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술, 그 짜릿한 기억

시가 내 시간을 흔들었다 8 /정호승- 서울의 예수

by 초린혜원

아주 오랜만에, 멀리 있는 후배의 근황이 궁금해 sns로 안부를 주고받았다. 한해의 끝에 오니 문득 생각나는 사람들이 참 많다. 후배와 나눈 얘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올 2020년은 우리 인생에서 버리는 한 해가 되지 않을까 한단, 얘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코로나 19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으니 연초에 세웠던 수많은 계획과 다짐들이 그냥 아무 성과도 없는 상태로 여기까지 와 있기 때문이다.


외국으로 떠난 지 3년이 된 그 후배도 연말에 한국으로 잠시 나오려던 계획을 완전히 취소했다고 한다. 그녀의 말끝에 보이지 않는 섭섭함과 아쉬움이 뚝뚝 묻어났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이 이토록 맥없기는 처음이지 않을까? 나뿐만이 아닌 그 누구에게도. 이 허망함의 기분을 찬찬히 들여다보다 보니 문득 그해, 12월 31일의 장면 장면들이 오래된 영사기의 필름처럼 촤르~르 돌아가기 시작한다. 그해의 마지막 날엔 그래, 모든 것이 참~뜨끈했었는데.


1982년 12월 31일 미국문화원, 시화전


잠시 암전, 그리고 이윽고 펼쳐진 장면은 바로 이것이다. 당시 시의 고장이었던 내 고향에서는 유독 시화전이 많이 열리곤 했었는데, 나는 고등학생 신분으로는 마지막 시화전을 대학병원이 정면으로 마주 보이는 미국문화원에서 하고 있었다. D시에서 시께나 쓴다는 학생들이 모여 저마다 작품을 서너 개씩 출품한 합동 시화전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보통 서화 방에 시화를 맡기는 것이 대세였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다방면에서 엄청난 예술성을 뽐내던 오빠의 솜씨와, 오빠의 지인분인 화가께서 직접 그리고 글씨를 써준 시화로 전시를 했었다. 그저 그런 시화들 중에 내 작품은 단연 눈에 띄었고, 주목받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주목을 받기 위해 그렇게 시화를 만든 것은 아니었는데, 본의 아니게 시화전이 열리는 나흘 내내 나는 눈총과 함께 부러움의 대상이 돼 있었다.


신생학교의 학생이 난다, 긴다 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때아닌 주목을 받다 보니 시 외적인 것들도 이러쿵저러쿵 오르락내리락하는 걸 짐짓 느낄 수가 있던 터였다.


"쟤, Y학교의 J가 좋아하던 애 아냐? 연애편지도 보냈다던데?"


일부러 들으란 듯이 크게 울리던 그 대화 속의 J는 또래들 사이에선 유명한 인물이었다. 시를 워낙 잘 써서 이름을 날렸고 한 대학에서 주최하는 문학상에서도 대상을 받은 바 있는, 그래서 여러 여학생들의 흠모의 대상이 돼 있던 그런 친구였다. 그런 친구에게 연애편지를 받았다니.. '쟤 누구니? 별~' 모종의 이런 수군거림이었을 거다.


그래 편지는 받았다. 하지만 소문은 부풀리고 부풀려져서 태산을 이루는 법, 그 애가 나에게 보낸 편지는 그 흔한 사랑 얘기한 줄 없는 시 한 편이 다였다. 보낸 이의 이름만 덜렁 있는 그런 편지도 연애편지라 할 수 있을까?



정호승의 시는 그렇게 가슴으로 와 잠기고


사람의 잔을 마시고 싶다
추억이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
소주잔을 나누며 눈물의 빈대떡을 나눠 먹고 싶다
꽃잎 하나 칼처럼 떨어지는 봄날에
풀잎을 스치는 사람의 옷자락 소리를 들으며,
마음의 나라보다 사람의 나라에 살고 싶다
새벽마다 사람의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서울의 등잔에 홀로 불을 켜고 가난한 사람의 창에 기대어
서울의 그리움을 그리워하고 싶다

♤정호승 서울의 예수 中 4


적어도 내가 정호승 시인을 많이 좋아한다는 정보 정도는 익히 취합하고 있었던 것 같다. 서울의 예수 전편을 써 보낸 것도 아닌, 일부를 휘갈기듯이 쓴 이 시에서는 녀석이 즐겨 마시곤 했다던 막걸리 냄새가 났다. 고등학생이 웬 막걸리? 겠냐 싶지만, 이 한 편의 시로 나를 도발했던 녀석은 대놓고 낮술을 마시며 취한 상태로 자주 시를 논하곤 하던 아이였는데, 학생의 신분 따위는 시인이 되는 걸림돌이라며 학교를 무시로 뛰쳐나오기도 했었던 거 같다.


하지만 정호승 시인의 서울의 예수를 빌려 언젠가는 함께 술 한잔을 나누자 고백하는 순수함도 일견 갖추었으니, 그 아이가 그토록 원하던 '사람의 잔'을 찾아내었는지 슬그머니 궁금해진다. 치기 어린 마음을 전하고 둘이 함께 하는 미래를 그려보았을 그 순간만큼은 행복했겠지! 뒤늦게 깨닫는다.



