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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발자 꿀 Feb 10. 2019

Relocation: premove trip과 집 보기

개발자가 스웨덴으로 이직한 썰 14

21st Jan 2019


어느 나라에 살더라도 주거는 큰 숙제다. 내가 살고 있는 스톡홀름이 서울보다 평화로운 도시라고 한들 주거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어서, 집 가격이나 어떤 동네가 좋다는 이야기는 여기서도 점심시간 단골 주제다. 팀 동료 중 한 명이 최근에 집을 알아봤는데 우리는 결정이 날 때까지 매일 그의 새 집에 대해 이야기했다.


Relocation과 Pre-move trip

나 같은 외국인이 많은 우리 회사는 Relocation package를 제공한다. 비자, 집 구하기, 이사와 사회 시스템 등록 같은 일들을 도와줌으로써 다른 나라에서 와서 일을 시작하는 허들을 낮춰주는 것이다.

해외 이주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가 있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이 회사는 필요한 업무를 처리할 실무자 회사를 선별하고 나의 상태를 정기적으로 확인해준다. 비자, 이사 업체 두 곳(한국과 스웨덴), 현지 업무 이렇게 총 네 회사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집을 구하기 위해서는 Relocation: 이사하기에서 말했던 premove trip이라고 부르는 3일짜리 출장(?)을 사용할 수 있다. 현지 업무를 봐주는 컨설턴트에게 원하는 가격과 옵션을 이야기하면 이에 맞춰서 미리 매물을 찾아주고 premove trip에서 직접 집을 보면서 선택하는 것이다.


여기에 premove trip에서 있었던 집 보기 여정을 풀어본다. 이 글은 철저히 경험에 대한 것이다. 모든 내용은 나 한 명의 경험일 뿐 절대적인 정보가 아니라는 것을 미리 말한다.




어떤 집을 원하는가

적당한 가격의 좋은 집 찾기. 차라리 누군가 너의 집은 앞으로 여기라고 정해주면 모를까, 집은 너무나 많고 비슷비슷하면서도 천차만별이라 집 고르기는 고민에 의한 고민의 고민인 것 같다. 태어나고 자란 우리나라에서도 쉽지 않은데 인터뷰 보느라 생전 처음 가 본 나라에서 쉽게 풀릴 리 없다.


가격만큼 중요한 것은 크기와 구조였다.

독립하고 회사 근처 오피스텔에서 계속 살다가 이번에 두 번째 집을 구하는 셈이었는데 몇 년의 오피스텔 생활에서 ‘집으로 지어진 집에 살자’라는 결론을 내렸다. 분리되지 않은 방, 넓은 도로 방향으로 뚫린 창문, 새벽 내 시끄러운 소리들... 집에서 느끼는 편안함을 얼마간 잃고 살았기 때문에 두 번째 집에서 다시 찾아올 필요가 있었다.

싱글이 해외로 나올 때 해외 생활을 임시라고 생각하기 쉽다. 직장이 있더라도 얼마나 오래 있을지 미리 알 수 없고 가족은 한국에 있고.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작은 기숙사를 공유하는 대학생도 아니고 아무데서나 자고 하루를 씩씩하게 보내는 나이도 아니다. 스웨덴에 1년 있을지 평생 있을지 알 수 없지만 그 시간 동안 나의 집은 한국이 아니라 스웨덴이고, 독립 기간이 길어질수록 삶의 질을 높일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전보다 나은 주거환경을 위해 흔히 스튜디오형 아파트나 아주 작은 집은 피했다. 당연한 결정 같아도 사람은 백만 원이 넘는 월세 때문에 공간을 포기하기 쉽다. 집은 너무 투명한 돈과의 저울질이므로 원하는 것이 있다면 내 마음과 싸워서 쟁취해야 하는 것 같다.



집 보기 예습

미리 ‘Stockholm housing’따위를 검색해서 큰 구역들의 위치와 어디가 특히 비싸다는 정보를 정리해갔다. 또 다방 같은 사이트를 보면서 저 나라 집은 어떻구나 하는 감을 익히려고도 했다. 그리고 내가 혼자 집을 선택하는 것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주변으로부터 집을 볼 때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지 여러 번 물어보았다.


premove trip이 3일인 이유는 스톡홀름에 도착하고 떠나는 일정을 배려한 것이라 제일 중요한 집 보기는 이틀째 날에 잡는다. 나는 매물을 혼자 한 번 돌아보고 다음날 컨설턴트와 내부를 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직 스톡홀름의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는 사람이라 교통은 좋고 조용한 동네인지 미리 아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지에서 보게 될 집 리스트를 미리 알아야 했다. 스톡홀름 부동산 시장은 서울 못지않게 빨리 움직인다. 그래서 담당자에게 여러 번 요청했음에도 리스트를 며칠 일찍 뽑아주는 것이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또 당일 나의 컨설턴트 대신 그의 동료가 나오기로 되면서 그가 나를 어디까지 챙겨주는 것인지 애매해져서 아쉽지만 첫째 날에는 스톡홀름을 크게 돌아보는 것으로 만족하려고 했다. 하지만 다행히 스톡홀름에 도착한 때에 맞춰 매물 리스트를 하루 미리 받았다!



