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별 헤는 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시가 내 시간을 흔들었다 7/ 윤동주-별 헤는 밤

by 초린혜원

늦가을이 지닌 특유의 박하향 밤공기가 오래 지속되지 않을 거라는 초조함이 자꾸만 하늘을 올려보게 만든다. 도시의 불빛이 시간과 공간을 빈틈없이 점령하고 있는 곳에서 하늘, 그것도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건 그리 쉽지 않은 일이어서 이런 초조함은 이내 옹색한 고마움으로 바뀌곤 한다.


빛으로만 화려하게 치장한 수많은 것들에게 정신이 팔려 우리는 어느새 별을 볼 수 없는 답답한 눈을 가지게 됐지만 초조함에 쫓겨 어떻게든 한 번 더 보려 노력하게 되니.

잠들지 않는 도시의 밤은, 역설적으로 별을 잠재운다.

오늘도 어김없이 밤 9시쯤 문밖을 나선다. 햇볕이 위용을 발휘하는 낮동안의 걷기가 '면역력 증강'을 위한 의무라고 한다면, 저녁의 걷기는 고요한 가운데 나를 찾아가는 일종의 의식 같은 경건함이 깃들어 있다. 이 경건함 속에는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깜깜한 밤하늘 속에서 희미한 별빛이라도 찾아내고 싶은, 혼자만의 주문이 숨어 있기도 하다.


"오늘은 반드시 별을 더 찾아내고 말 거야. 루프리 텔캄"


집을 나설 때 단단하게 했던 다짐들은 하늘을 올려다보는 순간, 여지없이 무너져 내리고 만다.

별이 보이지 않는다 오늘도. 어제 그러했던 것처럼 예상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고 개밥바라기 별만 겨우 눈에 들어와 안기는 밤. 어쩌면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 이 보이지 않는 별들을 대신해 우르르, 밤의 장막을 뚫고 쏟아져 나오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윤동주 - 별 헤는 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 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佩), 경(鏡), 옥(玉),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히 멀 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잘 보이지도 않는 별이지만, 별을 이토록 바라보고 싶어 한다는 건, 동주 시인처럼 내내 잊지 못하는 이름이, 가만히 불러보고 싶은 이름이 많다는 뜻일 거다.


계절은 깊어 가을의 끝에 와 있던 어느 날, 그리움도 계절처럼 깊어져 자꾸만 가슴 저 아래쪽에서 출렁이는데, 별마저 코발트 블루빛 하늘 강에서 반짝이고 일렁인다면 어찌 그들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가을의 한 밤을 지워버릴 수 있겠는가.


동주 시인의 그때, 그곳은 훨씬 더 진한 그리움으로 사방이 둘러 쳐져 있었을 테니까. '나라'라는 가장 큰 별을 잃어버린 순간에도 사람과 자연을 향한, 따스한 눈길-서정성-을 잃지 않았던 그는 진정, 한 사람의 시인일 수밖에 없었다.


내게도 얕으나마 이런 서정성은 마음에 뿌리내리고 있어 간헐적으로 별들의 이름을 부르며 기억을 소환하게 만든다.


오늘 밤에는 '엄마'라는 가장 그리운 이름의 별을 제일 먼저 꺼내 어둡기만 한 하늘로 쏘아 올린다. 내가 가닿지 못하는 곳 어디에선가 이미 자신의 별을 정성스레 가꾸고 있을 그녀는, 마치 태어나는 순간부터 '엄마'라는 이름의 별로 살아갈 것을 명 받은 것처럼 오로지 엄마의 모습으로만 살다 간 별이다. 그래서 스스로 엄마라는 이름을 버리지 않는 한, 이 별의 수명은 무한하며 그 빛도 잃지 않을 것임을 안다.


''이라는 두 번째 별을 가만히 꺼내어 불러본다 "딸~~"

막 탄생한 아기의 그것처럼 좋은 향내가 나기도 하고 싱싱하면서 유난히 빛이 나는 별, 이름에서부터 마르지 않는 은하수는 흐르고, 푸른 솔향을 닮은 삶으로 매일매일 꿈을 키워나가는 별. 한 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더 나은 곳을 향해 돌진하는 별이기에 언제나 그 꽁무니를 쫓아다니기에 바쁘다.


'서울, 신대방동 사는 소중한 친구'라는 이름도 조용히 불러본다. 이 별은 아주 깊숙한 곳에 있어서 보통은 존재감을 드러내지도 않고, 혼자 조용히 빛나고 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병증으로 고통받을 때, 너무 외로워 훌쩍이고 있을 때, 소리 소문도 없이 찾아와 등 뒤를 비춰주고는 한다. 오래 돌보지 못하다 보니 쪼그라든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해, 다시 마음 저리게 만드는 별, 그래도 자신이 가진 별의 소임을 잊은 적도 없고 게을리하지 않는 별이다.



빛으로 그려 낸 별들은 수성 못에 잠기고

'지금 반짝이지 않는 것은 별이 아니다.'라고, 누가 감히 단정 지을 수 있을까? 우리 가슴엔 동주 시인이 어느 깊어가는 가을밤 소중히 하나씩 불러보던 별을 닮은 이름들처럼, 수많은 별들이 집을 짓고 살고 있다. 우리가 불러 내 줄 그날들을 한 없이 기다리며, 혹여 빛을 잃어 보이지 않을까 전전긍긍도 해가며 어제를 밝히고 오늘도 빛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매일같이 혼자 빛나는 별들도 있겠지만, 기억 속에서 잠시 잊어져 고유했던 빛마저 잃어가는 별들도 있을 것이다. 불러주지 않으면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될 수 없는 숱한 이름들... 그중에는 어쩌면 시인이 애써 덮어버렸던 것처럼 '내 이름자'도 있을 수 있음이니.


눈을 더 명징하게 고쳐 뜨고, 밤하늘의 뭇별들과 더불어 우리 가슴에 사는 별들의 안부를 상냥하게 챙기며 이 하루의 마침표를 찍어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은 바람에 스치운다. 스치우다 어느새 마음 밭으로 그득 쏟아져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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