생애 첫 술은 오빠와 함께


12월 31까지 열리던 시화전 마지막 날, 축하를 해주기 위해 오빠는 꽃 한 송이를 사서 들렀었다. 역시 시를 쓰던 오빠의 절친과 함께였다. 아버지의 유품인 앤티크 한 롱코트를 걸치고 고무신을 신은 오빠의 외양은 마치 거리의 철학자 같아서 가뜩이나 시화전 내내 불편한 시선을 감내하고 있던 나를 더 힘들게도 했지만, 그 불편함은 오빠의 마법 같은 한 마디에 이내 설렘으로 바뀌고 만다.


" 니도 이제 곧 대학생이 되니까 오늘은 술 한잔 사주께"


"뭐 술? 내, 아직 졸업도 안 했는데?"


"개~안타, 오늘 지나면 니도 성인이다"


다른 아이들이 뒤풀이를 한다며 총총 자리를 옮겨가는 동안, 나는 서둘러 시화 액자들을 챙겨 나왔다. 시화전이 열리던 미 문화원은 바로 시내에 있었기에 오빠와 나, 그리고 오빠의 절친은 시내에서 유명하다는 한 생맥주집을 들렀던 거 같다. 여기서 '같다'라고 얘기할 수밖에 없는 건, 이 이후의 기억이 그리 선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도 생맥주 500CC를 3분의 1쯤 비운 후부터 나는 소위 술에 취해 몽롱하면서도 아득한 기분이 들어서 이 말, 저말 주절주절 했던 거 같다. 시화전에서 받은 뜨거운 눈총 얘기, 맥주가 생각보다 쓰다는 얘기, 대학 가면 연애를 맘껏 할 거니까 오빠는 상관하지 말라는 얘기. 두서도 없이 흘러나오는 얘기를 듣고 있던 오빠의 눈가가 잠시 촉촉해지는 것도 같았다. 이 또한 분명하지 않은 짐작일 뿐이다.


아마도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오빠와 오빠의 절친은 2차를 하러 가자 약속을 했던가보다. 그래, 한해의 마지막 날인데 피 끓는 20대의 청춘들이 그냥 거기서 멈출 수는 없었으리라. 나를 집 앞에 내려주고 둘이서 어느 포장마차로 떠나버린 후, 나는 제대로 몸을 가눌 길이 없어서 집으로 올라가는 경사진 골목길 초입에 한참을 앉아 있었더랬다.


' 어라? 왜 엉덩이가 축축하지?'


눈이 온 것이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쌓일 정도로! 눈이 내린 미끄러운 경사지를 오르며, 몇 번이고 스러지면서 우습게도 정호승 시인의 '서울의 예수'를 떠올렸고, 바로 저 4연의 첫 구절이 자동적으로 입 밖으로 흘러나오는 게 아닌가. '사람의 잔을 마시고 싶다. 추억이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 언제부터인가 머리에 꽉 들어차 있어서 비틀거리는 사이, 절로위에 쏟아져 반짝이던 시의 포슬 거리는 문장들.


내 생애 술을 처음 마시는 날 꼭 이 구절을, 명창이 부르는 한 구절처럼 불러내리라 스스로에게 선언하였던 바, 꽤 긴 시였지만 그렇게 술~술 끝도 없이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열아홉의 객기처럼 아슬아슬하고도 치명적이게 술을 부르던 시, 술 한 병을 옆에 끼고 어느 캠퍼스 잔디밭에 누워 멋들어지게 낭송하고 싶었던 바로 그 시 '서울의 예수'는, 이렇게 그해 12월 31일, 생애 첫 술의 짜릿한 기억과 함께 한 개인의 역사에 바짝 각인돼 버린 거다.


정호승 시인/출처, 네이버 이미지

정호승 시인의 시를 사랑하는 이유는


정호승 시인처럼 시의 내적 리듬을 잘 다루는 시인은 드물 것이다. 은근한 정형미가 갖추어진 외피도 외피지만 읽다 보면 몸안의 오장육부가 다 일어나 제각각의 몸짓으로 춤을 추는 것처럼 여겨지는 내재율은 가히 백미다. 일부러 멋을 부리지도 않았는데, 그의 시에서는 말로 꾸며낼 수 있는 최대치의 멋이 느껴진다. 주저하지 않고 정호승의 시 몇 편을 가장 사랑하는 시들의 리스트에 올려놓는 이유다.


나와 동향인 시인이 서울살이를 하며 겪거나 피부에 와 닿았을 진한 외로움과 결핍이 , 이 시에는 그대로 나타나고 있으니 나 또한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독감에 빠져들 때. 늘~ 이 시 '서울의 예수'와,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로 시작하는 '수선화에게'를 떠올리게 된다.


여전히 그의 글들은 탄탄한 청년기에 머물러 있는데, 벌써 육체의 나이는 칠순을 넘기셨다 한다. 하기야 이 시를 처음 읽고 시의 문장만으로도 얼큰하게 취했던 열아홉의 나도 , 내일이면 또 물리적 나이를 한 살 더 먹으면서 차곡차곡 으로 향해가고 있으니 늙지 않고 오히려 더욱 푸릇해지는 건 시밖에 없음 인가?


삶의 균열이 느껴질 때, 사람이 무작정 그리워질 때, 혹은 그리움 그 자체에 오래도록 빠져들고 싶을 때, 정호승의 이 시, '서울의 예수'를 안주 삼아 술 한잔 기울여도 좋을 것이다. 누구나 힘들고 외로웠을 올해이고, 바야흐로 술을 부르는 한 해의 마지막 시간의 틈 12월 31일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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