위치와 가격

나는 총 여덟 군데를 받았다. 그중 하나는 보러 가기 전에 계약이 끝났고 당일에 리스트에 없던 두 군데를 더 둘러보았다. 운이 좋게 선택지가 많은 편이라는 말을 들었다. 나보다 두 달 늦게 입사한 동료는 다섯 군데도 안 되는 집을 둘러보고 그중에 하나를 골랐다고 한다.


사실 정보를 공개하는 것이 맞는지, 이것이 옳은 방식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모든 정보는 현실과 괴리가 있고 아래 숫자는 2018년 6월 기준이다. 하지만 현명하게 이해할 줄 아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공개한다. 월세를 원화로 환산해서 '집 값이 미쳤다'같은 단순한 의견으로 끝내지 말길 바란다. 부동산 가격은 현지 사정과 연봉을 종합적으로 봐야 하며 나라 대 나라 또는 도시 대 도시로 단순 비교가 어렵다.

또한 누가 집을 구하는 지도 중요하다고 한다.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는 사람을 선호하며 이것을 집주인에게 증명해야 하고, 심지어 집을 계약할 때도 개인이 아니라 회사 이름으로 계약하기도 한다. 아마 우리나라와 다르게 보증금이 작고 월세가 비싸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아래 집들은 전문적인 회사에서 알아봐 준 것이며 개인이 직접 알아보면 훨씬 제한적일 수 있다.


도시 중심은 10평 내외 집의 월세가 10k부터 시작한다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6년 전에 입사한 동료가 집을 알아볼 때만 해도 7~8k 정도였다고 하는데 몇 년 사이에 많이 올라서 이제는 기본이 10k이다. 스톡홀름은 작은 도시라서 지도 상으로 가장 위, 아래쪽의 집이 시 외곽으로 보이더라도 출퇴근 시간은 왕복 한 시간 반을 넘어가지 않는다.


[LEGEND]

* F: Furnitured, 가구가 포함된 집. 내 몸과 짐이 든 가방만 들어가면 된다. 유럽 안에서 이 곳 저곳 옮기면서 사는 사람들 중에 자신의 가구가 없는 사람들이 꽤 많다.

* UF: Unfurnitured, 가구가 없는 집.

* sqm: Square meter

* 10k/m: 10 000 krona / month




오래된 도시의 오래된 집

스톡홀름은 여느 유럽의 시가지와 마찬가지로 오래된 건물을 부수지 않고 철저하게 보존한다. 이렇게 정성껏 보존된 건물들은 낭만적이고 한국의 집들과 다르다. 내가 돌아본 집들은 최고 중심가부터 바깥으로 확장되고 있는 지역까지 다양했다. 이것은 당장 살 집을 선택해야 한다는 압박만 빼면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몇백 년 된 건물의 커다란 홀처럼 뻥 뚫려있는 0층, 집으로 들어가는 오래된 계단과 작은 엘리베이터, 헤링본 무늬 나무 바닥.


하지만 안타깝게도 하루 동안의 집 보기에서 '새집이 좋다'는 개인적인 선호를 철저하게 깨달았다. 운치 있는 오래된 집들은 새로 지은 아파트를 보자마자 깔끔하게 잊혔고 말끔한 화장실과 주방이나 넓은 수납장만 기억에 남았다.

오래된 집이 더럽거나 시설이 나쁜 것은 아니다. 리모델링도 꾸준히 하고 이사를 나갈 때 업체를 불러 청소를 해주게 되어있어서 비어있는 집은 아주 깨끗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묻어 나오는 오래된 느낌은 지울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정겨운 느낌이지만 나-집을 보는 한국인-에게는 익숙하지 않다.

오래된 집의 절대적인 장점은 위치다. 유럽 여행하면서 시내 한복판에 BnB를 빌려 지내다가 한국의 아파트 집으로 돌아가는 것과 비슷할까. 시내 중심일수록 카페, 레스토랑, 당연히 회사도 가깝지만 BnB가 집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이왕이면 새 집이 좋다는 공식을 적용하려면 위치를 포기해야 했다.


나처럼 집을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다면 이런 요구를 미리 말하는 것이 좋겠다. 새 집이 좋다거나 큰 집을 선호한다는 등. 회사에서 좀 멀어도 상관없고 새 집이 좋겠다고 미리 말했으면 어땠을지 후회하는 것이 나의 마지막 감상이었다.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한정된 기회를 잘 쓰지 못했다는 생각을 했다.

그 날 차 안에서 미국인들은 큰 집이 익숙해서 유럽의 집은 정말 작다고 하는데 반대로 아시안은 작은 집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한 것을 보면, Relocation 업체도 나라별 차이를 알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가격이나 위치가 너무나 절대적인 척도이다 보니 나머지 정보는 먼저 제시하지 않으면 가려지기 쉬운 것 같다. 또 다른 나라 사람이면 당연히 집에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스웨덴 사람들은 나보다 오래된 건물이 익숙하고 그것이 더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Relocation은 고갱님을 1부터 100까지 챙겨주는 친절 서비스가 아니므로 잘 받으려면 잘 요청해야 하는 것 같다. 이것을 작년에 미리 알았으면 좋았겠지만.



#개발자 #해외취업 #스웨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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