 나한테 넘겨주어 나는 고맙게 기회를 받았다. 그는 컨퍼런스에서 종종 발표하기 때문에 이런 소규모는 일만 많아진다고 생각할 수 있었을 것 같고, 반대로 작은 무대 연습이 필요한 나에게는 적절한 규모였다.


거의 한 달의 준비 기간이 있었다. 아직 준비를 시작하지 못한 어떤 날의 회식에서 밋업 이야기를 했고 그것을 들은 우리 팀 Product Manager가 사내 발표 요청을 받았다며 관심 있냐고 물어보았다. 주제는 Data에 대한 것 아무거나 마음대로. 맥주를 마시다가 이것도 덜컥 물었다.


불친절한 발표와 피드백

사내 발표는 최대 30분이고 외부 발표는 40~60분이 목표였다. 작게 시작하여 크게 마무리짓는 것이 계획이었다.


사내 발표는 생각보다 청중이 많았고 너무 떨려서 준비한 말을 우다다 내뱉었다. 회사에서 영어로 처음 ‘발표’를 하는 훌륭한 성취가 있었으나 언어를 제외하고 만족스럽지 못한 것들이 있었다. 사내 발표 대상으로 잡은 범위가 너무 넓은 것이 가장 큰 실수인 것 같다. 60분짜리 발표에서 1부터 100까지 발표할 예정이었다면 짧은 발표에서는 그중에 일부를, 30-60 수준으로 발표했어야 했다. 그런데 1-100 내용 전부를 다 넣고, 더군다나 청중의 수준을 너무 높게 생각해서 불친절한 발표로 끝이 났다.

사내 발표의 청중 조사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주제가 Data로 넓었던 만큼 오는 사람들도 다양했을 뿐. 아예 관련 없는 일을 하는 사람부터 나보다 경험이 많은 사람도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지식수준을 중간쯤으로 잡았는데, 기준을 아주 낮추어서 핵심적인 내용을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이 좋았을 것이다.


사내 발표가 끝나고 피드백을 몇 번 받았고 심지어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slack DM도 받았다. 내가 발표한 내용은 우리 팀에서 두세 번 발표했던 내용이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설명을 풀었는데 그 접근이 좋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또 청중이 (아무리 사내라도) 이미 알고 있을 것을 전제하지 않은 것이 좋겠다는 의견도.

무엇보다 피드백으로부터 내가 신경 쓴 부분이 통했다는 확인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나는 특히 회사에서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는 것이 중요하고 또 어렵다고 생각한다. 실수는 누구라도 금방 깨닫지만 내가 잘하고 싶은 일을 과연 잘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은 제삼자의 의견이 필요한데, 나를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나 어땠나요?'라고 물어볼 기회가 없을 수도 있고 사람들은 보통 부정적인 의견을 더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나도 기회가 될 때마다 모르는 사람이라도 좋은 피드백을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구멍 메우기와 두 번째 발표

두 번째를 준비할 때는 중간중간 비어있는 사전 지식을 채워 넣고 다이어그램을 보완했다. 밋업은 스칼라 그룹에서 여는 것인데 스칼라와 연관성이 부족해서 짧은 코드를 열어서 함께 보는 부분을 만들고 간단한 구현을 슬라이드에 추가했다.


발표 내용은 빅데이터 파이프라인 최적화다. 거의 모든 것이 내가 입사하기 전에 끝나서 나는 이미 완성된 코드를 읽으면서 마음으로 이해하는 것이 전부였다. 완성되어있는 최적화는 약간의 맥락만 알면 이해할 수 있고 if 안에 if 안에 if도 아니라서 이해가 잘 된다. 하지만 만약 다른 팀으로 옮겨서 최적화를 시작한다면 지금 팀에서 본 코드를 가져다 사용하는 것으로는 아마 해결이 안 될 것이다. 배워야 할 내용은 최적화 방법이 아니라 아이디어를 생각해내는 과정이다. 혼자 풀이를 생각해내지 못하다가 답을 보면 바로 이해가 가는 수학 문제 같다.


