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는 나이를 생각하지 않으며 산다. 아니 그렇게 살아왔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나이를 물어오면 어색한 미소를 짓거나, "에이 그런 걸 알아서 뭐 하려고요?"라며 되묻곤 하는 것이 다반사다.
굳이 나이를 숨기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나이라는 틀에 갇히다 보면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스스로 정해둔 일종의 규칙 같은 것이다. 그런데 이 모종의 은밀하고도 사적인 관습인 '나이 생각하지 않기'는 '오십' 줄에 들면서 자꾸, 그 루틴을 잃어버리고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어르신들이 열에 아홉은 애창곡으로 꼽는다는 '내 나이가 어때서'란 노래 가사가 조금의 위로를 가져다주고, (나도 어르신인가?)' 인생은 육십부터'라는 또 다른 '아전인수 격 명제'가 가끔은 힘이 빠지려는 허릴 꼿꼿이 세우게도 만들지만, 아무리 잘 봐줘도 젊지도, 그렇다고 당장 '늙은이'라는 호칭이 어울리지도 않는 오십 줄을 살아가다 보니 '나이'가 가지는 객관성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새로운 일에 대한 기대, 내일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 떨렸던 시절을 지나, 무슨 일이 생길 것인가에 대한 예측을 어느 정도 할 수 있게 된 나이 '오십 줄'은, 인생이 부여한 재미들을 자칫 놓치게 만들어 버린다. 그래서 한 없이 서글퍼지는 순간이 느닷없이 찾아오고는 한다.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 시큰거리는 치통 같은 흰 손수건을 내저으며 놀라 부릅뜬 흰자위로 애원하며.
최승자/ 삼십세-1연
1981년에 발표된 이 시의 주인공인 최승자 시인은 40년이 지난 오늘, 오십 줄의 한 여인에게 시 한 줄을 들어 사뭇
공격적으로 얘기한다.
"여보세요 나는 말이죠. 서른에 벌써 이런 생각을 했다고요.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다! 서른은 그런 나이였다~ 이 말입니다!" 최승자 시인이 이 시를 쓸 무렵엔 육체적 정신적으로 많이 쇠약해져 있던 상태라고는 하나, 서른에 벌써 저런 생각을 할 수도 있다고? 서른이라는 나이를 인생의 변곡점이나 전환점이 아닌, 끝장으로 염두에 두고 쓴 詩.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 얼떨떨한 기분을 지워버릴 수가 없다.
죽음을 예감하고, 아니 마치 죽음을 부르려고 쓴 시 같지 않은가? 무엇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막다른 골목에 와 있는 듯한 절망감이 시 전체에 가득하다. 그래서 단 1연만으로도 이후의 모든 행들이 설명되기도 하고.
■ 나는 오십 줄에 들어서, 왜 다시금 이 시를 읽는가?
40년 전 최승자 시인이 느꼈던 그 삼십 세와 40년 후의 내 오십 줄을 치환하면, 연속선상에서 동일한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까?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만큼은 아니지만, 이것을 해도 마뜩잖고, 저것을 해도 별 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그저 그런 날들이 흘러가고 있을 뿐이니 또 한 번, 서글픔은 조용히 쌓인다.
늙지도, 그렇다고 젊지도 않기에 자꾸 주춤거리거나 뒤로 물러서는 일도 잦아진다. 그리고는 스스로 그 자세와 태도에 대해 실망하고 자책하기도 한다.
희망보다는 무엇을 좀 알기에 생겨난 불안과 두려움으로 점철되는 시간들, 때로는 경험으로 알 수 있는 것들을 지레짐작하다 보니 시작도 하기 전에 위축되기도 한다.그러다 별것도 아닌 이유로 포기를 거듭하기도. 젊은 날 생각했던 '오십 줄' 은 분명 이런 것이 아니었건만..... 한탄만 하다 보니 벌써 여기, 이 자리다.
■ 삶 속에서 다시 생존하기
시인이 되고 싶었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나의 골짜기로 무수히 쏟아져 들어오는 별빛의 속삭임과, 햇살로 머리 감고 한껏 투명해진 바람의 속내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
내가 아는 가장 튼실한 언어로 순간을 포착하고 그려내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밥벌이로 시작한 글쓰기는 고단했으며, 강퍅한 삶을 금줄로 쳐두고는 시의 시간을 도무지 허락하지 않았다. 아주 잠깐이라도 시의 영역을 넘볼라치면 "이봐, 지금 그럴 시간이 어디 있어!"라고 큰 소리로 채찍질을 하고는 했다.
채찍질을 당하면 당할수록 앞만 보고 돌진하는 경주마의 속성, 그 속성은 내 서른과 마흔의 삶 전체를 통틀어 지배했다. 그리고흐르는세월과 함께 최승자 시인의 저 무섭고도 통렬한 시'삼십세'가 덜컹, 내 오십 줄로 또 한 번 떨어져 내린 것이다.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시대가 바뀌었기에 더더욱 오십 세에는, 죽음보다는 삶을 생각해야 하는 것인데 왜 자꾸 이렇게 무력하게 인생을 끌어가고 있는지... 한 번 널브러진 삶을 수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던 차에, 나는 시인에게 "내 꿈은 말이죠. 당신이 갈망했던 어두움보다는 옅은 기운이라도 밝음 쪽에 거하는 것이랍니다."라고 마침내 선언을 하게 된 계기를 맞게 된다. 막 오십 줄의 중반에 들어선 어느 날이었고 , 매주 어떤 글이든 써서 올리자고 자신에게 약속하며 '브런치 플랫폼'에 작가 등록을 한 날이었다.
이제 겨우 한 달이 좀 넘어가지만, 지금 나의 글쓰기는 존엄한 생존을 위한 적극적인 수단이다. 최승자 시인의 간절하나, 지극히 개인적인 외침에 동참하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아서, 무인도로 표류한 크루쏘의 치열한 생존기처럼 스스로를 살려내기 위해 말이다.
■ 시작하기에 너무 늦은 나이란
많은 이들이 존경하는 소설가 박완서 선생은 마흔의 지점에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혹독한 정신병에서 벗어난 오십 이후에야 세계적인 소설가가 된 파울로 코엘료도 있지 않은가! 팔순이 다 돼서야 한글을 배워 시를 쓴 시골 할머니들은 또 어떻고. 무엇을 시작하기에 너무 늦은 나이라는 건 없을 것이다. 없어야 한다.
최승자 시인의 저토록 거대한 절망을 나는 여전히 이해하기 힘들기에, 시인의 '삼십세'는 극강의 공포로만 다가온다. 곱씹어 읽으면 시인의 의중이 너무 속속들이 스며들까 봐 서둘러 눈으로만, 쫓기듯 읽을 때가 많았다. 시도 때로는 이렇게 그늘진 계곡으로 우리를 끌어갈 때가 있다. 끌려가느냐, 아니냐! 취사선택은 오롯이 본인의 몫일 테다.
어쩌면 육십 줄, 칠십 줄에 들어서도 이 시"삼십세'를 읽는 내 마음은 쉬 바뀌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어쩔 수 없이 어정쩡한 나이를 살아가고 있지만 앞으로의 매일매일이, 매 순간이, 지나온 그날들과는 다른, 이제껏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전인미답'의 신세계임을 다시 글을 쓰며 불현듯 깨닫게 됐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