남아있는 코드에서 과정을 배우는 것은 약간의 시간과 노력이 든다. 코드는 과정이 빠진 결과이기 때문에 보통 다른 방식-예를 들어 git이나 문서-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프로그래밍 언어는 한글 같은 의사소통 언어와 비슷하고, 코딩은 책 쓰기, 코드 리뷰는 책 읽기와 비슷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코드를 잘 읽으려면 숨어있는 과정과 의도를 간파하고 때로 창의적으로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발표 자료를 만들면서 최적화에 비슷한 생각 회로를 써봤다. 우리 팀이 최적화를 할 당시 나는 없었기 때문에 어떤 최적화 방법을 쓰는지만 알지 왜 그 방법을 생각해냈는지는 들은 적이 없다. 나 나름대로 보편적인 빅데이터 처리의 성능 문제나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최적화 방법을 짜 맞추어서 과정을 재구성해보았다.


내용을 더 쉽게 설명하려고 고민하다가 생각지 못한 연결 고리도 찾을 수 있었다. 나는 최적화 방법을 두 가지로 분류해서 설명할 계획이었다. 처음에는 두 방법이 서로 다른 문제를 해결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결론적으로 비슷한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것을 깨달았다.


Q&A와 뒤풀이

무대 위에서 마이크를 쓰려고 준비했다가, 테이블을 모으고 사람들 바로 앞에서 목소리로 말하는 것으로 중간에 바꾸었다. 사람들과 가까이 서있으니까 거창한 발표가 아니라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 좋았고 긴장을 푸는데도 도움이 된 것 같다.

걱정했던 질문과 답변은 큰 어려움 없이 지나갔다. 기쁘게도 다양한 질문을 받았다. 영어로 일하면서 매일 느끼는 것이지만 내가 아는 내용인가, 모르는 내용인가는 정말 큰 차이다. 우리 팀이 매일 하는 일에 대한 질문을 받으니까 말소리가 흐려도 바로 이해하고 대답할 수 있었다.


끝나고 뒤풀이에서 사람들과 맥주를 한 잔 마시고 나왔다. 나에게 발표가 고맙다며 맥주를 사겠다는 사람도 있어서 신기했고... 하지만 참석하는 사람들만 계속 오다 보니 서로 통성명은 벌써 끝난 사람들인 것 같았다. 대부분 스웨덴 사람이었고 같은 테이블에 있던 프랑스인도 스웨덴어가 유창하여 오래 앉아있기 뻘쭘해서 일찍 일어섰다.

스웨덴어 문제는 예전에 글로 쓴 적이 있고 아직도 종종 부딪힌다. 이 날은 옆에 앉은 사람이 내게 계속 스웨덴어로 이야기하니까 프랑스인이 영어를 쓰라고 대신 이야기해줘서 고마웠다. 그날 밤 내 발표를 들었던 동료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작년에 왔다고 발표에서 말했는데 (내 소개를 하면서 이야기했다) 스웨덴어를 쓰는 건 그 사람이 배려가 부족한 것 같다며 편을 들어줬다. 이렇게 종종 도와주는 사람들이 생겨서 예전처럼 빈번하게 속상하게 느끼지는 않는다.


뒤풀이에서 흥미로웠던 주제는 역시 함수형 언어다. 얼마나 학구적으로 심도 있게 이해해야 할까, 실무에서 Monad를 얼마나 사용할 수 있을까, Category Theory(범주론)을 공부하려고 했다가 실패한 이야기 등 내가 가지고 있던 고민들을 그들도 똑같이 갖고 있음을 듣고 느꼈다. 이 자리는 지금은 잠깐 발을 빼고 있지만 한 때 좋아했던 공부 주제를 다시금 일깨웠다. 그리고 그때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깨달으면서 다시 돌아갈 때가 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3월이 되었다. 스톡홀름은 아직도 영하를 밑돌지만 해가 길어졌고 가끔 쨍하게 눈부신 느낌이 반갑다. 첫겨울도, 첫 발표도 지나가니까 봄이 오려나보다.


#스웨덴 #개발자 #해외취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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